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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42334290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11-03
책 소개
목차
제1장 하나마루 요정의 터
제2장 키쿠오의 녹슨 칼
제3장 오사카 초단
제4장 오사카 2단
제5장 스타 탄생
제6장 소네자키 숲의 도피
제7장 출세어(出世魚)
제8장 풍광무뢰(風狂無頼)
제9장 침향 목침(伽羅枕)
제10장 괴묘(怪猫)
리뷰
책속에서
막이 단숨에 걷히자, 불길한 태고 소리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는 큰 눈 속에서 어째서인지 벚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중앙에 선 큰 벚나무, 천장에선 만개한 벚꽃 가지가 가득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 호화로운 무대를 보며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고, 태고 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 퍼진 바로 그때, 거목 줄기에 걸려 있던 까만 천이 스르르 풀리면서 나무 안에서 유녀遊女 스미조메墨染가 나타났습니다.
강한 조명 아래 드러난 것은, 연회색 옷감에 늘어진 벚꽃 가지 장식을 수놓은 복장의 유녀 스미조메. 츠부시시마다(つぶし島田: 에도시대 후기에 유행한 머리 모양-옮긴이) 스타일의 머리를 수많은 기생용 비녀로 꾸민 모습입니다.
예상치 못한 변주에 객석에선 파도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2대손 하나이 한지로도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호오. 세키노토関の扉인가?”
이것이 바로 가부키 무용극의 명작 <쌓이는 사랑 눈 세키노토>의 명장면으로, 무대 아래쪽에는 이야기꾼 역할을 맡은 게이샤들과 샤미센이 쭉 늘어서고, 큰 벚나무 옆에는 관문지기인 세키베이関兵衛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습니다.
- 23~24쪽
학교 정문으로 뛰어 들어가자 이미 교정으로 나온 동급생들이 키쿠오가 오랜만에 등교한 것을 보며 놀랐습니다. 키쿠오는 그대로 1층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가방에서 단도를 꺼내 바지 안에 집어넣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조회에 나서는 학생들 사이에 섞였습니다.
오늘 조회 시간에는 근래에 아동도서관 건설에 막대한 돈을 기부한 자선가와 그 사업을 추진하는 시의원이 ‘꿈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연설할 예정이었습니다. 그 자선가가 바로 미야지파의 회장이자 이제는 ‘센츄리 건설’의 회장이 된 미야지 코조, 그 사람이었습니다.
키쿠오는 느릿하게 교정으로 걸어 나오는 행렬 속에서 배에 닿은 단도를 꽉 움켜쥡니다.
“너희 아버지는 너처럼 ‘으윽’ 하고 힘 안 준다. 힘주면 안 된다. 자, 계속해 봐.”
〽 때—마침—바로—그때—
“틀렸다. ‘으때—’다. ‘으드애—’가 아니라니까.”
〽 때—마침—
“틀렸다! 좀 더 안쪽에서 소리를 내봐라.”
〽 때—
“아니야. 자, 내 배를 한번 봐라. 움직이는 게 보이잖아. 네 배는 안 보여. 배에 힘이 안 들어간다는 얘기다. 자.”
〽 때—마침—바로—그때—
땀을 뻘뻘 흘리는 ㅤㅅㅠㄴ스케 앞에서 책상을 탁탁 때리는 사람이 이와미 츠루타유였고, 이때 이미 칠순을 넘긴 나이였지만 얼마나 목소리의 힘이 좋고 피부의 혈색이 좋은지, ㅤㅅㅠㄴ스케의 빛나는 젊음조차 그 생명력 앞에서는 시들시들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 구—마가이노—, 지로후—
“아, 또 이러네. ‘후—’가 아니라 ‘오—’다.”
〽 구—마가이노—
“턱이다. 턱을 당겨야 한다니까.”
〽 지로후—
“아 또 이러네! ‘지로오—’라고, ‘지로후—’가 아니라. 자, 뒤쫓아왔다부터.”
〽 뒤쫓아왔다—, 아—, 아—, 아—
“그게 아니라, ‘왔다—, 아—아아—’다.”
〽 왔다—, 아—
“박자를 당기면 안 된다니까! ‘왔다—, 아—아, 아아—, 아아아——’라고 했잖아!”
마치 서로에게 짖어대는 투견들 같아서 지켜보는 키쿠오와 토쿠지까지 숨이 막히는 듯합니다.
“아버지는 좀 어떠셔?”
슌스케가 걱정하며 묻자, 사치코가 현관에 걸터앉으며 대답합니다.
“우시더라, 불쌍하게.”
“아버지가? 우셨다고……?”
“그래, 그랬어. 그 사람, 두 살 때 첫 무대를 밟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대를 펑크 낸 적이 없어. 진짜 열이 나든, 배탈이 나든, 기저귀까지 차고 무대에 섰던 사람인데, 당연히 억울하지 않겠니."
읏차, 하고 몸을 일으킨 사치코는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카레 접시를 발견하고는…….
“오세이, 나도 카레 좀 줘.”
그렇게 말하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가려는데, 슌스케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무대는 어떻게 한다는데?”
“아, 참.”
멈춰선 사치코는 이미 기모노의 오비 끈을 풀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대역이 그렇게 쉽게 찾아지진 않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간사이 가부키의 진수’라고 떠들썩하게 선전해 놓고 도쿄에서 배우를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 하나이 한지로를 대신할 배우도 없다고 하니.”
그리고 방으로 가려던 사치코가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이건 내 감인데 말이다.”
그런 전제를 붙이면서…….
“……ㅤ슌도령. 너, 마음의 준비는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