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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98120672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0-09-07
목차
계산 길을 잃다
창유리 아가트 7
잔향 죽음의 자리
야단 아가트 8
성장통 눈
아가트 1 아가트 9
보이지 않는 친구 사랑
아가트 2 결단
수련 커피
아가트 3 아가트 10
우리 사이는 헤엄
아가트 4 사소한 것들
편지 청소
아가트 5 아가트 11
거울 인물/배경
차이콥스키 화해
아가트 6 집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아가트 12
방문
리뷰
책속에서
일흔두 살 은퇴까지 아직 5개월이 남았다. 이는 도합 22주에 해당하고 지금 보는 환자들이 모두 끝까지 함께한다면 상담 회기로는 정확히 800회를 진행해야 한다. 환자 중에서 누군가 병이 나거나 예약을 취소한다면 이 숫자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이 내 주위 공간에 솜 충전재처럼 퍼질 때 나는 점점 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어떤 생각을 퍼뜩 자각했다. 그게 어떤 생각인지 알면서도, 그 생각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알면서도,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쩌면 난 이러고 싶었을 것이다. 우두커니 홀로 앉아 나 자신을 안타까워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째서 언제나 시작은 이런 식이다 아무도 나이를 먹으면 몸뚱이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말해주지 않은 걸까? 관절이 시큰거리고, 살갗이 늘어지고,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왜 말해주지 않은 걸까? 비통함을 느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자아와 육체 사이의 간극을 관찰하는 것이다. 간극이 점점 더 커지다가 결국은 완전히 낯선 자기 자신을 퍼뜩 발견한다.
이게 뭐가 아름답다거나 자연스럽다는 건가?
“다들 알다시피, 이렇게 상심이 깊은 시기에는 이전 단계로 퇴행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내 말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보다 자주 울화가 치밀거나 당분간 그날그날의 일에 무관심해질 수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겁내지 마세요.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나는 내가 위로의 표정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표정을 그에게 지어 보였다. “이것도 다 지나갑니다.”
앙셀앙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더는 받아내지 못하고 메모장을 내려다보면서 아무 단어나 휘갈겨 썼다.
“장례식은 사흘 후입니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어요.” 그의 목소리가 울음 때문에 갈라져 나왔다. “그런데 이것도 다 지나간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순간적으로 입안이 바짝 말라서 혀가 입천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팔을 저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우리의 치료 일정을 연기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