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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99527746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15-06-12
책 소개
목차
1화.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2화. 전제와 유추 사이
3화. 일어날 수 없는 재해
4화. 미필적 고의
5화. 공기가 아프다
6화. 선 행동 후 생각
7화. 삶은 리얼 버라이어티
8화. 엉켜 있는 실타래
9화. 보기에 답이 없을 땐
10화. 봄바람을 나누어 마시다
11화. 이해와 인정, 그리고 오해
12화. 합의
Epilogue
저자소개
책속에서
투둑- 투둑-
가볍게 흩어지는 빗방울의 무게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손바닥 안에 잡힌 방울들의 파장이 제법이다. 정오의 햇살은 어느덧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고 회색빛 그림자가 인도를 덮어왔다.
재촉하듯 여기저기 누비는 발걸음 소리들이 요란하다. 운동화 코끝에 송글송글 땀방울처럼 맺혀있는 빗방울들에도 발이 온전히 적셔지지 않았다. 신기했다.
“영화 찍냐?”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계단 난간에 방역도구 가방을 올려놓은 재웅이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아얏!”
뒤통수를 때리자 재웅이 인상을 찌푸리며 노려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맞을 짓을 하질 말던가.”
“아, 누나! 내가 동네북이야? 왜 때려 때리길. 그리고 내가 맞을 짓 한 게 뭔데?”
“그냥 넌 얼굴 자체가 맞을 상이야.”
“우씨. 아빠한테 이를 거야.”
“네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애야? 스물다섯이나 먹었으면 밥값 좀 하고 살아. 아빠 그만 힘들게 하고.”
“왜 이래? 요즘 딴 짓 안하고 아빠랑 같이 방역일 잘 했거든요?”
눈을 흘기며 째려보는 걸 눈치 챘는지 재웅의 시선이 허공을 휘젓는다.
“며칠 전에 네가 한 일을 까먹었니? 내가 누구 때문에 회사에 연차 내고 이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누나, 빨리 일 하러 가야지? 몇 동부터 하면 되더라? 가만있자……”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며 아빠 차를 끌고 나간 재웅이 술을 잔뜩 먹고 대리를 불러서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재웅은 뒷좌석에 앉아있어서 경미한 타박상 정도였지만 운전한 사람은 팔을 골절 당하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문제는 그 대리기사가 우리 아빠였다는 것이다.
“이 노무 시키야! 술 먹을 거면 차를 끌고 가지 말던지. 술이 취했으면 그냥 대리를 부르지, 아빠한테 전화해서 대리기사 노릇하게 만드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예절이야? 넌 좀 맞아야 돼. 이리 와. 생각 난 김에 더 맞자.”
아빠는 작은 방역업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빠와 재웅, 둘이서 소규모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제법 단골 계약 건이 늘어 인력이 부족할 때는 나도 가끔 도와주는 정도로 일을 봐주곤 했었다.
특히 이번 주는 장기적으로 계약을 맺은 아파트 방역 건이라서 다른 방역 일은 일체 받지 않기까지 했다. 그런데 재웅의 실수, 어쩌면 아빠의 운전미숙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원인제공자인 재웅으로 인해 회사의 중심 인력인 아빠가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바람에 아빠 대신 일을 자처하며 회사에 연차까지 낸 누나가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발휘했다고 생각하는 건 재웅의 입장에서이고 사실, 내 의도는 따로 있었다.
“알았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요. 폭력만은 좀 자제해 주지, 누나님? 음……. A동에서 C동까지는 내가 할게. 누나는 D동부터…….”
내 손이 올라가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던 재웅이 눈치를 보며 들고 있던 고객 리스트 문서를 나누어 내게 건넨다.
“아니! 내가 A동부터 할게! B동은 꼭 내가 해야 되니까.”
“뭘 그렇게 적극적으로다가 일을 하겠다고……. 고마워서 눈물이 다 아른거리네.”
“콧물 닦아라. 그거 눈물 아니고 콧물 같은데.”
“훌쩍. 미안. 코감기라.”
손등으로 코를 훔치는 재웅을 D동 라인으로 보내고 난 뒤 방역도구 가방을 열었다. 갖가지 벌레 퇴치 약들과 소독용구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다. 기구들을 살짝 걷어내자 내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들이 드러난다.
만년필을 가장한 녹음기를 꺼내 가슴 위 주머니에 꽂고,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위장용 안경을 착용하자 완벽하게 방역업체 직원으로 변신한다.
“자, A동은 다 끝냈고 1205호도 완료. 이제 드디어 1206호. 강준아네 집이다!”
너무 크게 말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들을지 모를 단 한 사람, 내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