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KAL858

KAL858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정대 (지은이)
  |  
나이테미디어
2012-10-15
  |  
12,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KAL858

책 정보

· 제목 : KAL858 (전두환, 김현희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한국정치사정/정치사 > 전두환정부/노태우정부
· ISBN : 9788997672059
· 쪽수 : 288쪽

책 소개

2012년은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 지 25년이다. 1987년 11월 29일,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도양의 미얀마 해상에서 실종된 KAL858 여객기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단 한 구의 시신도, 블랙박스도 돌아오지 않았다.

목차

차 례

책머리에 4

1. 끝나지 못하는 수수께끼 6

중국통, 일본통
김현희의 중국 현지실습 8 주소도 모르는 북한공작원 10
끝없는 거짓 11
무관인가, 문관인가 12
자신의 공민증 번호와 당증 번호도 모르는 정예 특수공작원 14
말 바꾸기의 달인 17
방문한 해외 여행지조차 헷갈리는 정예 특수공작원 19
칼귀와 복귀의 차이 21
공작 수행 일정도 헷갈리는 정예 특수공작원 23
KAL858기 사고조사 과연 제대로 했는가 28
엉뚱한 장소로 향한 합동조사단 수색팀 30
정형근(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단장)의 거짓말 33
전 감사원 직원 현준희의 사고분석과 증언 35
여객기 내의 폭발물 반입 문제 36
폭발물 이름도 모르는 테러 공작원 38
미국제 폭약이 북한공작원의 손에 40
미사일과 수류탄 42
폭파흔적 없음 44
폭파흔적 없음 45
단추 2개와 껌 종이 한 장 47
교신기록 테이프의 폐기 49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 51

2. 사고조사를 포기한 KAL858기 54

팬암103편, 김해 추락 에어차이나129편 그리고 KAL858기 사건 비교 55
청산가리(KCN)와 청산가스(HCN)의 혼란 58
북한공작원과 독약 앰풀 60
밀사 이후락 61
오락가락하는 김현희 62
안기부 출신들의 거짓말 63
거짓이 거짓을 낳다 67
암호 수첩의 사기극 69
Miss. H Park의 정체 추적 70
전두환과 김현희 72
폭파가 아닌 추락 사망 74
심경의 변화 76
희대의 사기 ‘언니, 미안해!’ 78
God bless you! 81
레이건을 방문한 노태우 83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 86
청와대의 특명 88
노태우가 안겨준 최고의 선물 89
UN 안보리 91

부록 93

KAL기 사건 재판을 재판한다 94
김현희를 옹호하는 구로다 기자 102
김현희가 구로다 기자에게 보낸 편지 105
김현희의 남자들 106
김현희 자필진술서와 안기부 신문조서에서 드러난 문제점 111

사건 개요 128
공작여정 133
사건의 노정도 138
김현희 신상과 연보 139
해외 실습여정 (1차) 144
해외 실습여행 (2-3차)

저자소개

김정대 (지은이)    정보 더보기
펼치기

책속에서

김현희의 중국 현지 실습

안기부 발표문
중국 광저우에서 실습기간(1년) : 1985년 7월 31일-1986년 8월
광저우 실습 : 광저우 주재 지도원 박창해의 집에서 1년간 생활하며 광동어 학습 및 현지적응 훈련
마카오에서의 실습기간(6개월) : 1986년 8월 - 1987년 1월 18일
마카오 실습 : 김현희, 김숙희는 마카오에서 일본인으로 위장해 약 5개월 동안 현지적응 훈련

1988년 2월 UN 안보리에서 한 최광수 외무부장관의 발언록 : 김현희는 (1987년) 12월 15일 서울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 독약과 피로의 후유증으로 대부분 병상에 있었습니다. 후유증에서 회복했을 때, 어떠한 질문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를 들어 중국어로 된 시를 적는 등 중국인 행세를 하였습니다.
안기부에 따르면 김현희는 중국인화 교육을 실습하고 여러 명의 중국 지인들과 교류를 나눌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하다고 소개합니다. 심지어는 중국 시까지 지을 정도로 중국어에 뛰어난 김현희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김현희는 한자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여자임이 입증됩니다.

