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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92164955
· 쪽수 : 574쪽
· 출판일 : 2021-09-17
책 소개
목차
이 책을 내면서 / 5
들어가는 말 / 8
로마서 1장 / 17
로마서 2장 / 59
로마서 3장 / 80
로마서 4장 / 112
로마서 5장 / 152
로마서 6장 / 189
로마서 7장 / 216
로마서 8장 / 253
로마서 9장 / 318
로마서 10장 / 342
로마서 11장 / 369
로마서 12장 / 407
로마서 13장 / 436
로마서 14장 / 471
로마서 15장 / 510
로마서 16장 / 545
책속에서
서문
로마서는 신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이고 신․구약 전체로 보아도 가장 위대한 책들 가운데 하나이며, 신약적 구원 계획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교리서가 특히 로마서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도리어 로마서를 기피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를 위한 구원 계획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설교자들 가운데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들은 구원을 설교했다 하면 의레 로마서를 외면하고 사도행전에서만 맴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기독교 선교방송 채널에서 하고많은 날 반복적으로 귀따갑게 흘러나오는 말이 “사도행전 몇 장 몇 절, 사도행전 몇 장 몇 절” 하는 소리다. 왜 그런지 아는가? 사도행전은 신약의 구원 교리를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사는 설교자들이 구원을 설교하면서 사도행전만 뇌까린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보면 기독교 방송인들 예외가 아니다.
이 시대의 구원 계획에 관한 교리서라면 누가 뭐라 해도 로마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 주제다. 마틴 루터가 성경책들 가운데서 유달리 좋아했던 책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두 서신서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바로 이 두 서신서가 마틴 루터를 움직여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오죽이나 이 두 서신서를 사랑했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느냐마는,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일컬어 “사랑하는 케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케이”는 그의 아내 카타리나의 애칭이었다. 마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자기 아내로 여길 만큼 사랑했던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 마틴 루터는 여기에 주목했고, 그가 이것을 강조하고 담대하게 역설하고 나선 데서부터 종교개혁은 비롯되었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여기에 덧붙여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책이 로마서라면, 구원받은 사람이 영원히 구원받은 사람으로 지탱되는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요 여기에 다른 어떤 것도 덧붙여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책이 또 갈라디아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시대에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게 된 것이다. 예컨대, 캠밸주의자들은 로마서 6장을 싫어하는데, 그 이유인즉 로마서 6장에서 “침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물침례”는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들은 갈라디아서 3장도 싫어하는데, 이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갈라디아서 3장은 “침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물침례”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서를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고 그 외에 몇 부분으로 장들의 내용을 세분하기도 하는 등, 그 개요의 윤곽을 정리하는 데 꽤나 신경을 쓰지만, 그런 식의 개요 구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이방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예컨대 1장의 “이방인”이 누구를 말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한다든지, “유대인”이 과연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 엄벙덤벙 헤매다가 결국 수렁에 빠져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든지 하는 점들이 오히려 문제라면 문제다. 로마서가 유대인과 구원받은 이방인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까지 모두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전에 구원받은 이방인과 그렇지 못한 이방인, 그리고 구원받은 유대인과 그렇지 못한 유대인 사이의 차이점도 제대로 알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 것을 내가 늘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바울은 로마,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그리고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도 어떤 중대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은 둘과 넷과 하나의 순으로(2-4-1) 편지를 보냈으며, 이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일맥상통한다. 즉 로마와 고린도가 처음 둘이며, 다음 네 곳이 갈라디아와 에베소와 빌립보와 골로새로 한 그룹을 이루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낸 서신이 나온다. 결국 정리해 보면 이러한 배열 방식은 둘, 넷, 하나의 순으로(2-4-1) 전개되며, 이는 둘(2)은 『한 때(a time)』와 둘 곱하기 둘인 넷(2×2=4)은 『두 때(times)』와 하나(1)는 『반 때(an half)』와 짝을 이루게 된다.
로마서는 모두 16장 433절로 구성돼 있고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총 9,477개의 단어로 기록되었는데, 이 책의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A.D. 58년으로 잡는 게 보통이다. 원래 바울 서신서들의 기록 연대를 정확하게 짚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로마서의 경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도행전 25장 이전의 어느 시점, 즉 바울이 아직 로마를 방문하기 이전에 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로마서를 읽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로마에 한번 꼭 가고 싶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는 내가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너희에게 나아갈 형통한 여정을 갖게 되기를 간구하노라.』(롬 1:10)고 쓰고 있다. 이러하던 그가 드디어 로마로 떠날 수 있는 계기가 사도행전 25장에서 마련되는데, 유대인들에게 고소 당했던 바울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기보다는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기 위해 로마의 아우구스토에게 상소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될 수 있는 빌미를 만든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시점은 사도행전 25장 이전의 20장이나 21장 또는 22장 언저리였을 게 분명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A.D. 58년경으로 그 기록 연대를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C. I. 스코필드는 <스코필드 주석성경> 난외주에 이보다 훨씬 늦은 A.D. 60년으로 기록 연대를 명기해 놓았는데, 설사 이때로 기록 연대를 잡더라도 사도행전 25장은 물론 24장보다도 이전인 것은 변함이 없다.
