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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96128960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4-09-30
책 소개
목차
제1장. 계사년(癸巳年. 선조 26년. 서기 1593년)
제2장. 갑오년(甲午年. 선조 27년. 서기 1594년)
제3장. 을미년(乙未年. 선조 28년. 서기 1595년)
제4장. 병신년(丙申年. 선조 29년. 서기 1596년)
제5장. 정유년(丁酉年. 선조 30년. 서기 1597년)
제6장. 무술년(戊戌年. 선조 31년. 서기 1598년)
제7장. 기해년(己亥年. 선조 32년. 서기 1599년)
선조실록 기록 (27년 10월 11일 서기 1594년 11월 22일)
저자소개
책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루무치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우루무치는 숲속에서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 조선 군사의 수를 헤아렸다. 하나, 둘... 다섯. 우루무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었다. 그래, 다섯 정도야 한순간이지...... 우루무치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선 군사 다섯을 향해 기다싶이 다가갔다. 조선 군사 다섯은 모두 창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채 탁탁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불티를 튀기면서 타고 있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서서 이따금씩 하품을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날이 춥구만.”
“그렇구만. 산속이라서 더 추운 거 같아.”
“왜란(倭亂)이 언제 끝나려나?”
“글쎄 말이야, 해가 바뀌었는데도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구만.”
이제 다섯 걸음... 우루무치는 숲속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다섯의 조선 군사를 바라보면서 그들을 한순간에 베어 버릴 방법을 가늠질 했다. 둘은 단칼에 베고 그리고 하나를 찌르고 그런 다음에... 우루무치는 그 다음의 둘은 어찌 벨까 잠시 생각했다. 잠시 후 우루무치는 소리없는 가벼운 한숨을 내쉰 후 조선 군사 다섯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갔다. 우루무치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殺).”
정문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얼굴이다. 우루무치는 그제서야 자신이 칼로 찢었던 곡식전대에서 흘러내린 곡식이 길안내를 해서 자신이 숨어 있던 곳으로 조선 군사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같이 그런 실수를 하다니... 우루무치는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우루무치가 다시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고, 곡식전대는 조선 군사들이 죽어, 죽어 있길래 훔쳤습니다요. 절대로 소인이 그 조선 군사들을 죽인, 네, 죽인 것은 아닙니다요. 정말입니다요. 나리. 믿어 주십쇼. 나리.”
정문부가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우루무치에게 물었다.
“허면, 네 놈 옷에 묻어 있는 핏자국은 어찌 생긴 거냐?”
“............”
우루무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옷에 묻어 있는 죽은 조선 군사들의 핏자국을 무슨 말로 둘러댈 수 있겠는가? 우루무치는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우루무치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정문부가 잠시 그런 우루무치를 뚫어질 듯 노려보더니 곁에 서 있는 군관에게 물었다.
“쓸모가 있겠느냐?”
조선 군관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염초(焰硝) 구울 줄 아는 놈이 아니면 쓸모 없습니다. 군량미만 축냅니다.”
염초라? 진작에 염초 굽는 방법을 배워둘 걸... 아니면 어차피 죽게 될 바에야 차라리 수백 명을 거느리던 장수였다고 대답할 것을...... 우루무치는 후회스런 마음이 들어 그만 머리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정문부가 군관에게 명을 내렸다.
“쓸모도 없는 놈이 감히 날 속이려 하다니... 당장 저 놈을 참수하라.”
조선 군사는 우루무치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얼굴을 했다. 우루무치는 조선의 사정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에서는 일본과의 전쟁이고 북쪽에서는 야인들과의 전쟁이라... 조선국왕과 조정대신들이 얼마나 못나고 한심했으면 이렇게 남북으로 전쟁에 시달릴까? 하기야 전쟁을 좋아 하는 관백과 야인들이 남북으로 있으니 조선국왕과 조정대신들이 웬만큼 현명하고 지모가 있지 않고서야 전쟁의 근심이 없어지기는 어려우리라...... 우루무치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었다가 사라졌다. 조선 군사가 졸린 듯 하품을 한다. 잠시 후 조선 군사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나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루무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잘하면 네 놈이 살 수도 있겠구나.”
살 수가 있겠다니? 우루무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우루무치는 옥문에 몸을 바짝 붙이고 조선 군사에게 물었다.
“나리, 좀 자세히 말해 주시오. 어찌하면 살 수 있겠소?”
조선 군사가 헛기침을 한번 한 후에 우루무치에게 말했다.
“요새 북쪽에 군사가 모자란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나중에 평사 영감이 너희들을 참수하려고 할 적에 목숨만 살려주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애걸복걸해 보거라. 혹시 너희들을 살려주고 짐꾼으로라도 쓰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