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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3205817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17-05-10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수채화 속으로의 긴 여정
2. 고장 난 브레이크
3. 빈 소주병을 보면서
4. 그 바다가 그립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단추 중에는 예비단추가 있다. 언제 쓰인다고 기약을 받아 놓은 것도 아니고 영원히 쓰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나저제나 불러주기만을 기다릴 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복 안쪽 어두운 곳에서 때를 기다린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꿈을 꾸듯이 예비단추는 옷 표면에 단추로 매달려 보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슬프다 한 떨기 남은 궁중의 꽃잎아, 가는 봄에 얼마나 울었더냐.’라는 궁녀에 대한 안타까운 시가 있듯이 단추를 보면 언젠가는 간택되기를 바라는 궁녀 신세 같기도 하다.
-<단추의 자존심> 중에서
머리를 깎는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고향을 찾은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이발소가 생각난다. 키가 작아 이발 의자에 올려놓은 나무판에 앉아 머리를 깎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발이 끝나고 나면 밤송이 같은 내 머리통을 쓰다듬어주시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 어쩌면 월드 이발소에서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을 찾아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낡고 빛바랜 것들이 주는 편안함. 추억은 그런 것들 속에서만 살아 숨 쉬는 것일까.
-<월드 이발소> 중에서
빈 소주병이 달리 보인다. 절망하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속울음을 끝까지 받아준 것이 저 병이 아닐까. 나 역시 가끔 소외감이 내 속을 휘저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소주 한잔은 큰 위로고 기울여 따르는 소주병은 고마운 친구다. 어떤 마음이든 다 받아주고 달래며 속을 데워준다. 가난한 이들의 눈물과 삶을 닮은 소주. 같은 술인데 어떤 땐 달고 어떤 날은 지독하게 쓴맛이다. 때로는 싸움을 부추기기도 하고 화해시키기도 한다. 과하면 몸과 정신을 구부러뜨려 실수를 저지르게도 하지만 적당히 마시면 세상을 다가진 듯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니 ‘은혜로운 주酒님’이라는 생각도 든다.
-<빈 소주병을 보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