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

‘내가 여기서 뭐해?’
그야말로 흔히 말하는 난 누구? 여긴 어디? 하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그러모아보니 어둡고 한적한 창고였다. 구석진 곳인데다 연회장이 아니라 간이 주방과 더 가까운, 관계자가 아니라면 드나드는 발길이 없는 곳이었다.
다희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뭐,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뭐든 잘 잊어버렸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서 간신히 놓여난 다희는 숨을 흡! 몰아쉬었다. 너무 놀라 여태 숨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뒷걸음 쳤다. 하지만 이내 벽에 부딪쳤다.
아니, 정확히 벽은 아니었다. 단단하지만 벽의 딱딱함과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너무 놀라 쇳소리를 내며 획 돌아보려는데, 커다란 인영이 덮쳐왔다.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데, 큼지막하고 따뜻한 것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읍!”
나 이대로 납치 되는 겨?
그녀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흔들었다.
“쉬.”
사내가 부드럽게 그녀의 귓바퀴에다 바람을 찔러 넣었다. 다희는 진저리를 치며 그대로 얼었다.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따스한 숨결과 낮은 음성,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 쳐 다희를 휘감았다. 다희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숨조차도 잊고 있었다.
“채다희!”
헉!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괄괄한 목소리에 다희는 목을 한껏 움츠렸다. 그제야 자신이 왜 여기에 와서 이러고 난감하게 서 있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되었군.”
그녀를 제압한 사내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된 건 당신이 아니라 나라고요!
입이 막혀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읍, 읍, 읍, 읍!”
그러나 고개를 흔들며 나온 소리는 고작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이었다.
“이 녀석이!”
아유, 나 이제 죽었다.
“채다희!”
“네, 스승님! 갑니다요, 가!”
다희는 자유로워지자마자 소리부터 지르고 보았다. 그때 자신의 입을 막은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순식간에 다희의 머리가 비었다. 이 남자가 여긴 왜 있는 것일까? 사내는 지금쯤 신랑 대기실에 있어야만 했다.
멀거니 사내를 보다가 등 뒤에서 날아와 귓속으로 파고드는 적나라한 신음소리에 놀라 눈이 커다래졌다. 서서히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바로 잡아 예비 신랑을 보았다. 예비 신랑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안에서 뒤엉킨 예비 신부가 아니라 다희의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