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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 김충현 경후 김단희

일중 김충현 경후 김단희

(아버지와 딸)

정현숙 (지은이)
  |  
디자인나눔
2021-05-04
  |  
40,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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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미지

일중 김충현 경후 김단희

책 정보

· 제목 : 일중 김충현 경후 김단희 (아버지와 딸)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서예
· ISBN : 9788997595648
· 쪽수 : 208쪽

책 소개

김단희의 두 번째 서전으로, 아버지 김충현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조상의 얼을 드러내고 자신의 철학과 예술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 근래에 틈틈이 해 온 작품들과 이전의 주요 작품들을 엮어 이 서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목차

인사말
기획의 글
나의 아버지 어머니
1부 붓으로 기리는 선조의 문예정신
2부 김단희를 향한 부정
3부 법고에 근거한 창신의 서예
4부 문화예술적 교우를 말하는 소장품
논고 김단희의 생장 배경과 서예 세계
연보

저자소개

정현숙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을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서예문화예술학과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UPenn)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원광대학교 서예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시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화, 그 문자향 서권기』, 『삼국시대의 서예』, 『신라의 서예』 등이, 역서로는 『광예주쌍집』, 『미불과 중국 서예의 고전』, 『서예 미학과 기법』 등이 있으며, 서화 논문 50여 편이 있다. 한국서예학회·한국목간학회 부회장이며, 2020년 우현학술상을 수상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김단희金端喜(1941~ )의 두 번째 전시인 “일중 김충현 경후 김단희, 아버지와 딸”전은 아버지 김충현金忠顯(1921~2006)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필자는 2015년 1월 백악미술관에서 개최된 일중서거9주기기념전인 “김충현 현판 글씨, 서예가 건축을 만나다”전으로 일중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 연이 이어져 아버지의 동행인 딸 김단희의 전시까지 기획하게 되었으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만큼 김충현·김단희 부녀의 서예가 한국 현대 서예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대에 보기 드문 명문가 출신인 김단희의 생장 배경과 서예 세계를 통해 그의 글씨가 지닌 서예사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1)
I. 문예적 가풍 속에서의 생장
김단희는 1941년 오현梧峴(현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에서 안동김문 김충현(1921~2006)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 안에 있는 창녕위궁재사는 본래 영의정을 지낸 조선의 무장武將 신경진申景禛의 별장이었는데, 김단희의 6대 조모인 조선 23대 순조의 둘째 따님 복온공주福溫公主(1818~1832)가 별세한 후 나라에서 묘소를 오현으로 정하여 그때부터 집안의 선영이 되고 재실齋室이 되었다. 복온공주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金炳疇(1819~1853)를 위한 이 재사는 현재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재사는 묘소 근처에 짓는 것이 일반적이라 원래 이 집 맞은편 산에 복온공주 부부의 합장묘가 있었다. 그러다가 묘는 2002년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되었고 현재는 재사만 남아 있다.
김단희의 6대조인 김병주는 순조의 부마가 되어 서울 장안 북부에 공주궁을 하사받았다. 복온공주가 하가下嫁한 후로 가솔들이 옮겨 다니는 동네의 이름을 따라 재동궁齋洞宮, 송현궁松峴宮, 오현궁梧峴宮 또는 창녕위궁이라는 궁호가 생겼다. 공주가 별세한 후 나라에서 지정해 준 이곳은 10만 평 정도의 산야로 풍광이 아름다웠으며, 당시에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인적이 드문 산골이었다.
제사를 모시기 위해 1907년 오현으로 들어온 김단희의 고조부 김석진金奭鎭(1843~1910), 증조부 김영한金甯漢(1878~1950), 조부 김윤동金潤東(1895~1977), 부친 5형제와 그 자식들로 구성된 5대 40여 명이 1950년 7월 초까지 43년간 창녕위궁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김충현은 오현에서 생장하고 혼인하여 장녀 단희를 낳았다. 단희가 4살 되던 해인 1943년 김충현은 집을 지어 분가했고, 단희는 그 집에서 10살까지 살았다. 김충현의 조부 김영한이 손자의 첫 살림집을 오산봉포梧山鳳苞(지금의 창문여자중고등학교 일부)라 지어 주었다. 김충현 생전 마지막 집인 평창동 자택에는 당시 그가 쓴 <오산봉포>(그림 1)가 돌에 새겨져 있다. 1950년 6.25전쟁이 나자 식구들은 피난길에 올랐고 서울이 수복되자 다시 상경했다. 이후 김충현이 경동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는 사택에 살았고, 이후 돈암동의 한옥으로 이사했으며 단희는 거기서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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