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세묘노비치 비고츠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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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벨라루스에 속한 고멜의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는 한편 샤니야브스키 공립대학에서 철학과 역사를 전공하였다. 모스크바 대학 졸업 후 고멜에서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문학, 심리학, 연극에 대해 활발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객관적 심리학을 표방한 러시아 심리학계의 새바람과 더불어, 비고츠키는 1924년 전全 러시아 제2차 신경심리학회에서의 발표를 계기로 같은 해에 모스크바 대학 심리학 연구소에서 재직하게 되었으며, 이후 손상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 활동을 계속해 갔다. 모스크바에서 머무르는 동안 연구와 강의 활동에 매진함은 물론, 레닌의 아내 크룹스카야와 협력하여 현장 교육 개선과 향상을 위해 헌신하면서 모스크바와 칼코프에서 의학 수련 과정을 밟았다.
비고츠키는 부분적 데이터를 근거로 심리학의 분파가 우후죽순 식으로 갈라져 나가며 독립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심리학의 위기’로 칭하였고 특히 당대의 가장 큰 심리학의 줄기였던 연합주의와 게슈탈트주의 심리학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통일된 하나의 심리학을 꿈꾸었다. 그 결과 인간 발달에서 기호와 상징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문화적, 사회적인 사회 발생과 개인의 개체 발생, 미소 발생 사이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풀어낸 문화-역사이론Cultural-Historical을 창시하였다. 스탈린 집권 이후 교조적 유물론의 영향으로 학문적 입지가 좁아졌으며, 1934년 폐렴으로 사망한 뒤 2년 후부터 20년 동안 그의 이론과 저작은 ‘부르주아 심리학’이라는 누명하에 러시아에서 폐기되고 금서 조치되었다.
38년간의 짧은 일생 동안 비고츠키는 180여 편의 저술을 남겼으며, 1950년대에 그중 일부가 브루너 등의 서방 학자들에 의해 소개되면서 그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오역과 의도적 왜곡, 불성실한 학문적 풍토 등으로 인해 여전히 비고츠키 사상의 많은 부분은 탐사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겨져 있으며, 조금씩 베일이 벗겨질 때마다 80년이 넘은 그의 논의는 오늘날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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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로마노비치 루리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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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야는 소련 심리학계의 거두로 비고츠키, 레온티예프와 함께 비고츠키 서클을 이끈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세칭 비고츠키 학파의 2인자로서 1936~56년의 학문 탄압으로 사장될 위기에 처한 비고츠키 학파의 학문적 성과를 서방에 알리는 데 마이크 콜과 함께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뇌과학과 신경 병리학에 매진하여 신경 심리학이라는 분과를 정립하였다. 올리버 색스에 의해 일찍부터 서방에 알려진 세계적인 학자로서, 국내에도 그가 쓴 임상 기록을 묶어 낸 책 2권이 번역되었다. 브루너가 고전이라 칭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가 그것이다. 대립되는 두 현상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대한 임상 보고서인데, 읽어 보면 비고츠키 학파의 주장이 얼마나 철저한 조사와 실험에 근거한 것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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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츠키 연구회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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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고 진정한 교육적 혁신을 위해 비고츠키를 연구하는 모임, 비고츠키 원전을 번역하고 현장 연구를 통한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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