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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93255553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10-08-30
책 소개
목차
1장 세상을 읽다
돌밭이라고 초록이 없을까
-정온의 『동계집』 중 ‘거친 밭을 일군 데 대한 설(說)’ 편
수북이 쌓인 책을 즐기다
-박지원의 『연암집』 「공작관문고」 중 ‘소완정기(素玩亭記)’ 편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보라
-정약용 『다산시문집』 중 ‘여유당기(與猶堂記)’ 편
형체란 부질없는 것
-이남규의 『수당집』 중 ‘소재기(小齋記)’ 편
기다림의 미학
-장유의 『계곡집』 「계곡선생집」 중 ‘잠와기(潛窩記)’ 편
변화하는 사람
-장유의 『계곡집』 중 ‘화당설(化堂說)’ 편
묻는 곳에 길이 보인다
-박지원의 『연암집』 「종북소선」 중 ‘북학의서(北學議序)’ 편
나는 나로소이다
-박지원의 『연암집』 중 ‘선귤당기(蟬橘堂記)’ 편
뿌린 만큼만 거두어야 복
-박홍미의 『관포집』 중 ‘몽포설(夢飽說)’ 편
2장 마음을 읽다
게으름이 나를 해쳐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 중 ‘게으름을 풍자함’ 편
귀를 기울이면
-강희맹의 『훈자오설』 중 ‘요통설(溺桶說)’ 편
천지간에 내 것이 있을까
-이곡의 『가정집』 중 ‘차마설(借馬說)’ 편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장유의 『계곡집』 「계곡선생집」 중 ‘용졸당기(用拙堂記)’ 편
흐르는 강물처럼
-신흠의 『상촌집』 「상촌선생집」 중 ‘기재기(寄齋記)’ 편
나를 잃은 자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중 ‘수오재기(守吾齋記)’ 편
여유는 즐기는 자의 것
-윤순의 『백하집』 중 ‘차군정기(此君亭記)’ 편
허허 웃으니 수가 보이네
-정도전의 『삼봉집』 중 ‘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편
뉘우치는 삶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중 ‘매심재기(每心齋記)’ 편
행복의 기회
-허균의 『성소부부고』 중 ‘임창헌기(臨滄軒記)’ 편
분수를 안다는 것
-안정복의 『순암집』 중 ‘안분설(安分說)’ 편
부끄럽게 사는 삶
-권근의 『양촌집』 중 ‘졸재기(拙齋記)’ 편
순수가 나를 깨워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 ‘영처고 자서(?處稿自序)’ 편
통곡하는 집
-허균의 『성소부부고』 중 ‘통곡헌기(慟哭軒記)’ 편
자신을 사랑하는 자
-심낙수의 『은파산고(恩坡散稿)』 중 ‘애오헌기(愛吾軒記)’
3장 사람을 읽다
나의 빈천함을 아는 벗
-박제가의 『초정전서』 중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편
내겐 너무 소중한 친구
-박지원의 『연암집』 중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편
나를 위로하는 여섯 친구
-이색의 『목은집』 「목은문고」 중 ‘육우당기(六友堂記)’ 편
옳다구나, 미쳐보세
-박제가의 『정유각문집』 중 ‘백화보서(百花譜序)’ 편
-이규상의 『병세재언록』 중 ‘석치(石癡) 정철조’ 편
충고를 구하다
-최익현의 『면암집』 중 ‘성헌기(誠軒記)’ 편
책 속의 빛을 좇아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중 ‘간서치전(看書痴傳)’ 편
형제만 한 벗 있으랴
-이곡의 『가정집』 중 ‘의재기(義財記)’ 편
우정도 공을 들여야
-박제가의 『초정전서』 중 ‘백탑청연집서(白塔淸緣集序)’ 편
책속에서
어떤 사람이 벽돌로 집을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되는 듯싶더니 모양이 갖춰지면서 점점 벽이 흔들렸다. 벽돌의 낱낱을 꼼꼼히 만지고 들여다봐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집 짓는 것을 멀리서 구경하던 한 아이가 “왜 벽돌이 위로 올라갈수록 커지는 거예요?” 하고 물어왔다. 그제야 그는 짓고 있던 집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이가 선 위치에까지 다다르자 자신이 짓고 있던 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맙소사, 아이의 말대로 벽돌의 가로 길이가 위로 갈수록 아주 조금씩 긴 게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위기에 봉착한 사람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적절한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이다. 시야가 넓지 못하면 그 어떤 전문 지식을 지녔다 하더라도 하등의 쓸모가 없는 까닭이다.
