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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 이야기
· ISBN : 9791130690308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22-04-26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_정여울 『빈센트 나의 빈센트』 저자
프롤로그_우리의 인생도 하나의 작품입니다
1. [지성] 인간 내면의 진정한 힘을 조각하다
도나텔로 「다비드」 청동상
2. [사랑] 평범한 인생을 작품으로 탄생시킨 예술가
마사초 ‘브랑카치 예배당 벽화’
3. [영혼] 신과 인간 사이의 결정적 변화를 그리다
베아토 안젤리코 「수태고지」
4. [행복] 평범한 일상 속 완벽한 행복을 그린 화가
필리포 리피 「리피나」
5. [이성] 완벽한 균형을 그리기 위해 수학자가 된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브레라 제단화」
6. [여성] 신화에 갇힌 여성을 현실로 소환하다
「비너스의 탄생」과 시모네타 베스푸치
7. [인문학] 5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산드로 보티첼리 「봄」
8. [자연] 인간 영혼과 자연의 연관성을 탐구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9. [권력] 가족이 화목해야 국가도 평온하다!
안드레아 만테냐 「부부의 방」
10. [심리] 초상화에 심리를 담아내기 시작한 혁신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 「수태고지의 마리아」
11. [아름다움] 다정한 예술가가 보여준 아름다움의 극치
라파엘로 산치오 「성모 마리아」
12. [불안]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민낯
야코포 다 폰토르모 「그리스도의 매장」
13. [감각] 인간은 삶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을까?
틴토레토 ‘산 로코 회당 작품 시리즈’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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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맴돌던 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미술 공부를 해보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해 후회하는 나의 늙은 모습을 상상하니 지체 없이 떠날 수 있었죠. 공부를 마치면 피렌체의 어느 작은 공방에 앉아 그림을 고치는 이방인으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도 친척도 하나 없는 이탈리아에 미술 복원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던 나이가 서른네 살, 이탈리아 학생들 사이에 나이 많고 현지 말 한마디 못 하는 동양 여자는 어디에 가나 눈에 띄었습니다.
이탈리아어는 매일 밤을 새며 공부해도 어려웠고 낮은 이탈리아 급여 현실에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그렇게 쓸쓸히 보내는 날들도 숱하게 많았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면 현실을 잊을 만큼 그림이 주는 행복이 컸습니다.
예술 작품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깊이 탐구하는 이탈리아의 복원 방식에도 매료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예술을 대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을 둘러싼 역사와 연구 결과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마치 인간처럼 대했습니다. 복원할 때도, 감상할 때도 작품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한 소년이 노인 조각을 기가 막히게 만듭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솜씨가 좋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로렌초는 실제를 모방한 작품에 불과하다며 아쉬워합니다. 기술이 뛰어난 것일 뿐이라는 거죠. 그는 “노인의 이빨이 저리 건강한가” 하는 말로 아쉬움을 내뱉고 갑니다. 실물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던 소년, 미켈란젤로는 그제서야 미술이란 현실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하게 베끼어 사람들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미술의 목적은 ‘공감’이며 그 ‘그럴듯하게’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작가 개인의 생각에서 나오죠.
미칼란젤로는 노인의 이빨 두 개를 부러뜨립니다. 그러자 로렌초의 눈이 반짝입니다. 창의적인 것이 무엇인지 단 한마디의 가르침으로 알아채다니…. 미켈란젤로에게는 기술뿐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 즉 지성의 씨앗이 있었습니다. 로렌초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들여 예술가 교육을 시킵니다.
사전적 의미로 ‘재능’이란 타고난 인간 본성이며 지성을 통해 발휘되는 능력입니다. 예술가들이 인간 지성을 연구한 이유죠. ‘예술가의 재능’에 대해 피렌체 수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재능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재능을 발휘하려면 감각이 특별히 발달해야 하고 지성이 생각회로를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에게 특별히 르네상스 미술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을 생각하는 방식이 중세와 달랐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으로 판단되는 존재가 아니라 감각과 지성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라는 것이죠. 인간의 감각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연 연구를 시작합니다.
몇 년 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3월이 끝나갈 무렵, 관광객이 별로 없어 한산한 미술관에서 한 남자가 보티첼리가 그린 세기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을 한없이 바라보다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림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장미꽃잎을 꺼내 뿌리면서 “에 아르테, 에 포에지아Es arte, Es poesia. 이것이 예술, 이것이 시!”라고 외쳤습니다. 파격적인 소동은 달려온 경비원들에 의해 제지되면서 5분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죠.
25세의 이 스페인 청년은 경찰서에서 비너스가 자신의 이브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담인 자신이 이브를 만나 태초로 돌아가기 위해 옷을 벗었노라고! 무슨 미친 소리냐며 질타하는 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그는 외설죄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 아드리안 피노 올리베라Adrian Pino Olivera는 사실 행위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 자유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원초적 자유는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누드에서 나온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자신도 그녀처럼 벌거벗는 것으로 원초적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얼마나 공감했을까요?
당시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기록하기 위해 옆에 있던 학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여학생은 그가 옷을 벗자, 기겁하며 도망칩니다. 관람객으로 온 소녀가 충격을 받는 동안 그는 비너스 앞에서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 비너스는 벌거벗고 있는지, 그녀를 이브로 보는 이 남자의 시선이 왜 그리 낯설지 않은지, 그 시대에 비너스에 대한 시선은 어땠을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