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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04912085
· 쪽수 : 1256쪽
· 출판일 : 2017-03-28
책 소개
목차
1권
프롤로그 아주 위험한 만남
나는 관대하다
별로 원하지 않는 만남. 연속
이상한 오락실의 최첨단
무너지는 일상
I'm not your father
취직, 그리고 전쟁
비인(非人)
각성(覺醒)
유령의 탄생
2권
세퍼드 대전(大戰)
납치
형틀 속의 전쟁
구출 작전Ⅰ
구출 작전Ⅱ
전신 강림Ⅰ
3권
전신 강림Ⅱ
장미 꽃다발
황성으로
왕관을 위하여
결혼식
신으로서, 인간으로서
에필로그
외전
나는 펫
내가 왜 펫!!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누나, 차였구나.”
“어, 어, 어,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얼굴에 쓰여 있네요∼”
물론 거짓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이 아니라 ‘머리 위에’ 써 있었으니까.
“와, 저 교복 괜찮은데? 어디 학교 거지?”
“북일고.”
“엉? 그거 어디 붙어 있는 학교인데?”
“몰라.”
“근데 교복을 알아봐?”
“수학여행 갔다가 본 적이 있어서.”
물론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저 교복을 본 것은 난생처음. 더불어 학교 역시 들어본 적 없는 곳이라 어디 박혀 있는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학생의 ‘소속 단체’는 보는 순간 알 수 있다.
그 학생이 초면이라는 건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요번에도 차트 1위는 리프네.”
“당연하지! 아, 리프 너무 예뻐. 가창력도 짱! 게다가 몸매는 또 얼마나 착한지!”
“그런데 리프 신상 명세가 모조리 기밀이라던데 사실이야?”
신비감을 노리는 모양이다. 가족 중에 별 이상이 없을 텐데도 그런 걸 보면.
“응. 출신이고, 가족이고 아무도 모른대. 심지어 매니저도 리프 본명을 모른다고 하고.”
“하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 리프 본명이 뭘까?”
“글쎄, 하지만 리프라면 본명도 분명 예쁠 게 틀림없…….”
“최배달.”
“엉?”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 가득히 담은 눈동자를 보며 다시 말한다.
“최배달.”
“그러니까 뭐가?”
“아니, 그냥.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나서.”
의미 없이 중얼거린다.
그 리프인지 잎사귀인지 하는 여자의 본명이 최배달이든 최홍만이든 내가 알 바는 아니겠지.
중요한 건 나는 TV에서든 뭐든 일단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만 하면 그 본명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
나는 평범하지 않다.
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래봐야 뭐, 대단한 능력자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특이하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 그걸 직접적으로 깨달은 게 언제였더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나?
“길 막지 막고 비켜요!”
“아, 죄송합니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별 반응 없이 길을 비켜준다. ‘길 넓은데 왜 굳이 시비십니까?’라는 등의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이 여자, 생리 중이군. 아, 물론 그건 무슨 비유 같은 게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생리 중이니까.
문제는 오히려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데 있겠지. 정답은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영월고등학교 2학년 3반]
[생리 중인 조미영]
진짜다. 정말 저렇게 쓰여 있다.
물론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특이한 텍스트(Text)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진짜 언제부터였더라. 보이기는 더 어릴 때부터 보인 것 같은데.”
RPG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굳이 RPG 게임을 예로 들 것도 없이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머리 위에 캐릭터의 ID(Identification Number: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 통신망 또는 컴퓨터에서 각각의 사용자에게 부여된 고유한 명칭)가 떠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아바타들을 구분하며 그 사용자를 나타내는 게임 특유의 시스템.
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초능력―이라고 부르기도 굉장히 애매하지만 하여튼―은 바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뭐, 정확히 말하면 이름만 보이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그의 ‘소속’이 쓰여 있고 이름 앞에는 그 대상의 ‘상태’가 쓰여 있다.
지금 지나가는 남자의 머리 위에는 [게임하다가 밤새운 이춘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 뒤로 걷고 있는 여자의 머리 위에는 [사랑에 빠진 문영주]라고 쓰여 있고, 그들을 가로질러 마구 달리고 있는 사내의 머리 위에는 [아무리 달려봐야 이미 지각한 전대일]이라고 쓰여 있다.
“정말 봐도 봐도 특이하다니까.”
이름 앞에 쓰여 있는 것. 나는 그것을 ‘칭호’라고 부른다.
칭호는 수없이 많고 매 순간마다 바뀌는데 그건 보통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난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가 빠르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이름을 잘 외운다는 소리도 듣는 편.
그래봐야 그때그때 보고 읽는 것뿐이지만.
“웃기는 능력.”
그렇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능력이 아닌가? 이건 초능력이라고도, 영능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거나 유령을 볼 수 있다거나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건 뭔 능력인지 정체도 모르겠고, 발동 원리도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능력 자체에 불만은 없지만 이런 건 좀.
“저기요.”
문득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혹시 내가 놀라기라도 할까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별생각 없이 몸을 돌렸다.
“저요?”
“네.”
다소곳하게 대답하는 소녀의 모습에 멈칫한다.
막 건져 올린 바닷물을 엮어 만든 듯 새파란 머리칼에 거울처럼 마주하는 모든 것을 비추는 투명한 눈동자, 가만히 서 있으면 정물화 같은 유려함을 풍기지만 수줍게 웃는 것만으로도 넘치도록 강렬한 생동감을 뿜어내는 신비로운 아우라.
‘와∼ 이건.’
농담이 아니다. 이대로 명동 거리에 나가면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한 시간에 100번이 넘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절세 미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추하게 더듬을 뻔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묻는다. 특이한 가정에서 살아온 만큼 꽤 많은 미녀를 봤지만 이 정도 수준은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표정을 짓거나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거늘 나를 이렇게까지 당황시킬 수 있다니?
하지만 날 정말로 당황, 아니, 경악시킨 요소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어?”
사실 특이한 칭호를 본 건 처음이 아니다.
그래,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글자를 보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0년. 나는 많은 사람을 봐왔고, 정말이지 별 칭호를 다 봐왔다.
휴먼 슬레이어(Human slayer).
이건 살인자라는 말이다. 어떻게 봐도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 칭호를 가진 건 황당하게도 우리 옆 반 제일의 미소녀라 불리는 이경은.
빼어난 외모에 전교 상위 10%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성적,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 데다 부잣집 외동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칭호가 이거였다.
때문에 난 최대한 그녀를 마주치지 않고 접근하지도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다. 물론 그녀는 미소녀에 속하는 존재지만 난 별로 모험이나 스릴을 즐기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보스 오브 프레스티지(Boss of prestige).
이런 칭호도 본 적 있다.
해석하자면 아마 프레스티지의 보스 뭐, 이 정도겠지.
문제는 프레스티지라는 단체를 내가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기 부담스러워한다는 암흑 세력이라 했던가?
하지만 웃기는 건 저런 칭호를 달고 있는 게 같은 반 클래스 메이트라는 것. 조용조용한 성격의 모법생인 줄 알았는데 거대 암흑 세력의 보스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많은 ‘칭호’를 봐왔다.
칭호는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일관성이라는 게 하나도 없을뿐더러 하나하나가 괴상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이 칭호가 틀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오늘 상당히 재수 없는]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으면 그 녀석은 그날 틀림없이,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불쌍할 정도로 재수가 없었다.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모험이나 스릴 따윈 딱 질색이다. 평화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 1권 본문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