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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2219693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17-07-31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분홍빛/ 오래된 사과밭/ 눈부신 고독/ 환절기/ 공양/ 고구마/ 바닥의 말/ 어머니의 거름/ 약/
속수무책 한나절/ 서랍 속에 침묵/ 바람의 상처/ 오해
제2부
적막 속에 소란/ 팔월/ 틀/ 한 평/ 기다리는 가방들/ 푸른 점 하나/ 아 모과를 읽었네!/ 겨울포도밭을 지나며/ 엄마의 기다림/ 떠나는 풍경/ 잡초
제3부
달맞이꽃/ 그곳에 두고 온 꽃/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슬픈 새벽강/ 향일암 오르며/ 너처럼 나도 간다/ 늙은 저녁/ 낙엽/ 억새밭/ 소설小雪/ 우는 손/ 그 말은
제4부
삼월의 눈/ 어여쁜 봄날/ 아카시아 꽃잎을 따라서/ 섬진강변에서/ 꽃무늬 의자/ 맨드라미/ 할슈타트의 오후/ 나의 별아/ 춘자/ 강가에서/ 저녁구름으로 만난 우리는
저자소개
책속에서
밤이면
아름드리 몸통의 늙은 나무가
몸이 아파 울었다
검은 고요 삼키면 삼킬수록
가지마다 푸른 아픔이 구름 떼처럼 매달렸다
하얀 초승달이 엉클어진 머리칼을
곱게 빗어 다독여도
그 울음 재우지 못했다
바람 잦은 모래 언덕에 홀로 서서
모래알보다 많은 날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견딘 만큼
서러움의 그늘은 넓어지고 무거워졌다
하룻밤이라도
누가 저 지독한 아픔을
포근히 안아 잠재워줄 수 있는가
먼동이 트면
휘어진 등뼈에 굵은 줄기 하나 세우려고
숨소리 가빠지는
노송 한 그루
―「눈부신 고독」전문
허공이 흔들린다
서로 다른 가랑잎 우르르 허공 속에서 소용돌이를 친다
할 말을 잃고 토막 신음을 뱉으며
한 줌 흙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끝없는 고행을 한다
구름이 몰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무벤치에 빈병처럼 앉아있던 노인이 등을 구부리고 어디로 간다
그 느린 걸음을 다그치지 않으며
빗방울들 조용히 따르고
바람은 노인의 얇은 목도리를 만장으로 날린다
모두가 간다
가랑잎, 구름, 빗방울, 바람, 노인, 올 것이 다 왔다가
갈 것이 다 가고 있다
어딘가 가야 할 내 몸도 창가에서 멀어지고
허공 속으로 가는 새들도 가물가물하다
여기저기 쓸쓸함을 챙겨 지고
한 풍경이 적멸한다
―「떠나는 풍경」전문
빈 몸들입니다
더 이상 비워낼 것이 없는
옆구리에 품고 있던 토실토실한 생의 자루
뚝뚝 분질러 내주고 바람 앞에 경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깡마른 뼈대들
서로 부대끼고 비벼가며 부스러지는 꺼풀들
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서걱
저 마른 뼈대들이 성스러운 몸짓을 따라할 수 있다면
지상에서 하루하루 피 흘린 날들이 저렇게 누렇도록 순해져서
상처로 패인 기억의 살점들마저 부서지고 부서지면서
삭아가는 몸까지 공양으로 바칠 수 있습니까
비워낼 것이 없는 소리조차 공손한
늦가을, 옥수수 밭
―「공양」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