- 수북이 쌓인 책을 즐기다 中
제(齊)나라와 양(梁)나라 임금은 지위가 높지 않은 것이 아니요 재물이 부족한 것이 아닌데도 성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그리하여 시체가 성에 가득하도록 사람을 죽였다가 끝내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도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제 분수를 편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오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어찌 모욕을 당하고 재앙을 맞는 일이 없겠는가.
가득 찬 구덩이에 물을 더 부었을 때 넘치는 것은 구덩이가 물의 분수이기 때문이요, 힘껏 당긴 활을 더 당겼을 때 부러지는 것은 당기는 한도가 활의 분수이기 때문이다. 안정복에게 분수란 사람에게 본래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어서 조금이라도 사심이 개입되면 천재지변과 인해(人害)가 더불어 이르게 되는 존재였다. 송나라 학자 소옹(邵雍)이 “분수를 편히 여기면 몸에 욕됨이 없다”고 한 말을 뜻깊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 분수를 안다는 것 中
“저도 과거에는 그곳에다 오줌 누는 양반집 자식을 보면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저자를 지나는데 소변이 몹시 마렵지 뭡니까. 급한 대로 오줌통에 오줌을 누고 보니 대단히 편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오줌통에 오줌을 누지 아니하면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제가 그곳에 오줌 누는 것을 보고 전부 비웃더니, 이윽고 비웃는 자가 차츰 줄어들고 말리려는 자도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여럿이 보는 중에 오줌을 누어도 비난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오줌통을 쓴다 해서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자식의 되바라진 반응에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슬픈 일이다. 네가 이미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았구나. 처음에 저자의 사람들이 너나없이 웃은 것은 모두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세를 당해야 네 경거망동이 고쳐지리라 생각했던 게지. 그것이 점점 드물어진 것은 네가 여전히 한심하기는 하지만 그나마 양반집 자식으로 여긴 이들이 몇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곁에서 보고도 아무런 분질을 하지 않은 것은 네 녀석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아라. 개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싼다고 비웃는 이들이 있더냐! 잘못된 짓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개돼지와 같은 종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이더냐.”
(중략)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양반가 아들은 평소처럼 저잣거리 오줌통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뒤통수에서 바람이 일더니 웬 막대기가 이마를 후려쳤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아들은 막대기를 휘두른 남자의 멱살을 잡고 따졌다.
“어떤 죽일 놈이 겁도 없이 덤비느냐! 내 거의 십 년 간 여기에 오줌을 누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네놈이 뭔데 날 건드리느냐?”
“온 저자의 사람들이 참고 있다가 이제야 분풀이하는 것인데,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주둥이를 놀리는구나!”
남자가 윽박지르며 양반가 아들을 떠밀었다. 그리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 저자 한복판에 내동댕이친 뒤 기왓장과 자갈을 닥치는 대로 던졌다. 죽기 직전까지 몰매를 맞은 양반가 아들은 하인들에게 업혀 가까스로 집에 돌아왔다. 그렇지만 한 달이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때서야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떠올리며 오열했다.
“아버지 말씀이 꼭 맞았구나. 웃음 속에 칼날이 숨어 있고 노여움 속에 진정이 들어 있다는데, 지금에 와 아무리 아버지의 지론을 듣고자 한들 얻을 길이 없구나.”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위패 앞에 이마를 조아리며 악벽을 고치겠노라 맹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들은 품행 단정한 선비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훈자오설訓子五說』에 나온 이야기 중 하나로 ‘경청의 중요성’에 관하여 다룬 것이다. 『훈자오설』은 강희맹이 아들 구손(龜孫)에게 건네는 다섯 가지 훈계를 적은 것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학업으로 돌아온 구손이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자 이를 염려해 대의를 깨우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 다섯 편을 지어 책으로 엮어준 것이었다.
- 귀를 기울이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