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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97176021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서기웅 시
별
시계
길
바람
덫
게으르다
도마
미싱사의 오케스트라
사막
낙타
유칼립투스
빈집
봉래동 멜레치
에프-킬라 증후군자화상
민들레꽃
고삐
자국
펜
별들의 계보학
가을
아침식사 됩니다
여자의 강둑
부침개 한 장
우물
이웃집
펜 2
지리산
낡은 팔뚝
눈 내리는 사월
멈추다
날개
서광식 시
바깥을 꿈꾸다
사는 게 삼천 배쯤 밀고 왔다 싶은 날에는
목숨
목숨, 둘
허점
고삐
니은에 대하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곡선
내 간이 아프다
펄펄 끓는
하늘로 가는 배
벽
사랑법
빛 사랑의 語法
지옥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겨울안개
귀거래歸去來
지는 몸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랑
화개花開
잡초
꿈
사랑, 치명적인
첫 사랑
너무 무딘 연필
시인의 말-뿌리 뽑히는 것들을 위하여
책속에서
사막
서기웅
서울 만리동 고개는 모래언덕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처럼 듬성듬성 박힌 가로등은 겨우 희미한 빛줄기를 뱉어냈다 한 무리 전갈 떼는 햇볕을 피해 미싱을 돌리러 지하로 갔다 타르륵 타르륵, 실타래 풀리는 소리만 이따금씩 바람에 실려왔다
말라붙은 동물의 뼈처럼, 오래된 시체처럼 판잣집은 아득히 늘어서 있다 푸석한 길바닥이 오토바이 연기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오래된 괘종시계는 모래언덕에 누워 배터리 빠진 빈 울음을 뱉어내고 있다 강줄기처럼 깊은 눈썹으로, 풀린 눈을 가리고 먼 길 가는 낙타들이 보였다
마른 등뼈를 드러낸 늙은 고가를 넘는다 불에 덴 큰 문 아래로 깊고 푸른 오아시스가 펼쳐진다 낙타도 전갈도 마른 목을 적시러 가는 거대한 물줄기였다 길고 긴 실타래 풀어헤치며, 콧구멍 속으로 달려드는 모래바람 걷어가며, 지하방 미싱에 몸을 밀어넣던 날들이 환하게 젖는다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가는 날이면 온 동네의 지형이 뒤바뀌곤 했다 찢어진 천조각을 주워담는 거친 손들이 차갑게 식어갔다 오래된 대중목욕탕의 기다란 굴뚝이 쉼없이 뽀얀 수증기를 토해냈다 지하를 가득 메운 폭풍에 온몸이 모래알 투성이인 낙타들이 가득하였으므로
사는 게 삼천 배쯤 밀고 왔다 싶은 날에는
서광식
사는 게
오체투지로 한 삼천 배쯤 밀고 왔다
싶은 날엔
나 헐거운 바랑 같은 내 몸 속에
술이라도 몇 잔 공양하러 가겠네
소금기 밴 등짝에 햇살 가득 이고
저물녘 탁발 끝내고 돌아가는 늙은 중 되어
오지 말래도 악착같이 찾아가겠네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애오개 근처
잡초처럼 어두워지는 시장통 술집에 앉아
연신 소주잔이나 기울이겠네
가끔은 땀에 찌든 사람들 틈으로 슬쩍 스며들겠지
삶의 무게 손마디 굵은 사연이며
엿듣다 들켜버린 마음에게도
한 잔 건네겠네
가도 가도 끝내 길은 보이지 않고
이쯤에서 그만 한 생 접어도 좋을까
술병만 자꾸 넘어뜨리겠네
그러다 술도 뭐도 다 시들해지면
내일이면 이미 쓰러지고 없을 그 집,
엄마 같은 여자의 무릎을 베고 누워
깜빡 잠이라도 들겠네
사는 게
오체투지로 한 삼천 배쯤 밀고 왔다
싶은 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