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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중남미여행 > 중남미여행 에세이
· ISBN : 9788997714179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3-11-10
책 소개
목차
제1부 나머지 반쪽을 보고 싶다 / 7
1장 아랫동네 콜롬비아, 에콰도르 / 9
되감기 / 9
레스토랑을 오픈 한다고? 내일? 여기서? / 17
칼리 걸Cali Girl / 23
매워 죽겠냐 / 31
# 달콤한 커피 / 45
2장 길거리 페루 / 49
캐러멜 사과를 파는 소녀 / 49
마추픽추의 사치스런 여행자 / 58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 65
심야버스 안에서 / 70
유리 벽에 갇힌 티티카카 호수 / 75
# Esse 담배를 피우다 / 86
제2부 아메리카에서 가장 불쌍한 여행자 / 91
3장 의심 볼리비아 / 93
모든 것에는 정가가 있다 / 93
링으로 만들어진 도시 / 103
늦은 밤, 남의 집 담벼락을 넘었던 이유 / 116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잃다 / 127
사막이면서 바다면서 하늘인 곳 / 143
# 잃어버린 탄피 / 157
4장 유혹 칠레 / 162
왜, 왜, 이 버스 안에는 나 혼자뿐이지? / 162
나를 초대한 43살, 혼자 사는, 게이 / 173
그녀는 천사였을까 / 186
# 자유란 어쩌면 / 200
제3부 심야데이트 / 205
5장 두 세계 쿠바 / 207
첫날부터 기념품을 받다 / 207
조금씩 다가가다 / 214
내가 상상했던 곳은 이런 데가 아니야 / 226
넌 쿠바사람과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 / 237
삐끼가 되다 / 251
붙잡히다 / 269
# 여행의 시작 / 280
6장 용서 쿠바 / 282
선택권은 또다시 나에게 있었다 / 282
새로운 하루 일과 / 291
이별 준비 / 30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남미에서는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 페루에서 지내는 동안 손꼽아 12월 25일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반팔 반바지를 자주 입었다. “지금 여름이야, 그런데 곧 크리스마스라고!” 나에게 수시로 말해주고 싶었다. 재미있는 장면들을 기대했었다. 가령,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산타라든지, 산타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이 그 거추장스러운 수염에 모인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크리스마스를 느끼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페루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네처럼 요란하게 바가지 쓰는 날이 아니었다. 남미 대부분이 가톨릭 국가여서 그런 걸까? 거리는 조용했고, 경건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거의 모든 식당들이 문을 닫아,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저녁을 해 먹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스스로 크리스마스를 발견했다고 믿은 날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페루 쿠스코의 어느 날 밤. 아침부터 거리로 나갔지만, 크리스마스라고 부를만한 어떤 의미 있는 행위도, 기념적인 사진도 찾지 못한 채,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중앙 광장에 앉았을 때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광장을 에워싼 높은 산들에서 환상적인 불빛들이 쏟아졌다. 나를 뱅 둘러싼 산속에는 자로 잰 듯 삐뚤어짐 없는 불빛들이 빛나고 있었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반듯하게 이어져있는 그 불빛들은 하나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았다.
“크리스마스가 저기에 있었구나!” 저 불빛들이 보이는 산 속에, 그들만의 소박하지만 평온한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불빛이 새어 나오는 산 속으로 들어갈 일이 있었다. 마추픽추에서 돌아온 후 쿠스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시내 관광 투어 코스로, 저녁 늦게 기념품 가게를 들렀을 때다. 늘 올려다보던 크리스마스의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해 있었다.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가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아끼, 크리스마스? (여기, 크리스마스?)”
무슨 말을 하든 웃으며 받아쳐주던 가이드가 이상한 대답을 했다.“아끼, 노 크리스마스 (여기, 없다, 크리스마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미라, 미라, 무이 보니따, 크리스마스 (봐, 봐, 정말 예쁘다, 크리스마스)”
이번에는 단호한 말투로 가이드가 답했다.“아끼, 노 크리스마스, 아끼, 노 부에노 (여기, 없다, 크리스마스, 여기, 안 좋다)”‘가이드가 예민한가?‘ 아무튼 나는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한 가운데 있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각각의 집안에서 새어 나오는 아기자기한 불빛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가로등이었다. 밤 9시도 안됐는데, 모든 집들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빛나던 불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암흑천지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것이 가로등 뿐이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빠르게 버스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인적이 드문 남미 페루의 빈민가, 함부로 버스 밖을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버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아주머니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삼 십분 가량을 버스 안에서 아주머니를 찾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렇게 버스는 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그 아주머니 혼자 택시타고 내려간 것 같은데.”관광객들 중 기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람을 또 이렇게 거들었다.“맞아, 이 근처에 사람 기운이 안 느껴져, 택시 타고 내려간 게 분명해.”사람들도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너무나 진지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 날 가장 무서웠던 것은 아주머니가 사라진 후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주고받은 대화였다.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쿠스코 시내에서 매일 밤 감상했던 그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그 날 밤 사라졌다.
버스는 빠르게 시내로 내려왔고 나는 다시 중앙광장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여전히 너무나 황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거기에 있었다. 광장에 있던 서양 여행자들은 신이 나 있었다. 그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바빴다. 그들의 사진에 담긴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가족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에게 다가와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사진기를 돌려주는데, 그것을 건네받은 한 여행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지금도, ‘메리 크리스마스’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