로마서의 기록 연대를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밝혀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로마서에서 “몸의 신비”가 계시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서 16장 끝 부분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제는 이 신비의 계시대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따라 너희를 견고케 하실 능력 있는 그분께, 이 신비의 계시는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났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들의 성경을 통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게하고자 모든 민족에게 알려진 것이니』(롬 16:25,26). 이로 미루어 바울은 아무리 늦어도 사도행전 28장 훨씬 이전부터 이미 “몸의 신비”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이 “몸의 신비”에 대해 쓴 것은 어쩌면 사도행전 20장 이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코넬리우스 스탬이나 베이커, 오헤어 등 “드라이 클리너”(극단적 세대주의) 일파가 사도행전 28장 이전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없었다고 믿도록 어떻게든 당신을 설득하려 했지만, 바울이 벌써 사도행전 22장 이전에 이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계속 근거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서를 읽다 보면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핵심 어구 하나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하나님의...”(of God)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으로서, 예를들면, “하나님의 의”라든가,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 등과 같은 서술들이 다 그런 예에 속한다. 성경의 다른 책에 비하여 유난히 로마서에서 이런 어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1장만해도 『하나님의 사랑』(7절), 『하나님의 뜻』(10절), 『하나님의 능력』(16절), 『하나님의 의』(17절), 『하나님의 진노』(18절), 『하나님의 진리』(25절), 『하나님의 심판』(32절) 등의 어구들이 나오고 있고, 2장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4절),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5절), 『하나님을 자랑』(17절), 『하나님의 이름』(24절) 등이 서술되는가 하면, 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2절), 『하나님의 신실하심』(3절), 『하나님을 두려워함』(“fear of God,” 18절), 『하나님의 영광』(23절) 등이, 그리고 15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7, 8, 16, 18절에서 이런 표현들이 나오고 있다. 로마서 전체를 통틀어 어림잡아도 이런 형식의 어구가 최소한 스물 다섯 번 이상은 족히 될 것이다.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 즉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로마제국 사람들에게 써 보낸 서신서인데,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 서신서를 쓰던 당시에는 이태리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프랑스도 로마제국에 포함돼 있어 이들 나라들이 오늘날까지도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 계열 언어를 사용하게 된 연유가 되었고, 그밖에도 스위스라든가,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오스트리아는 물론 서부 독일과 심지어 잉글랜드 지방 및 일부 아일랜드 지역까지도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그 결과 튜턴족과 게르만족이 사용하던 북방 언어들 가운데에도 상당수의 라틴 계열 언어가 유입되었는데, 아무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과 일부 동유럽까지도 로마제국의 영토였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다. 로마서 15장에 보면 이 사실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나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케 하심으로써 이방인들을 제물로 드리는 일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수 있도록 하심이라.』(롬 15:16)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으되, 『이방인들을 위한』 일꾼이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조를 이룬다. 8절을 보라. 『이제 내가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일꾼이 되셨으니』라고 천명한다. 그리하여 할례자들을 위해 사역하셨던 그리스도와 이방인들을 위해 사역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의 자신을 대조하고 있다.
로마서를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유의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책에서 이방인들을 거론할 때, 우리가 바로 그 이방인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이방인”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이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 순수한 이방인을 지칭하는 것인지 잘 분간해서 읽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로마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어느 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의 세 부류로 나누어서 상대하신다. 이방인이 구원받으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다. 유대인도 구원받으면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으로 그 신분이 바뀐다. 반면 이방인이 구원받지 않은 채 그대로 있으면 그냥 이방인이다. 유대인도 복음에 순종하고 구원받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유대인으로 남는다. 그래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교회)과 이방인, 성경에서는 이 세 부류 외에는 그 누구도 다른 데 속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이 셋 중 한 가지에 속하도록 되어 있다. 자, 그럼 로마서 1장 1절부터 공부를 시작하자.
1: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내가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
와 마찬가지로 너희 가운데서도 다소 열매를 거둘까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시도
하였으나 (지금까지 방해를 받았느니라.)
14 헬라인들이나 야만인들이나 지혜 있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에게나 내가 다 빚진 자로
다.
15 그러므로 나로서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
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내가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너희 가운데서도 다소 열매를 거둘까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시도하였으나 (지금까지 방해를 받았느니라.)』(13절).
여기서 『너희』란 비단 “성도들”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바울이 여기서 『너희』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까지 포함돼 있다. 이는 15절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그는 이들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혼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쓰여진 편지가 아니다. 앞서 6절에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7절에서처럼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써보낸 편지가 이 서신서다. 그래서 이 책 이름을 “로마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라고 붙인 것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보고 싶은 심정뿐만 아니라 그들 주변에 있는 구원받지 못한 혼들도 생각하면서 구령의 열정에 불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헬라인들이나 야만인들이나 지혜 있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에게나 내가 다 빚진 자로다』(1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