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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88993119589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3-02-28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흥선군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나
최익현의 상소와 무위로 돌아간 흥선대원군의 개혁들
1차 아편전쟁에 위기를 감지한 일본, 허송세월한 조선
요시다 쇼인과 문하생들 VS. 박규수와 사랑방 손님들
조선과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 세계를 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은 누구의 책임일까
외세를 등에 업은 고종과 고메이 천황의 저항
일본의 하급무사와 조선의 유림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한 일본 VS. 무능한 주류가 존속한 조선
김옥균은 왜 사카모토 료마가 되지 못했나
이완용은 왜 이토 히로부미가 되지 못했나
일본과 조선 개혁의 문화적·경제적 차이
글을 마치며 |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고종에 대한 혹독한 평가와 달리,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덕수궁 앞에 수천 명의 백성들이 몰려와 곡을 했다.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더 격분한 이 백성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넘겨주고도 9년이나 더 살았던 군왕의 부재가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왕은 ‘백성의 아버지’라는 유교적 관념의 영향으로 무능한 왕이더라도 살아서 여전히 백성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든든하고 믿음직했던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고종이 죽자 못난 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백성들은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만세운동으로 결집했다. 고종은 죽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역설을 남긴 것이 아닐까. _ 20쪽, <흥선군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나> 중에서
결국 제1차 아편전쟁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조선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필요성이 라는 것이 급박한 위기라기보다는 반석처럼 딛고 서 있던 중화주의적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감지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조선 대외정책의 진정한 변화는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다시 20년이 흐른 1882년 《조선책략》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_ 63쪽, <1차 아편전쟁에 위기를 감지한 일본, 허송세월한 조선> 중에서
우리에게는 독자적으로 ‘조선의 길’을 제시해줄 만한 조선의 사상가가 부재했다. 개화의 필요성을 지식층인 양반과 선비들이 받아들이고, 선비와 양반들의 각성이 백성들에게 스며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이 만약 후쿠자와 유키치처럼 유럽과 미국을 주유했더라면, 최소한 1847년에 예정대로 중국에 사신으로 라도 다녀왔더라면, 그의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_ 113쪽, <조선과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 세계를 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