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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2219655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6-11-24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내 손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꽃 진 자리에서 꽃을 기다리다/ 길고양이가 다녀갔어/ 기우祈雨/ 서어나무 그늘 아래 쉬다/ 간절곶/ 식목/ 내 손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눈물 혹은 장마/ 장지葬地에서/ 우는 시간/ 내가 지상에서/ 신성新星/ 선홍빛 노을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저녁에/ 병산에서 4
제2부 민들레는 아직도 핀다
봄날/ 적벽에서/ 祭日/ 부고/ 민들레는 아직도 핀다/ 상춘賞春1/ 상춘賞春2/ 상춘賞春3/ 바람 부는 날/ 산본역에서/ 사진/ 비오는 날/ 병산에서 1/ 병산에서 2
제3부 풍경 속에 나를 넣는다
봄밤/ 풍경 속에 나를 넣는다/ 저녁 무렵/ 결혼식 뷔페에서/ 병산에서 3/ 어머니의 밤/ 수술 1/ 수술 2/ 외출/ 외할아버지/ 자수 혹은 고백/ 한사코/ 새것은 크다/ 담배/ 일요일
제4부 여행에서 돌아와 나무를 의심하다
말복/ 여행에서 돌아와 나무를 의심하다/ 수중전/ 풀을 뽑다가/ 모과꽃/ 할머니들은 혼자 산다/ 치통/ 立冬지나 감나무/ 눈물/ 새의 문안/ 쉬고 있는 기찻길/ 낮술/ 입동
저자소개
책속에서
꽃 진 자리에서 꽃을 기다리는 시간
슬픔이 아주 천천히 말라가는 시간
울컥! 할 수도 있겠으나 그냥 또
떨어진 꽃잎 세다보면 기어이는 잊을 수도 있을
허기가 슬픔을 이기는, 기차의 행선지가 궁금해지는
그런 순간은 언제나 슬픔이 끝난 시간에
조금은 아린 혀끝으로 오려니
꽃 진 자리에 돋아나는 초록의 할거에도
질기게 슬픔을 이긴 시간이 묻어 있으려니
- 「꽃 진 자리에서 꽃을 기다리다」 전문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 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 「우는 시간」 전문
물의 흐름이라는 것이 깊으나 얕으나
참 유장하기도 하지요
새의 비상이라는 것은 높건 낮건
참 쓸쓸하지요
여기 병산에는 지금 막 해가 지고
달이 가까스로 산을 넘어 왔어요
민박집 옹기굴뚝 연기가
저도 모르는 사이 담을 넘듯 말이죠
시간이 되었으니 돌아가야겠지요
강을 거슬러
모래톱처럼 쌓이는 슬픔 따위는
새의 안중에는 없을 테니까요
눈 밝은 사금파리는
달빛에서도 빛이 나는가 봐요
새가 떨어트린 눈물처럼 빛나다가
서둘러 눈가를 훔치네요
모래 속에 눈물 한 방울 숨겨 두고
흐르는 물소리에 긴 사연 섞어 두고
돌아가야겠지요 시간이 되었으니
- 「병산에서 1」 전문
나무를 캐 본 사람은 뿌리가 어떻게 땅을 붙잡고 있는지 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꽃을 피우기 위해 열매를 매달고 꿋꿋하게 서 있기 위해 먼 하늘을 쳐다보기 위해 또한 제 몸뚱아리를 살찌우기 위해 뿌리는 음지에서 음지를 지향한다
뿌리는 나무다
나무는 뿌리다
최초의 씨앗이 움을 트고 한줄기 가지가 땅을 뚫고 솟아나오면서부터 뿌리는 지구의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작은 가지 하나에 뿌리 하나씩 자신이 피운 꽃을 보지도 못하면서 그저 먼 향기로 알아채면서
느티나무는 느티의 뿌리를 가졌다 산뽕나무는 산뽕의 뿌리를 가졌다 참나무는 도토리의 뿌리를 가졌다
나뭇가지가 허공의 자유를 향해 두 팔 뻗을 때 뿌리는 억압을 뚫고 생존을 쟁취한다 나뭇가지가 자유로운 새 한 마리를 품을 때 뿌리는 가문 땅의 물기를 빨아 연명한다
나무 한 그루를 옮겨 심고 나는 오로지 뿌리를 위해 물을 주고 뿌리를 위해 거름을 준다 내 눈에는 오래도록 내가 캐 낸 나무의 뿌리가 보인다
- 「식목」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