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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38501071
· 쪽수 : 492쪽
· 출판일 : 2021-09-15
책 소개
목차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하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하시오.”
“저하께선…… 소첩을 사랑하시나요?”
걸핏하면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여인네들의 이 습성 또한 범이 질색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들은 남편이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일 방 안에 처박혀 자신을 간곡히 쳐다보면서 입이 닳을 때까지 아름답다고 말해주길 원하는 듯했다. 물론 그 정도 말은 범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인 채 물결처럼 흔들리는 연씨의 눈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그의 입술은 햇살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띠었고, 그 사이에서는 녹을 듯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물론이오. 그대는 나의 소중한 반려가 아니오.”
‘범성군, 풍경 소리가 났습니다. 주상 전하가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어머님. 바람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하루에도 그런 대화를 수십 번씩 반복했다. 부뚜막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에도, 나인들과 내관들 의 발소리에도 희빈 박씨는 부왕이 왔다고 생각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나중에는 범 자신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정말 아바마마가 오셨던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왔다 가신 건가. 아니, 오셨는데 내가 잊어버린 건 아닌가. 흰 벽을 앞에 두고 멍하니 생각하다 보면 뭐가 현실이고 뭐가 상상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좁고 어두운 방 에 갇혀 모자는 그렇게 나란히 미쳐가고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듯 뿌연 그 시절의 기억에서 한 가지는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항상 불 행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