김현희의 자필진술서를 통하여 한자 실력이 드러납니다.
중국 광저우 체류 시 사귄 중국인 지인들의 이름 중에서 蔡國光(28세, 남), 唐吉明(31세, 여) 이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김현희가 진술서에서 한글로 표기했는데 '차국광', '당결명'으로 기재하였습니다. 주지하건대 이 한자명의 정확한 중국 원음은 수사기록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불어 ‘채국광’을 ‘차국광’으로, ‘당길명’을 ‘당결명’으로 반복적으로 틀리게 표기합니다. 광저우에서 1년간 교류하며 가까이 지냈던 중국인 지인 4명 중 두 명의 이름에 대한 엉터리 한자 실력이었습니다. 설혹 한자 실력은 부족하다 해도 1년 동안 교류하며 불렀던 지인 이름을 자필진술서에 틀리게 썼다면 납득이 가는 일입니까? 지인의 한자 이름도 엉터리일 정도의 김현희가 중국 시를 썼다고 하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물론 중국 시를 공개한 적도 없습니다.
김현희는 같은 오류를 또 반복합니다. 자신의 진술서들에서 蔡國光을 차국광으로 반복하여 표기한 반면, 안기부 수사관이 기술한 안기부 신문조서에는 '채국광'으로 수정되어 표기됩니다. 唐吉明 이름도 '당결명'으로 했다가 '당제명'으로 수정 · 번복하여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도 실제의 한자음과 다릅니다.
결국 김현희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김현희가 한국에 압송되어 와서 한국 수사관들 앞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중국 시를 쓰면서 생활했다는 최광수 외무부장관의 UN 발언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주소도 모르는 북한공작원

1987년 12월 23일 김현희가 안기부에서 최초로 출생지를 진술할 당시 자신은 평양시 대동강 구역 동신동에서 태어났다고 하였으나 김현희의 진술은 사실과 달랐습니다.
동신동은 대동강 구역이 아닌 동대원 구역에 속하는데 이 틀린 주소를 이후에 안기부가 친절하게 수정까지 했습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김현희가 1987년 KAL858기 폭파범이라고 소개하면서 출생지는 개성으로 기술합니다. 안기부는 '평양'으로,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개성'이라고 하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자신의 집주소가 평양시 문수구역 문수 1동 65반이라고 했으나 그 진술 또한 사실과 달랐습니다.
평양의 문수 구역은 1983년 3월에 이미 대동강 구역으로 흡수되면서 폐지된 상태였습니다.
1987년 11월까지 평양에서 살았다는 김현희가 자신의 집주소도 모르면서 조선노동당 당원과 북한공작원 생활을 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잘못된 주소는 1990년 3월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변경 없이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한국의 수사당국과 사법당국은 범인에 대한 인적사항도 틀린 상태로 수사하고 재판을 하였다니 진실은 무너졌습니다. 기본적이고 간단한 사항조차 사실과 맞지 않는 수사실력이 진정 대한민국 최정예라는 안기부 수사관들의 능력일까요?

한국에 와서 여러 권의 자전적 수기를 쓸 정도의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김현희는 정작 기억해야 할 기초적 사실들은 모르거나 사실과 다른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김현희 고백록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고려원, 전 2권, 1991년 6월 2일)
김현희 수기집「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고려원, 1992년 7월 1일)
김현희 회고집「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고려원, 1995년 4월 1일)




끝없는 거짓

김현희는 자신이 받은 메달 수여에 대한 진술을 다르게 하였습니다.

“1985년 8월 15일 '조국해방 40돌 기념 메달' 1개와 1987년 4월 15일 김일성 수령 탄생 기념일에 국기훈장 3급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김현희 자필진술서)

“1985년 8월 15일 조국해방 40돐 기념 메달 1개와 1987년 4월 15일 김일성 수령 탄생 기념일에 국기훈장 3급을 받은 사실이 있을 뿐 남조선에서는 아무런 포상이나 연금 등을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1회 자필진술서, 수사기록 605쪽)

“1986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 40돐 기념 메달' 1개와 1987년 4월 15일 김일성 수령 탄생기념일에 ‘국기훈장 3급’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2회 자필진술서, 수사기록 718쪽)

