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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0015682
· 쪽수 : 438쪽
· 출판일 : 2017-03-2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불편한 남자
내 사람 되라고
손 좀 치워주시면
가둬놓고
좋아해, 좋아한다고
별을 찍는 밤
너 아니면 안 되니까
기울어지는 저울
좋아지고 있어요
엉망진창 여행
수호신
그 남자의 비하인드 컷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틈에 절 어떻게 할 작정이라면…….”
덤덤한 척 말했지만, 목소리 끝은 떨고 있었다. 마주한 승도는 위험한 야생동물 같았다.
“남자한테 고백을 받아본 적이 없군.”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작은 결점이라도 찾아낼 것 같은 가까운 거리. 남자의 더운 숨결에 취해버릴 것 같아 어지러운데, 승도가 공간을 뒤흔드는 말을 던졌다.
“내가 널 좋아하고 있어.”
“…….”
숨을 쉬기가 힘들다. 동시에 뻐근해지는 심장.
필사적으로 버티던 다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절했어?”
“아, ……아니요.”
다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공에서 마주한 시선이 얽히길 몇 차례. 곧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이 걱정된 승도가 꽉 움켜쥔 손아귀의 힘을 슬쩍 풀었다.
“내 고백이 그렇게 충격이었어?”
“꿈에도 생각지 못한 말이라서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다진은 승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좀처럼 동요가 없는 얼굴이 지금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우선 제가 진정을 해야 해서요. 손부터 놔주세요.”
남자에게 붙들린 손목이 뻐근했다. 승도는 아쉽다는 듯이 손을 천천히 풀어주었다. 일단 그에게서 벗어났는데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맹렬히 따라붙는 남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다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지는 않는다. 승도의 숨소리밖에는.
눈을 감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승도의 기습적인 고백은 물과 기름처럼 뇌가 흡수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다정한 말 한번 건넨 법이 없는 그였다. 3년씩이나 어떻게 혼자 진호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런 그가 여행을 다녀와서 변했다. 그리고 일련의 미묘한 행동 변화가 쉽사리 설명되지 않았는데, 그 모든 것이 내가 좋아서? 설마…….
“계속 서 있을 거야? 다리 아플 텐데.”
지금 다리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눈을 떠서 고백한 승도의 표정이 어떤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둘만이 존재하는 창고가 모두 그의 눈 같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건 그렇고 왜 이토록 심장이 거칠게 떨리는지 알 수가 없다. 어금니를 악물어도 떨림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뜨겁게 닿는 승도의 시선이 생생하게 느껴져 다진은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감싼 양손을 내렸다.
그와 두 눈이 마주쳤다.
“믿기 힘든 말이에요.”
“뭐가?”
“절 좋아한다는 말.”
기분이 상했나? 승도는 침묵을 지켰다. 그가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자 다진도 가만히 서 있었다. 어설프게 웃을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승도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찢어놓는 듯한 미소에 가슴이 묵직해진다.
“정다진.”
왜, 왜 그렇게 무섭게 불러요.
맥박이 뜨겁게 뛴다. 사진처럼 미동 없이 앉아 있던 승도가 일어섰다. 안절부절못하는 심장이 균형을 잃었다. 괴롭히듯 얼굴에 머무는 남자의 시선. 몸을 뚫고 나올 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
“거기 서서 말하세요.”
“싫은데.”
두 걸음이면 끝날 거리였다. 사방이 막힌 창고. 도망칠 곳도 없다. 다가오는 승도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다. 고조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진은 아무 말이나 했다.
“한승도 사장님이 남자로 안 보여요. 그렇게 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어요.”
“그래?”
승도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시야가 온통 한승도로 가득 찼다. 다만 숨이 인공호흡이 필요할 정도로 끊어질 듯이 나와 가슴이 뻐근했다.
“그렇잖아요. 전, 진호 선배를 좋아하고 있고……, 사장님도 그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고백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그건 사적인 마음이니까 관여할 생각 없어. 마찬가지로 내 마음도 터치할 필요 없다는 소리야.”
“…….”
“고백 순순히 받아. 안 그러면 너만 피곤할 테니까.”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가슴에서 에어백이 터지는 듯한 강한 충격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전혀 달콤하게 들리지 않는 남자의 저음. 문득 갈증이 심하게 일었고 입술은 메말라갔다.
“이게 무슨 고백이에요? 협박이지.”
무의미한 항의였다. 그녀의 항의가 무색하게 승도는 무표정했다. 진이 다 빠진 다진은 여전히 승도의 고백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제가 왜 좋으세요?”
“넌 진호가 왜 좋은데?”
꼭 질문을 해도.
하기야 사람 좋아하는 데 수천 가지 이유 따윈 필요 없다. 상대의 허락을 받고 감정이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다진은 낮은 신음을 삼키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곤란한 질문을 한 그가 원망스럽다.
“사장님은 교활해요.”
“뱀띠라서 그런가.”
“정말, 대화가 안 통해.”
이대로 승도와 이틀을 지내야 한다고. 신경이 가시처럼 뾰족뾰족 섰다. 다진은 입술에서 진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숨만 쉬어도 신경 쓰이는 승도는 갑자기 나무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너한테 남자로 보이고 싶어서.”
뭘 예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주는 엉뚱한 대답. 은근히 뒤끝이 있다. 남자는 ‘힘’이라는 단순한 논리라도 펼치고 싶은가 보다. 승도는 묵직한 상자들을 번쩍번쩍 들어 일렬로 놓고 있었다. 그리고는 몇 개의 종이 상자를 북북 뜯어 그 위에 겹겹이 올려놓았다. 레몬이 들어 있는 상자를 뜯었는지 상큼한 레몬 향이 코끝을 기분 좋게 찔렀다. 조금 지나서야 승도가 왜 상자들을 옮겼는지 알 수 있었다.
“피곤하면 누워.”
“괜찮아요.”
다진은 일렬로 놓인 상자에 앉자 등을 선반에 편히 기댈 수 있었다. 보기와 다르게 세심하구나. 딱딱한 상자 위에 뜯은 종이를 겹쳐놓아 적당히 푹신했다. 긴장으로 꼿꼿해진 허리가 한결 편해졌다.
“좋아해.”
잠깐 방심함을 틈도 없이 승도는 꿈에서도 잊지 말라는 듯 말했다. 정신이 멍하다. 다진은 고개를 돌려 승도를 바라봤다. 그가 남자 구미호처럼 보였다. 무심하게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사람을 잘도 홀린다. 황당해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바라봤다. 그러나 승도는 그녀를 아예 대놓고 감상했다.
“나 역시 널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중이니까, 억울한 얼굴 할 필요 없어.”
위로라고 건넨 말에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좋아하고 싶지 않은 여자를 좋아해서 억울하다는 말로 들렸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그나마 남았던 집중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승도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