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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0944559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8-11-30
책 소개
목차
서문
단동행丹東行
단동丹東 안개
동행
춘정
악연
야간열차
평산식당
통과의례
콩쥐 김소군
오호령 터널
고수촌古樹村의 그믐밤
눈길
함박눈
돈화 터미널
경박호 부근
유민
영안寧安 지나며
목단강의 저녁
목단강 편지
목단강 목단강
골짜기
조각보
용정
겨울 두만강
학서촌鶴棲村
삼합의 눈
새총
오랑캐령
윤동주 생가
차창 밖 풍경
청산리
백두산 평원
이도백하二道白河
작은 버스
장백 가는 길
국경선
공안차
겨울밤
탈북 여인
무리리
빈둥빈둥
객지
단동丹東의 밤
겨울 만주 -박명호 소설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목단강.
세상에 이처럼 고운 이름의 강이 또 있을까. 이 3음절의 명칭 안엔 먼 북쪽 평원으로 흘러드는 푸른 강물이 출렁이고 물고기 떼가 헤엄친다. 근처 경박호에 살던 옛 전설 속의 버들처녀가 등장하고 목단화가 만개한다. 가만히 목·단·강이라고 끊어서 발음해 보면 석류알 같은 단단한 울림 안에 심미적 깊이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목단강에서 유래한 도시 이름도 목단강이다.
목단강으로 가는 겨울여행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거기 대륙의 고토古土에는 우리의 멸망한 왕조가 눈에 묻혔고 오래된 설화說話들이 널려 있었다. 민족의 시원始原을 열어준 강줄기가 얼음으로 반짝이고 삶의 터전을 받쳐온 대지가 설원으로 눈부셨다.
눈 덮인 구릉지의 촌락을 찾아들어 토담집에서 들쭉술 마시며 주인과 밤새 나누었던 정담. 느닷없이 퍼붓는 폭설도 아랑곳 않고 식민지 시대의 고난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이야기 실꾸리로 길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섣달 그믐밤에 안도의 고수촌에서 연변의 시인과 동숙했고, 설날엔 눈 덮인 만주 들판을 함께 거닐며 맑고 평화로운 내면을 교류했다.
돈화로부터 동경성 가는 노정에서는 얼음호수로 바뀐 경박호를 바라보며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즐거워했다. 이어서 영안까지, 가도 가도 끝없는 설국을 만끽하며 백색의 신성함 속에서 광야의 푸른 독립군가를 들었다. 애초에 내가 꿈꾸었던 겨울여행의 절정이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마침내 목단강. 너무 추워 운신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밤하늘 별자리 위에 연인의 이름을 새기며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얼음과 눈에 덮인 목단강으로 나가 가슴에 품었던 그리움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하지만 얼음제국으로 변한 현장에서 목가적 낭만은 펼치기도 전에 냉동되고 말았다. 아쉬운 대로 목단강의 그 차고 맑은 이미지만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추위에 쫓겨 용정으로 내려온 뒤에는 개산툰과 삼합의 두만강 일대를 답사했다. 얼어붙은 국경 건너편을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을 되새김질했다. 또한 이도백하에서 장백까지, 백두산 둘레의 긴 눈길도 왕복했다. 오지의 눈길 위에서 겪은 일들은 사소해도 그 눈부심이 강렬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이렇듯 인상 깊었던 겨울 만주기행의 결과물이 이번 시집이다. 《두만강 여울목》 이후 몇 년간의 창작활동이 누적된 것이지만, 목단강 여정을 바탕에 깔고 그 밖의 것은 대폭 손질하여 줄였다.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중간중간에 사진을 싣고 박명호 소설가의 맞춤형 기행문도 끝에 수록했다. 이 시집을 위해 베풀어준 그의 호의에 감사한다.
눈 내리는 북국의 정취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
겨울 안개 속
압록강이 얼어 있다
강가에 서서 건너편 바라보는
추운 사내들의 낡은 생애 몇
안개에 반쯤 잘리고 없다
그 사내들 곁에 줄지어 선 실버들
실버들의 설화 얹은 머리칼도
태반은 안개에 먹히고 없다
그리운 것들은 반쪽만 이편에 남아
강 건너편을 하염없이 바라보나?
안개 저편에서 가끔
실루엣으로 두런거리는 소리
해독 안 되는 기호로 새어 나온다
겨울 안개 속
단동丹東의 아침 풍경이 얼어 있다
-「단동丹東 안개」
시린 별자리 아래 누워
막막한 어둠 속으로 흘러간다
심양에서 연길 가는 야간열차 침대칸
여행배낭과 함께 구석에 얹혀
식민지의 과거로 무작정 흘러간다
창밖을 스치는 매몰찬 눈바람
철커덩철커덩 몸을 흔드는
선로의 쇠바퀴소리
시간의 흑백필름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간다
총칼에 무찔려 총칼에 무찔려
내 형제들 무수히 피 흘린 변방
독립군 토벌대 마적단 밀정까지
열차 천장에 눈동자 박고 내 이마 들쑤신다
괘액- 내지르는 열차의 목쉰 울음
어둠에 덮인 눈밭을 먼 곳까지 흔든다
-「야간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