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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1024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3-12-26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병원에서 퇴원해 태경과 함께 현성의 집에 돌아왔었을 때 태경은 무척 당황스러워 했었다. 그의 책상과 벽에 있던 가희의 사진이 없어졌다면서 허둥거렸었다.
“뭐? 사진? 내가? 너 지금 장난하는 거지? 내가 무슨 여자 사진을 책상 위에 놓냐? 나 그런 짓 안 한다.”
“어머니가 치우셨나 보다. 너 휴대폰도 어머님이 바꿔 주셨지? 진짜 너무 하시네. 어떡해…… 아무리 맘에 안 드는 며느리였다고 해도 네가 기억 잃은 걸 이렇게 이용하시나?”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어머니가 진짜 내 물건들을 치우셨다는 얘기야?”
태경의 안색이 변해 있었고 현성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웠었다. 새 휴대폰으로 바꿨다며 어머니가 주셨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받았었는데 그게 가희의 흔적들을 치우기 위해서였다니.
“너 사고 직후에도 구급대원이 가희 씨한테 네 전화기로 전화했었어. 네가 의식도 없는데 자꾸 가희 씨 이름을 불러서. 그리고 네 손에 있던 반지도 어머니가 빼 버리셨어. 가희 씨하고 같이한 커플링인 걸 뻔히 아시면서도. 그날 가희 씨는 깨어나지 않는 너 때문에 거의 실신 상태여서 네 손에서 반지가 빠져 나가는 것도 모르더라. 그래서 휴대폰도 서둘러서 바꾸신 거겠지. 거긴 둘이 서로 보낸 메시지도 있고 사진도 있을 테니깐.”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 손을 내려다 봤었다. 그때 태경은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사진들을 현성의 오피스텔에서 찾아 다녔고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태경의 말로는 아버님은 가희를 맘에 들어 하셨지만 어머님의 반대가 심했었다고 했다. 충분히 짐작이 됐다. 형이나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길 바라셨을 테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은 가희와의 결혼을 계획대로 진행했고 다음 달부터는 제대로 준비를 시작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을 앞둔 현성은 무척이나 행복해 했었다고 태경은 힘주어 말해 주었었다.
분명 자신의 얘기를 듣는 것인데 낯설고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길 듣는 것 같기만 했었는데 친구가 말한 그 얘기의 실체가 눈앞에서 보이자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의 현성은 가희를 가슴에 안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자신의 이런 행복한 미소를 본 적이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는 옆에 있는 여자로 인해 행복하다는 사실이 그대로 얼굴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두 사람뿐인 것처럼 행복한 얼굴로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 연인들! 현성과 가희.
‘내가 왜 이런 시간들을 잊은 거지?’
두 사람 사진 옆에는 태경과 셋이 찍은 사진도 있었다. 두 사람 가운데 앉은 가희는 잔뜩 어깨를 움츠리며 귀여운 얼굴로 웃고 있었고 그녀 옆의 현성은 다정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으며 태경은 가희의 어깨에 살짝 기댄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즐거운 모습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현성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황가희!”
다른 선반에 있는 액자에도 현성과 가희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작고 큰 사진 속의 두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고 현성은 사진 속의 또 다른 자신을 무척 낯선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뒤를 돌아 집안을 둘러보던 현성은 다른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이 집, 내가 꾸민 거야?”
자세히 보니 집안 곳곳이 자신의 스타일로 꾸며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눈에 익은 마감재가 보였고 작은 화장대 위에 있던 소품들까지도 자신의 방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들이었다.
가벼운 어지러움증이 일었지만 현성은 주위를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희의 침대 옆에 있는 스탠드가 눈에 확 띄었다. 그건 영국에 여행 갔다 오면서 런던의 벼룩시장에서 너무 맘에 들어 사 왔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가희의 침대 옆에 있다니.
가슴에 답답증이 일었다. 뭔가 알아야 하는 것을 잃고 너무 소중한 것을 잃은 느낌에 점점 답답해졌다. 물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뭘 먹고 사는 거야? 진짜…….”
냉장고에는 김치가 담긴 통 하나와 생수병 몇 개 그리고 유산균 음료뿐이었다.
도대체 밥은 제대로 해 먹고 사는 건지 텅 빈 냉장고를 보는 순간 갈증도 한순간 잊어 버렸다.
‘이러니 저렇게 마르지.’
냉장고에 있던 물을 꺼내 컵에 따라 두 잔이나 마셨고 자고 있는 가희가 한 번씩 몸을 뒤척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스탠드에 불을 켜고 집 안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침대 옆에 있는 스탠드의 불빛만 유일했고 그 빛으로 인해 가희는 더 아름답고 더욱 빛났다. 그냥 이대로 가버리면 되는데 그는 그대로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내가 이 침대에서 당신과 누운 적이 있었을까? 이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고 청소를 하고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을까?’
현성은 분명 그런 시간들을 이곳에서 가희와 같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의 자신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가 잊어버린 어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을 느꼈을 그 시간의 자신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 좀 해내라. 강현성, 제발 기억 좀 해 봐. 어? 혹시 이 반지가…….’
가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끼어져 있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링이라고 하더니 정말 맘에 쏙 드는 반지였다.
현성은 가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오는 택시 안에서 가희의 얼굴을 처음 만져보았을 때처럼 현성은 또다시 설레고 떨리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그동안 만났던 여자가 몇 명인데 나 왜 이래? 겨우 이렇게 손 좀 잡은 것뿐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 마냥 안쓰럽기만 해. 왜 이렇게 맘이 안 좋지?’
자신의 손과 가희의 손을 번갈아보던 현성은 천천히 가희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방 안을 천천히 살펴봤다. 따뜻한 느낌의 공간 속에 있는 자신만 마치 빙산이 된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