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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88996073352
· 쪽수 : 108쪽
책 소개
목차
chapter1 나는 들어간다
chapter2 On The Road
chapter3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chapter4 Re:
chapter5 There are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이들을 낳았다. 매일매일이 똑같다. 심지어 집도 이젠 너무 지겹다. 그러던 중 꽃이 만지고 싶었다. 봄이 되었다고 해서 꽃구경을 가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꽃꽂이를 다녔다. 꽃 냄새, 밤 냄새가 너무 좋았다. 꽃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대부분이 시들었고 다시 일주일 후에는 새로운 꽃을 만들어 가져왔다.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또 다른 꽃을 보며 일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리시얀셔스 몇 송이가 남아서 작은 화병에 담아놓으려는데 작은 화병이 없었다. 눈에 띠인 다 쓴 스킨 통을 발견하였다. 통들 중에 예쁘고 귀여운 것은 다 썼다고 바로 재활용 통으로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에 여기저기 빈 통들이 쉽게 눈에 띈다. 그 통에 조금이라도 생명력이 좀 길었던 꽃 몇 송이를 꽂아두었다.
/보경아 이 꽃 여기다 꽂으니 예쁘지 않아? 어디다 둘까?/ 물어보니.
(싱크대를 가리키며) /엄마 여기다 둬요./ 그런다.
/왜?/
/엄마가 제일 많이 서있으니깐 제일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아들의 작은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난 이 막힌 벽을 보며 하루의 반 이상을 서있는 신세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꽃을 바꿔가며 병을 바꿔가며 계속 거기다 두면서 나는 꽃 냄새를 맡으며 아름답게 설거지를 즐길 수 있었다. 빈 병과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나와 같았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나름 나도 쓸모 있는 인간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집에만 있다 보니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찰라 였다. 그런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꽃꽂이와 아들의 말 한마디가 다시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이기 전에 아줌마가 아닌 여자였고, 여자이기 전에 인간 김지원이었던 것이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거기엔 반복성, 연속성, 항상성을 가진다. 영아를 키우는 엄마는 이 일상이 너무나 반복적이고 연속적이어서 비록 몸은 힘들지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쉽게 지진다. 어쩌면 그런 일상 속에서 비일상적인 것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즉, 일회적이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쓴다. 뭔가 다른 일상을 꿈꾸고 있다고나 할까?
쓸모 없는 빈 병이지만 조금 예쁘거나 색이 좀 특별한 병들은 오히려 특별하게 생각되어 버리기가 아쉽다. 반면 늘 향기롭고 예쁘지만 시들어진 꽃들은 쉽게 버리게 된다. 이런 상반된 관계를 가진 사물들이 만나서 하나의 완성체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지친 자아를 찾고 버려진 사물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갖게 하고 싶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일상 소품들은 나에게 손짓을 했다면, 이번 작품들의 소품들은 나의 자아를 찾게 해주었고, 내가 그들에게 손짓을 해서 다시 생명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