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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1~2 세트 - 전2권

원수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1~2 세트 - 전2권

이미은 (지은이)
  |  
뮤즈(Muse)
2018-06-19
  |  
2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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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1~2 세트 - 전2권

책 정보

· 제목 : 원수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1~2 세트 - 전2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04917363
· 쪽수 : 944쪽

책 소개

이미은 장편소설. 라흘란 제국 최초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여기사, 로렐리아. 동생을 위하여 드벨 후작가문을 잇는 여가주이기도 한 리아는 후작으로서, 기사로서 오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사사건건 눈에 거슬리는 남자가 있다. 라흘란 제국 최고의 기사, 에드가.

목차

1권

1장. 그 남자의 짝사랑
2장. 저쪽 세상의 로렐리아
3장. 삼 년 전 사고
4장. 호감이 싹트는 순간
5장. 공후럽은 멈추지 않는다.
6장. 행복을 주는 공간, 몽실몽실입니다!
7장. 충직한 부하는 일을 만든다
8장. 원수가 귀여워 보일 때

2권
1장. 마법사도 사랑을 한다
2장. 다가오는 위협
3장. 제 파트너가 되어주시겠습니까?
4장. 우리 단장이 더 아까워!
5장. 원하는 것은……
6장. 공후럽, 들키다
7장. 종장
8장. 그리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외전

