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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96762225
· 쪽수 : 295쪽
책 소개
목차
제 1부 마스빙고를 떠나며
1. 골인!
2. 똥간 할아버지
3. 얻어맞는 형
4. 투표자 색출 작전
5. 드럼통의 피
6. 경찰서장 아저씨
7. 그린 봄바스
8. 트럭 여행
9. 팻슨의 경기
10. 마이 마리아 찾기
11. 림포포 강의 악어들
12. 구마구마
13. 공원
제 2부 요하네스버그로 오게 된 사연 (8개월 후)
14. 플라잉 토마토 농장
15. 거래
16. 요하네스버그
17. 알렉산드라 흑인 구역
18. 다리에서의 생활
19. 교회에서 지낸 밤
20. 불타 버린 쓰레기
제 3부 테이블 산 (18개월 후)
21. 깨어나기
22. 거리 축구
23. 지옥 훈련
24. 마지막 훈련
25. 한밤중의 달리기
26. 시합 주간
27. 결승전
작가의 말
외국인 혐오와 노숙자 월드컵에 대하여
책속에서
붉은 베레모가 지프에서 내려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얼굴이 꼭 가면 같다. 나는 그의 검은 혁대와 가죽 권총집에 든 권총과 육중한 군화와 번쩍이는 선글라스를 주시하고 있다. 그의 눈은 보이지 않고, 대신 그의 선글라스에 비친 내 모습만 보인다. 선글라스에 비쳐 작고 굴절된 모습이긴 해도, 제법 투지만만한 사내아이가 파란 반바지에 흰색이 누렇게 바란 학교 셔츠를 입고 먼지 속에 서 있다.
“너, 왼발 슛이 제법이던데. 공 이리 줘 봐.”
붉은 베레모가 나한테 말을 건다. 나는 꼼짝 않고 서 있다. 지금 그의 선글라스에 비친 나는 잔뜩 겁먹은 모습이다. 입까지 벌어져 있는 상태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킨다.
펠로가 달려와서 그에게 공을 패스한다. 제대로 된 축구공은 아니다. 소가죽을 여러 조각 실로 꿰매 붙이고 그 안에 플라스틱을 동그랗게 말아 꽉 채워 넣은 공이다.
붉은 베레모가 내 공을 공중으로 던진 뒤 발로 찬다. 공이 쭈그러든다. 나는 이제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똥간 아버지가 만들어 준 내 축구공을 단번에 망가뜨리다니!
“이 마을에 반체제 인사가 있다고 들었다. 사실이냐?”
붉은 베레모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하지만 나는 군인들을 믿지 않는다. 그의 질문에선 표범을 잡을 때 놓는 날카로운 덫의 톱니가 느껴진다.
“너희들 시합은 끝났다.”
그가 축구공을 짓밟아 공기가 쉭쉭 빠져나가게 한다.
나는 죽어 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터지는 곳으로 기어간다. 군인들이 총을 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다. 도망치다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군인들은 정색을 하고 총을 겨누고 있다. 군인들 손아귀에 든 총이 꽝꽝거리며 기세 좋게 울리자, 총알이 흙, 담, 나무, 항아리, 의자, 그리고 사람들 몸으로 날아든다.
나는 그걸 지켜본다. 너무 두려워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총알에 반 토막이 난다.
절규와 공포가 난무해,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똥간 할아버지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벌레들이 국경 초소의 높다란 조명 주위를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어느새 베잇브리지에 밤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 공을 찬다. 공이 이 선수에서 저 선수로, 발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골대로 움직이자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바라던 대로 된다. 걱정도 없어지고, 불안에서도 해방된다. 나는 그 순간만 생각한다. 경기장 한쪽에서 그 옆으로 뛰어가고, 상대편 선수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 공이 날아오는 걸 계산하고, 우리 편 선수들이 다음에 어떤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지 예측한다.
이제 내 머릿속엔 어제나 그저께의 기억 같은 건 없다. 내일이나 모레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만 있을 뿐이다. 축구공이 있고, 선수들이 좌우로 뛰고 있고, 경기장 끝에는 골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