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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40827442
· 쪽수 : 976쪽
· 출판일 : 2024-07-22
책 소개
목차
1권
序章
一章
二章
三章
四章
五章
六章
七章
八章
2권
九章
十章
十一章
十二章
十三章
외전 1. 연모
외전 2. 태양의 꽃
외전 3. 서우온
외전 4. 평화
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땅에 소복하게 쌓였다.
바람이 불자 저택의 지붕에 매달려 있던 작은 종에서 나는 소리가 공허한 공터에 나지막이 울렸다.
그리고 그 공터의 가운데에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가 내뿜는 분위기는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베어 버릴 것처럼 날카로웠지만, 군살 없이 단단한 체격과 흠잡을 곳 없이 또렷한 이목구비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유혹이 들 정도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폐하.”
얼굴까지 완전히 가린 인영이 기척도 없이 사내의 뒤로 다가왔다. 낮은 목소리에 놀랄 법도 했지만, 사내는 미동조차 없었다.
인영의 눈이 사내의 어깨에 내려앉는 눈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폐하. 이곳의 주지가 쉬실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도, 은근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사내의 눈은 정면에 굳게 닫힌 문을 하염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광기에 고하던 인영이 결국 뒤로 물러났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소복에 긴 머리를 한쪽 어깨로 내린 여인이 맨발로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렇게 계셔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십시오.”
단호한 거절에도 사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사내의 눈이 밖에 나와 있는 여인의 파리해진 얼굴과 소복을 입은 작은 체구와 마지막으로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오는 붕대가 감긴 손을 향했다.
손만의 상처는 아니었던 듯 소매 아래로 보이는 얇은 팔목 곳곳에도 깊고 얕은 상처가 가득했다.
“돌아가자.”
여인의 말 따위 듣지 않은 것처럼 사내의 말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사내의 말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고, 약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거짓말.
여인의 마음 깊숙이 감춰 놓은 진심을 흔들고, 이 상황을 힘들어하는 여인을 현혹하려는 위험한 속삭임이었다.
처음부터 제 삶이 지옥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했었던 길.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살아남은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빛을 잃은 눈이 제 왼손을 보았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더는 제 삶을 붙잡으며 버틸 이유가 사라졌다.
“이곳에서 조용히 여생을 살다가 가겠습니다.”
그 끝이 얼마나 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남은 약조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제 결심은 바뀌지 않으니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십시오.”
“네가 가지 않으면 이곳을 불태우겠어.”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려던 여인의 걸음이 멈추었다. 여인의 눈에 짧게나마 적의가 보였던 것도 찰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이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그 불에 저도 죽겠습니다.”
사내의 눈에 은은하게 서려 있던 살기가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바뀌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사내의 분위기는 이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끔찍하게 뒤틀렸다.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사내가 여인의 앞까지 다가왔다.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같이 가든지.”
흔들리지 않는 여인을 보던 사내가 손을 위로 올렸다. 순간 정적이 일던 곳에 비명이 울리고, 코끝에 타는 냄새가 퍼졌다.
“아니라면 이 불에 같이 죽자.”
불을 끄라는 비명도, 높은 담 너머로 보이는 연기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여인을 붙잡은 사내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