저자소개

책속에서

“단장님!”
“또 무슨 사고를 친 거냐.”
리아는 저 멀리서부터 휘적이며 걸어오는 에이플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무슨 일이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슨 사고를 쳤냐는, 신뢰라고는 한 줌도 없어 보이는 말에 그는 대놓고 입을 비죽였다.
“거 단장님도 참.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누가 들으면 저희가 항상 사고만 치는 줄 알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라.”
양심이 있으면 그런 말은 못할 것이라는 일갈에, 에이플은 하하하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깊게 파고 들어가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요즘에도 열에 여덟은 자신들을 붉은늑대기사단이라는 멀쩡한 이름 대신 ‘또라이 기사단’이라 불렀으니 말이다. 이제 와 제2기사단의 별칭이 붉은늑대라는 것을 아는 이가 남아 있긴 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을 무조건 힐난할 수만도 없었다. 최고의 인재만 긁어모은 황실기사단에 대한 평가가 그토록 추락하게 된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제2기사단의 주된 임무는 후궁들의 호위였다. 말이 후궁이지, 그녀들은 일종의 포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제2기사단은 숫자도 황실기사단 중에서 가장 적었고 지원도 그리 좋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뒷배를 갖고 있는 기사들은 제2기사단으로 배정받는 것을 꺼려 했다. 꺼리다뿐이랴. 있던 기사들마저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 안달했다. 덕분에 제2기사단을 채우고 있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이들 뿐이었다.
사고를 쳤거나, 다른 기사단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난 이들. 수많은 기사들 사이에 한 명씩 있을 땐 별로 티가 나지 않던 것이 한데 모아놓으니 뒷목 잡게 된, 그런 웃기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었다. 그것도 삼 년 전의 얘기지만 말이다.
리아의 시선에 에이플은 허허 웃으며 변명했다.
“그래도 요새는 얌전히 잘 다니잖습니까. 보십쇼. 술집에서 난동부리지도 않고, 근무시간에 땡땡이도 안 치고…….”
에이플의 말처럼 삼 년 전부터 제2기사단을 망나니처럼 보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아가 기사단을 맡은 직후부터 빠른 속도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항상 흐트러져 있던 복장이 단정해졌고 엉망이던 실력도 차차 나아져 혹자는 이를 놓고 기적이라 칭할 정도였다. 물론 그 칭송은 위에서 위로 올라가 황제에게 가 닿았지만 말이다.
한 것이라고는 그녀를 단장 자리에 앉힌 것뿐인 황제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곧 무척이나 근엄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리아의 덕으로 돌렸다.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얘기가 그 사이에 가득했지만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가 역시 그리 중요치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리아는 뻔뻔하게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한숨을 삼켰다. 당연한 것을 자랑삼아 떠드는 에이플을 어린아이 보듯 바라보면서.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아니, 뭐…… 그렇게 큰일은 아닙니다. 푸른매 녀석들이 막내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거든요. 아, 막내가 모욕을 당했는데 선배들이 가만히 있을 순 없잖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다들 그놈들을 혼쭐내는 중입니다. 일단 알려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또? 리아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려던 말을 꾹 누른 채 눈살을 찌푸렸다. 대신 그녀는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 새끼들은 대체 왜 매번 우릴 못 건드려 안달인 건지.”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먼저 시비 걸진 않았겠지?”
“아, 단장님도! 저희가 시비를 걸어봤자 얼마나 건다고 그러십니까? 물론 그런 적도 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진짜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 입으로 그런 적도 있다고 성토한 녀석이 할 말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리아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러자 정말 억울한지 에이플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곤 세상이 안 믿어줘도 단장은 믿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 가슴을 쳤다. 조금만 더 내버려 뒀다간 펑펑 울기 시작할 것 같은 모양새에, 리아는 내키진 않았으나 일단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처맞고 있는 거냐.”
“어…… 그러니까, 얼른 안 가시면 큰일 날 정도로?”
싸움판은 벌어졌다. 거기까지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었으니 혈기 넘치는 기사들이 대련을 한다며 적당히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쪽이 두들겨 맞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 그리 말했건만.
“하…….”
“앞장설까요?”