김현희는 각기 다른 날짜의 자필진술서에서 메달 이름과 받은 날짜를 다르게 말합니다.
1회 자필진술서에서 1985년에 받은 메달이 2회 자필진술서에서는 1986년으로 바뀌는가 하면, '조국해방 40돐 기념 메달'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 40돐 기념 메달'로 이름이 바뀝니다.
이와 같은 엉터리 진술은 김현희 자필진술서와 안기부 신문조서 전반에 수없이 넘쳐납니다.
북한 최고의 정예공작원 출신이라는 김현희는 북한 정부로부터 받은 영광스런 공로 메달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수령 연도도 오락가락하는 것은 작위적인 내용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희가 기념 메달 수상자에 선정된 1985년(1회 자필진술서) 또는 1986년(2회 자필진술서)은 북한 정권 수립 37주년 또는 38주년에 해당됨으로써 어느 경우에도 '공화국 창건 40돐 기념 공로 메달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또한 김현희는 ‘조국해방 40돐 기념 공로메달’의 수상자에 선정된 시기가 중국 광저우에 체류 중이던 1985년 8월 15일이었고, 실제 수령한 때는 김현희가 2차 해외실습에서 귀국한 1987년 1월 20일이었음에도 각 진술서마다 ‘작년에 수여받은 조국해방 40돐 기념 공로메달’ 또는 ‘작년에 수여받은 공화국 창건 40돐 기념 공로메달’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3회 자필진술서, 수사기록 824쪽, 10회 자필진술서, 수사기록 2662쪽)
무관인가, 문관인가

김현희 아버지 김원석은 1962-1967년 2월까지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으로 근무.
김원석은 김일성종합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발령
김현희는 아버지가 1967년에 귀국하였다고 진술(안기부 수사기록)

「북한 인물록」과의 비교
1961년 9월 북한군 대좌 신분의 군사정전위원회 위원
1962년 인민군 소장
1962년 6월-1970년 2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무관

김현희의 진술과 달리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한 김원석은 군인 신분의 무관입니다.
「북한 인물록」에는 김원석이 북한으로 귀국한 연도가 1970년 2월입니다.
김현희는 1967년에 아버지가 귀국하였다고 진술했지만 「북한 인물록」에는 1970년으로 나옵니다. 이는 무려 3년이라는 차이가 납니다. 정예 특수공작원 김현희는 서기관과 무관도 구분하지 못하고, 아버지 김원석의 귀국 연도도 다릅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또 안기부 존안자료에서 안기부 파견관의 전문이 확인되었는데, 전문엔 1962년 쿠바 주재 외교관 명부에 김원석의 처로서 'Yim Myen-sik'이란 이름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는 김현희의 어머니 이름이 ‘임명식’이 아니라 ‘림명식’임을 전제할 때 이는 작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김현희 어머니의 성씨라면 ‘Yim'이 아니라 ‘Rim' 이나 ’Lim'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가족으로는 아버지 김원석 58세, 공화국 무역부 과장으로 현재 아프리카 앙골라 공화국 주재 무역부 수산대표로 있습니다.”(2회 자필진술서)

안기부의 김원석 약력 : 무역부 과장 겸 앙골라 주재 무역부 수산대표로 재직 중(1986년 8-)

여기서 무역부는 외교부와 더불어 북한 내각의 산하 부서이긴 하나, 외교부 관할이 아니므로 앙골라 근무 당시엔 외교관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안기부는 수사발표문에서 당시 김현희에 대해 ‘북한 외교관의 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안기부 수사발표 직후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앙골라를 관할하는 짐바브웨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하여 앙골라 주재 북한 요인에서 김원석을 확인한 결과 그런 이름도 없고,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안기부는 1988년 1월 15일에 김원석 신상과 직책을 사실인 것처럼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아사히신문에 의하여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2001년 12월 8일 국정원 고위 간부와 KAL858기 가족회 집행부와의 면담에서 국정원 간부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실토하였고(오마이뉴스, 이승후 기자, 2003년 10월 8일자) 2005년 9월에 국정원도 김원석의 경력에 대하여 당시 확인하지 못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했다는 김원석은 안기부 발표와 다른 신분, 별개의 인물로 드러났으며, 앙골라 주재 북한대사관 수산대표로 근무했다는 김원석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이 1988년 1월 15일, 국민을 향하여 발표한 안기부 수사발표문은 증거도 진실도 없는 대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