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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33187348
· 쪽수 : 420쪽
· 출판일 : 2020-11-19
책 소개
목차
#10. 고요한 재회
#11. 복수라는 이름의 특권
#12. 창창한 앞날을 향하여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그라크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알겠으니까 항복해!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마!"
"뭐 이런 미친 계집이 다 있어!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사실 안 살려 줄 거야."
바보 놀리는 건 역시 재밌다니까. 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6층까지 들렸는지 그라크는 성이 나서 고래고래 미친놈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널 죽이고 오늘이야말로 악몽 없이 잠들겠다! 네가 뭘 믿고 그러게 자신만만한지는 모르겠다만! 오늘 너를……."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크악! 남의 대사 빼앗지 마!"
"잔말 말고 덤벼!"
그라크는 내게 두려움을 심어 주기는커녕 도발하는 것조차 장렬하게 실패했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걸 신호로 수많은 화살 끝이 내게로 향했다. 끼릭끼릭, 사방에서 활시위 당기는 소리가 귓속으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무기에는 무기지. 나는 입가를 늘리며 주문을 외웠다.
"자비롭지 않은 물이여. 성난 바다와 죽음이 맺힌 소용돌이의 끝에서 일어나……."
다만 내가 주문 외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해 둬야 했다.
"내게로 오라, 엔다이론."
불러낸 것은 분명 물인데 밟고 서 있는 대지가 요란하게 울렸다. 너무 거대한 것이 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를 맞고 푹 젖어 있던 땅이 빠르게 마르며 내 발밑에서부터 물의 형체가 솟아올랐다. 나는 점점 몸이 위로 올라가는 걸 느끼며 물 위에 앉았다.
화살을 쏘려다 말고 당황하는 노예상 일당들이 점점 작고 초라해지는 게 보였다.
"저게 뭐야!"
"시, 신이시여……."
운디네가 흔히 연못에 비유된다면 운다인은 강이었다. 그리고 엔다이론은 바다였다. 그 위용은 단순히 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대단한 힘과 압도적인 존재감이 흘러넘쳤다.
흡사 드래곤과 뱀을 섞은 듯한 수룡의 모양이었으며, 심해의 색인 물로 이루어졌고 거대하기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였다.
엔다이론은 순식간에 그라크가 있는 6층 건물보다 3층은 더 높이 치솟았고, 그러고도 몸은 끝없이 길어졌으며 매 순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 잠깐……!"
이제는 그라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기를 짓누르는 쩌렁쩌렁한 존재감에 멍청한 얼굴을 하며 입을 벌리는 게 빤히 보였다.
"바, 반칙 같은데…… 이거 반칙 아니냐?"
그라크는 뒤늦게 내게 덤빈 걸 후회하는 것 같았다.
엔다이론 앞에서 그러지 않기란 실상 힘든 일이었다. 살벌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그보다 작은 걸 모두 숨 막히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였으니까.
"그라크. 죽음을 자초한 걸 축하해."
(본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