에이플은 빨리 가셔서 좀 말려달라며 실실 웃었다. 그 모습에 리아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그러나 가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다른 기사단과 마주칠 만한 장소라면 뻔할 뻔자. 그녀는 앞장서라는 말 대신 곧장 공용 연무장으로 향하며 이를 갈았다.
맞고 있다는 말에 분을 냈지만 상대가 제1기사단이라면 당연한 얘기였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제 부하들의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얘기다. 제1기사단은 황족을 수호하고 호위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니만큼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가문이면 가문, 실력이면 실력.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입단 시험에 필기까지 추가되어 있는 제1기사단은 그야말로 선망받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비가 붙으면 빙 돌아 도망치라고 입이 아프도록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붙어봤자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왜 한단 말인가? 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지 그다지 효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땅을 박차는 그녀의 발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당해내지도 못하는 걸 왜 덤비고 보느냐고! 그놈들은 왜 애들을 잡질 못해 안달이고!’
푸른매기사단이 시비를 거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 데면데면하다 못해 무시하며 살던 관계가 갑자기 이상하게 꼬인 것은 근래 들어서의 일이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해결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말이다.
리아는 한숨을 뱉으며 선언했다.
“이번 일 끝나면 연무장 이백 바퀴다.”
“저도 말입니까?”
“당연한 걸 뭘 물어.”
“예에? 아니, 단장! 전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전 빼주셔야죠! 상황을 정리하려고 이리 죽어라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상을 줘야지 어떻게 벌을 주냐며 항변하는 그를, 리아가 서늘하게 바라봤다. 날 선 시선에 에이플은 방금 전까지 껄렁거리던 것이 거짓인 양 군기가 바짝 들어가 허리를 곧게 폈다. 그 위로 리아의 차디찬 물음이 던져졌다.
“싸움 나는 거 봤냐, 못 봤냐.”
“……봤죠?”
“말리려는 시도는?”
“에이. 단장도 참. 부단장 눈 돌아가면 미친놈처럼 날뛰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말립니까. 그 인간은 곰이라니까요, 곰.”
결국 눈으로 뻔히 보고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에이플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나 당당해 보이는지 지적하기도 뭐할 정도였다. 리아는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물었다.
“그 제복을 입고 있는 한 넌 뭐냐.”
“기사입니다!”
“동료가 위험에 처하면 도망치는 게 기사의 도리인가?”
“아니, 단장…… 인간적으로 그렇게 위험한 상태는 아니지 말입니다.”
기껏해야 두들겨 맞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러나 에이플은 리아의 날 선 시선에 재빨리 말을 바꿨다.
“저는! 동료를 버린 쓰레기입니다!”
“연무장 삼백 바퀴. 몇 바퀴라고?”
그사이에 백 바퀴가 늘었다. 에이플의 얼굴이 파리하니 창백해졌다. 훈련받은 기사라 할지라도 그 정도면 질색하는 법이다. 그러나 도망칠 만한 구멍은 없었다. 결국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삼백 바퀴!”
죽을상을 한 채 목청 높여 대답하는 부하의 모습에 그제야 리아의 눈에서 힘이 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빠른 경보로 공동 연무장에 도착한 그녀는 생각했다. 삼백 바퀴로도 제 부하들은 절대 기죽지 않을 것 같다고.
“거, 오늘 한번 끝장을 봐보자!”
연무장에 명랑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무리 봐도 두들겨 맞고 있는 놈이라기엔 너무 흥겨운 모습이었다. 그 명랑한 목소리의 주인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리아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한 놈만 그러면 저놈이 미친놈이다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들 신이 나서 주먹을 허공에 치켜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우어어어!’ 외치며 부단장의 뒤를 따르는 제 부하들을 바라봤다.
‘부단장이라는 놈이 말릴 생각은 않고 같이 주먹질이나 하고 앉아 있다, 이 말이지 지금. 저놈들은 저걸 또 좋다고 따라가고.’
고작 연무장을 도는 것만으로는 심히 부족해 보였다. 근육통으로 며칠은 골골대 봐야 주먹질할 생각이 쏙 들어가지 않겠는가.
“저…… 단장?”
“왜.”
“화 많이 나셨습니까?”
대답 대신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에 에이플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나은 법이다.
“역시 부단장이 미친 것 같죠? 아하하하하. 저 인간이 언젠가 미칠 줄 알았다니까요.”
에이플은 머뭇거리지 않고 부단장을 욕하며 웃었다. 제가 보더라도 오늘은 좀 심했다. 그 정도로 연무장은 엉망이었다. 구비되어 있던 목검들은 죄 부러져 있었고, 작은 묘목들은 짓밟혀 제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제2기사단을 상징하는 붉은 휘장과 제1기사단을 상징하는 푸른 휘장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어 어느 놈이 때리고 어느 놈이 맞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입 다물어라.”
“넵.”
에이플이 입을 다물자 리아는 주위를 훑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검을 뽑아든 녀석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칼부림이라도 났다면 그야말로 일이 커진다. 코피 터진 놈들은 좀 보였으나 그 이상으로 다친 녀석은 없어 보였다.
한 번 더 확인한 뒤에야 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일단은 안심이었다. 땅이 바싹 말라 있어 모래먼지가 풀썩인 탓에 요란스러워 보였을 뿐, 실상 그렇게까지 큰 싸움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화가 좀 사그라지는 것도 같았다.
‘기사란 것들이 뒷골목 왈패들처럼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혼잣말로 중얼거린 리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눈에 담았다.
총 다섯 개의 기사단이 다 같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연무장. 그곳에서 스물이 넘는 기사들이 서로 엉긴 채 적, 아군 할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흰색이 기본 바탕인 제복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지 오래였고, 멀끔한 얼굴들에는 하나같이 주먹질로 생긴 상처가 매달려 있었다. 황실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고고한 기사’의 이미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고고는 개뿔. 기사를 꿈꾸는 아이들이 봤다간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이 분명했다.
‘아주 푹 빠져 있구만.’
심지어 그 많은 기사들 중에서 리아의 등장을 눈치챈 이 하나 없었다. 리아는 제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는 이들의 눈을 찬찬히 살폈다.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곤 하나, 열정으로 반짝이는 것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저쪽이 덤벼드니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게 아니라 쌍방으로 즐긴다는 티가 역력했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붉은늑대기사단의 부단장, 프루트가 불끈 움켜쥔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우하하하! 이번에야말로 자아알난 푸른매 한번 잡아보자!”
“우어어어!”
기사보단 오크에 걸맞을 고함 소리에 리아가 저 멀리 가출했던 정신을 붙잡아왔다. 그녀는 제 옆에서 마치 저 홀로 고고한 척 쯧쯧 혀를 차고 있는 에이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이유냐.”
말릴 때 말리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법이다. 부하들이 미쳐 날뛴다고 저까지 미쳐 날뛸 수는 없는 법. 리아는 들끓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했다.
물론 그런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는 에이플의 생각은 매우 달랐지만 말이다. 그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리아를 힐끔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구구구…… 오늘 누구 하나 죽어나겠구만.’
물론 날 선 시선이 제게 닿자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재빨리 대답했지만 말이다.
“푸, 푸른매가!”
“푸른매?”
“아니, 그게, 푸른매기사단의 부단장인 다이컨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아! 저희 막내 보고 그 비실비실한 몸으로 기사 할 거면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가라 했습니다!”
그 말에 리아는 키는 180이 훌쩍 넘고, 체중도 90㎏에 육박하는 막내를 잠시 바라봤다. 코피가 터진 채로도 웃으며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베리얼을 보고 비실비실하다 표현하다니, 푸른매 놈들이 미친 게 분명하다 생각하면서.
“그래? 그렇단 말이지.”
리아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유야 어찌 됐건 문제는 저쪽에 있다는 걸 확인하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시시비비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선빵인 법.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바꿔 말하자면, 이 모든 싸움의 시작점이 저쪽에 있는 한 책임을 물리기가 쉬웠다.
‘그래도 먼저 때리지 말란 말 하나는 잘 들었군.’
연무장 삼백 바퀴가 이백 바퀴로 줄어드는 기적적인 순간이었다.
리아는 손을 쭉 뻗어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목을 좌우로 꺾어준 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옆에서 리아의 눈치를 보던 에이플은 눈치 빠르게 제 귀를 틀어막았다. 적절한 선택이었다. 살짝 뒤로 젖혀졌던 상체가 앞으로 기우는 순간, 리아의 목소리가 벼락 치듯 연무장을 가득 채웠으니 말이다.
“일도옹― 정지!!!”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고함이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제각기 뒤엉켜 있던 기사들의 주먹이 약속이라도 한 듯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개중 붉은 휘장을 단 기사들의 고개는 하나같이 경직된 채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들이 한 몸인 양 움직였다. 끼긱, 끼긱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정복을 먼지투성이로 만들어놓은 그들은, 리아와 시선이 마주치자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생각을 했다.
‘좆됐다.’
해가 높이 뜬 오후. 죽을상을 한 기사들과 형형한 눈빛을 빛내는 기사단장의 여유로운 한때였다.

효율이 가장 중요하다지만, 역시 보이는 걸 무시할 수는 없다. 평화로운 시대에선 기사들에게 외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법이다. 기사단 정복이 활동성에 있어 최악의 평가를 받는 이유였다.
‘대체 이걸 만든 인간은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불만을 짓씹었다. 태양 아래에서 겨우 두어 시간 서 있었을 뿐이다. 고작 그뿐인데, 옷은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덕분에 집무실에 같은 옷을 두세 벌씩 구비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리아는 한숨 쉬며 익숙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본궁 쪽으로 걸음했다.
리아가 본궁에 들어서자마자 시녀들의 눈이 반짝였다. 삼삼오오 모여선 그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같은 말을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저기 봐. 제2기사단 단장님이셔!”
“너무 멋지신 것 같아.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신 걸까? 역시 그 일이겠지?”
여성 귀족이 성을 이어받고 작위를 계승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닌 만큼, 황실에서 일하는 여인 역시 그리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대부분 펜을 쥐거나 서류뭉치를 품에 안은 채 황실 복도를 뛰어다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허리에는 검을 차고 머리칼을 높게 올려 묶은 여귀족을, 그것도 후작 같은 고위 귀족을 만나는 것은 마른땅에 벼락이 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리아가 사람이 바글거리는 본궁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였다. 여인들은 감탄과 부러움, 그리고 애정의 시선을, 사내들은 경외감 혹은 못마땅한 시선을. 리아는 익숙해진 그것들을 한 몸에 받으며 빠르게 본궁을 가로질렀다.
언제부터인진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본궁에 올 때마다 리아의 목적지는 팔 할이 정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제1기사단장 에드가 폰 페리엘의 집무실로. 위계로 따지자면 기사단 내에서도, 작위로서도 에드가가 더 위다.
쾅!
그럼에도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서는 폼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있는 에드가를 보자마자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경, 잠시 시간 좀 내주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리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런 냉대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내줄 시간이 없더라도 내주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덧붙이는 리아의 두 눈이 형형했다. 방문 이유는 언제나와 같았다. 두 기사단의 무력 다툼.
오늘 벌어진 사건을 통틀어 푸른매가 붉은늑대에게 시비 건 전적이 총 마흔 하고도 여섯 번. 갑작스레 시작된 시비의 역사가 그렇게 길다. 덕분에 두 기사단의 신경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황태자인 카인마저 관전 중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가 어느 쪽이 이길지로 내기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리아는, 황실기사들은 주먹질을 하고, 태자는 그걸 희희낙락 즐기며 돈을 거는 현실을 규탄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했다.
아랫놈이 못하면 윗놈이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이 경우에는 푸른매 기사들이 문제를 일으켰으니 책임은 저 남자에게 있었다. 그녀가 이곳까지 걸음한 이유였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리아는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영―광스러운 제1기사들이 기사단 규율을 위반했으니 말이죠.”
같은 말을 오늘로 마흔여섯 번째 듣게 된 에드가는, 그제야 보고 있던 서류에서 천천히 눈을 뗐다. 들어 올리는 고개를 따라 결 좋은 흑발이 흘러내렸다. 리아는 책상에 양손을 짚은 채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에드가 폰 페리엘.
제1기사단장이라는 직위와 페리엘 공작이라는 작위를 갖고 있는 남자. 그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며칠 밤을 꼬박 새도 부족했다. 그러나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얘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페리엘 공작.
얼핏 들으면 우스갯소리 같았지만, 공작가에서는 이게 꽤 심각한 문제였다. 혼기가 꽉 찬 공작이건만, 이때껏 단 한 명의 여자도 만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 페리엘 공작이 가문을 이으려면 둘째에게 작위를 넘겨줬어야 했다며 한탄했을 정도였다.
소문이 무색하지 않게, 에드가는 코앞에 다가와 있는 얼굴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위반사항을 고발하러 온 건가, 로렐리아 경?”
리아는 입술을 일자로 닫은 채 남자를 응시했다. 매번 그가 하는 말은 같았다. 말뿐이랴. 저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눈가와 입술이 만들어내는 표정, 서류를 쥐고 있는 손.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조각조각 사이에 빠짐없이 녹아 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귀찮음이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귀찮아 죽겠다는 에드가의 표정에 리아의 눈썹이 위로 밀려올라갔다.
이 모든 일을 시작한 것이 제 부하들이었다면 그녀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좋건 싫건 그들은 제 책임 하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푸른매가 먼저 시비를 건 것만 마흔 번이 넘었다. 덕분에 요즘엔 강철보다도 단단할 것 같던 그들의 명예에도 금이 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그 단장이란 자는 어떠한가? 부하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저리 당당한 태도라니. 리아로서는 이가 득득 갈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책상 끝을 있는 힘껏 움켜쥐며 치솟는 화를 꾹 눌렀다. 마흔 번 넘게 참았으면 한 대쯤 때려도 폐하께서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지 않을까?
‘저 낯짝을 한 대 후려치면 소원이 없겠는데!’
언젠간 제 꿈을 이루겠노라 다짐하며 리아는 이를 악물며 충동을 참았다. 그녀는 에드가를 후려치는 대신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입에 담았다.
“몇 번이나 말한 것 같으나 여전히 경께서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지 않는 것 같으니 한 번 더 말하죠. 기사단 사이의 불필요한 소요는 양쪽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황실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푸른매 기사들이 입을 꽉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타앙―!
리아는 양손으로 있는 힘껏 책상을 내려쳤다. 그 진동에 탑처럼 쌓여 있던 서류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였다. 평소라면 놀라 서류부터 붙잡았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속된 말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두 눈이 열기로 일렁였다.
“두드려 패서라도 말을 듣게 하십시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경. 다음번에는 경위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제 손으로 처벌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어떤 불이익을 받건 감수하겠다 말하는 목소리는 단호했다. 에드가는 분을 쏟아내는 리아를 응시하며 천천히 대꾸했다.
“타 기사단을, 그것도 기사단장이 사적으로 손대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리아의 입술이 비틀렸다.
“항상 푸른매 기사들이 이유랍시고 들먹이는 ‘훈련’이라 하죠. 얼마나 좋습니까, 훈련.”
점점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었으나 에드가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리아가 뒷골목 시정잡배들이나 쓸법한 욕을 짓씹었더라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푸른매 기사들이 요 몇 달간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욕으로 끝나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훈련이라는 글자에 특히 힘을 준 리아는 이내 생긋 눈을 접어 웃었다. 그녀는 더 이상의 변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고히 하며 휙 뒤돌았다.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경. 저도 더는 묵과하지 않을 테니까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살벌한 표정으로 말한 리아는 들어올 때처럼 호기롭게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간다 만다는 말도 없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기다렸다는 듯 집무실 한쪽 벽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움직였다. 그 안에서 나온 이들은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 리아의 진두지휘 아래 열심히 뺑이 돌던 푸른매 기사들이었다.
한 놈은 온몸이 쑤신다며 앓는 소리를 뱉고 있었고, 한 놈은 나 죽겠다며 반쯤 드러누운 채였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집무실이 떠나가라 우는 소리를 하던 기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마지막 경고라고?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고?
그렇다면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당한 건 뭐란 말인가! 그들은 리아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픈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바로 저, 여전히 서류를 붙든 채 얼어 있는 그들의 단장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부단장인 다이컨이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단장…… 이쯤 했으면 최소한 밥은 먹었는지 정도는 물어봐 주면 안 됩니까? 만날 구실을 만들어 드림 뭐 합니까. 밥 먹었냐고 물어보기는커녕 차 한잔하고 가라는 말도 못 하는데.”
다이컨의 투덜거림에 그제야 굳은 듯 얼어붙어 있던 에드가가 긴 한숨을 뱉어냈다. 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나.”
점점 더 쌓여가는 미운털을 어떡할 거냐며 화를 내는 단장을 앞에 둔 채 기사들은 한 마음 한뜻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놔두면 단장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손 한 번 못 잡아볼 것 같으니까 그러죠.’
상사의 연애전선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당사자는 그리 원치 않는 희생이었지만 말이다.
에드가는 이젠 제발 그만 좀 하라며 한숨지었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용맹스러운 제국의 기사들은 낙심하기는커녕 다음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에드가의 입장에서는 복장 터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삼자의 눈으로 보자면 기사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혼자 해 더욱 외로운 에드가의 짝사랑이 벌써 몇 년째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랑 얘기를 듣기 위해서는 무려 삼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삼 년 전, 에드가는 처음 로렐리아 폰 드벨을 ‘인지’했다. 물론 그전에도 만난 적은 있었을 것이다. 각종 연회니 뭐니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있는 사교활동들을 헤아려 봤을 때 안면을 틀 기회는 충분히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삼 년 전 벚꽃이 휘날리던 봄, 에드가는 그녀를 수많은 귀족 중 한 명이 아니라 독립된 한 인간으로 인지했다. 처음으로 그의 세상에 한 여자가 가득 들어차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사랑에 빠졌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어디 싸구려 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말이라 생각했다. 그 연극의 주인공이 제가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더 극적이라, 에드가는 그날 벼락처럼 깨달았다. 흘려 넘겼던 대사가 아무 근거도 없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그는 그렇게 그 싸구려 대사처럼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다름 아닌 로렐리아에게. 그리고 삼 년 동안 그 마음은 점차 깊어지고 깊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깊어지기‘만’ 했다.
짝사랑은 진전은커녕 해가 갈수록 후퇴만 해 리아에게 박힌 미운털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사이에 혼자 삽질도 참 많이 했더랬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니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에드가의 짝사랑을 눈치챈 부하들이 뒷목을 한번 잡은 다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였다.
에드가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모습에 기사들은 재빠르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수습기사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년을 같이 했던가. 눈짓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그들이다.
‘단장이 왜 저러는 것 같습니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연애 한 번 못해봤으면서 뭘 그리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까?’
투닥이는 이들의 시선이 열기를 담았다. 보이지 않는 싸움을 끝낸 것은 한 기사가 의견을 냈다.
‘부단장이 단장 좀 위로해 주십쇼.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아, 역시 이런 건 부단장이 나서야죠.’
‘그럼, 그럼.’
그렇게 의견일치를 끝낸 기사들은 한 마음 한뜻으로 다이컨을 바라봤다.
그 열렬한 눈빛 공격에 결국 다이컨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기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실수가 있었으니. 평생 남 눈치 볼 일 없는 사람이 시선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리라 믿었다는 것이다.
“거, 단장. 그런데 있잖습니까. 대체 드벨 후작의 어디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위로하라며 보냈더니 대뜸 제가 궁금한 것을 묻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기사들이 속으로 절규했다.
‘갑자기 저건 왜 묻는 겁니까!’
‘저 인간 속을 내가 어떻게 아냐!’
기사들이 투닥거리건 말건, 다이컨은 당당하게 덧붙였다.
“솔직히 후작께서 예쁘시긴 합니다만, 그 외엔 뭐가 좋은지 전혀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세상은 넓고 예쁜 여자는 많지 않느냐는 발언에, 안 그래도 얼굴이 울긋불긋해진 기사들은 속까지 뒤집어져 뒷목을 잡았다.
‘왜 갑자기 얼굴 가지고 저럽니까, 저 인간은!’
‘아, 모른다고!’
자칫 잘못했다간 분노한 단장의 손에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욱신거리는 곳을 움켜쥔 채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차하면 다이컨을 제물 삼아 도망치겠다 생각하며.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에드가는 다이컨의 질문을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검을 쥐어 단단한 손이 턱을 쓸었다. 살짝 찡그려진 눈썹과 쉽게 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고민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고뇌하는 사내는 꽤나 멋져 보였지만, 그 고뇌의 이유가 참으로 소소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에드가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전부 좋은데, 그중 하나를 어떻게 고르느냐고.
부하들이 들었다면 깊은 한숨을 뱉었을 생각을 하며 에드가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표현할 말을 고르는 남자는 무척이나 신중했다. 가장 아름답고, 그녀에게 어울리면서도 고귀한 단어를 고르고 싶어 남자의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여졌다.
그러나 아무리 꾸며도 부족해서, 결국 그가 뱉어낸 말은 흔하디흔한 것이었다.
“그녀는, 멋있지.”
“……예쁜 게 아니라, 멋있다고 하신 겁니까?”
“예뻐?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아한단 말인가. 경, 경은 여인을 볼 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나.”
목소리에 한심해하는 티가 역력했다. 순식간에 얼굴만 보는 남자가 되어버린 다이컨이 억울해했다.
“그 뜻이 아니라, 단장, 제 말은 그러니까……!”
“경. 그런 생각은 무척이나 편협하니 바꾸는 걸 추천하지.”
사람을 사귈 땐 속내를 보라는 진지한 충고에, 다이컨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중얼거렸다.
“……지금껏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본 단장께 그런 오해를 받고 싶진 않습니다…….”
그 뒤로도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겨우 오해를 푼 다이컨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래서, 단장, 어느 부분이 그리도 멋있었습니까.”
연달아 던져진 질문에, 에드가는 이번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매일 밤, 매일 낮, 시간이 날 때마다 되새기는 그날. 지금도 눈을 감으면 바로 손에 잡힐 만큼 생생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삼 년 전이었지.”
인간은 시각적인 것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존재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기사라 할지라도 떼로 몰려오는 몬스터를 보면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는 이유였다.
에드가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첫눈에 반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어찌 보면 그러한 평범함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렇듯 운명적인 짝사랑은 꽤나 뻔한 얘기로 시작된다.
마법사인 남동생을 대신해 드벨 후작 가문을 이어받은 로렐리아.
삼 년 전, 황제는 기사의 길을 택한 리아의 처우를 놓고 고뇌했다. 종기사는 물론이거니와 평기사도 아닌 그녀를 곧장 부단장이나 단장으로 밀어 넣자니 일어날 반발이 눈에 훤히 보인 탓이었다. 그렇다 하여 정식 임명장까지 내린 후작을 평기사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뇌하던 그는 결국 리아에게 제2기사단을 맡겼다. 제2기사단에 대한 평이 바닥을 찍다 못해 나뒹굴던 때였다. 그러니 단장이라는 직책을 맡겨도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리라. 로렐리아가 버티면 황제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될 테고 버티지 못하면 역시 여자, 라는 말이 나오기 딱 좋은 자리.
어느 쪽이건 황제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는 만족스레 인장을 찍었고, 그녀는 그렇게 붉은늑대기사단의 단장으로 부임했다.
에드가가 본 것이 바로 그 기사단과 로렐리아가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우락부락한 여덟 명의 사내들 사이에서 정복을 입은 채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더랬다.
에드가는 그때 보았던, 높게 올려 묶은 금발과 흔들림 없던 녹안을 떠올리며 천천히 웃었다. 물에 물감을 풀어낸 듯한 미소였다.
“그 곧은 시선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발검拔劍하는 모습이 그토록 빛나 보이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
기사들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가까스로 입안으로 삼켰다.
이유를 들었는데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참으로 기이한 상황에 기사들은 전부 침묵했다. 바삐 주고받는 시선들에 혹여나 저들의 단장이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지만,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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