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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숨결이 되어

바람은, 숨결이 되어

여지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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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숨결이 되어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바람은, 숨결이 되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223610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8-03-30

책 소개

여지훈 장편소설. 이야기는 '현진'이라는 주인공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며 시작된다. 어떤 병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원인 모를 불안감에 떨던 주인공은 병원을 나오며 어떠한 고난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각오를 다진다.

목차

목차 없는 상품입니다.

저자소개

여지훈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87년 출생. 『사막에 피는 꽃』 저. 꿈꿀 만한 게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일을 시작해 지금껏 꾸준히 걸어왔고, 마침내 그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꿈을 좇아 걸어가고 있습니다. 때론 꿈을 꾸며 좇는 이런 제 자신이 허공에 나풀거리는 한 톨의 먼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나풀댐은 밉지 않고 참으로 정겹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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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년째 꾸준히 이어오던 마라톤 훈련을 하던 중 일어난 사건은 사실 그로서는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내려다보던 이들에게서 들은 것은 무척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자신이 달리고 있던 중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도무지 믿지 못했던 그였지만, 땅에 누워 있던 스스로의 상태가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사건 이후, 아무리 누르고 당겨 보아도 저릿저릿하기만 할 뿐 제대로 감각되지 않는 왼쪽 머리의 상태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현진은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답하고는 진료실에서 나왔고, 이어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서둘러 진료비를 지불한 다음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런 그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복잡하게 헝클어지고 있었다.


현진이 한 평 남짓한 텐트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텐트 외피에서 수선스럽게 퍼지던 빗소리는 묘한 아늑함을 느끼게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질 못했다. 바람이 차츰 거칠고 높은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텐트가 심하게 들썩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구구구궁
마치 테너와 소프라노를 받쳐 주는 웅장한 베이스의 음처럼, 빗소리와 바람 소리의 야단스러운 화음을 뚫고 돌연 둔중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아주 멀리서 발생한 것 같았으나 동시에 어떤 섬뜩함을 동반하고 있어, 현진은 저도 모르게 온몸의 털이 올올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며, 점차 커졌고, 또 잦아졌다. 텐트를 요란스레 후려치는 바람의 횡포로부터 느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보다 은밀하면서도 근원적인 공포가 소리가 터질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 급격히 덩치를 불려갔다. 밖을 내다볼 엄두는 아예 낼 수도 없었으며,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마비된 그의 머릿속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떠올리지를 못했다.


사막이란 과연 이 행성의 코, 혹은 입, 그 어디쯤 되는 것일까. 침묵을 닮은 지평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은 흡사 지구가 몰아쉬는 뜨거운 숨결인 양 한가득 열기를 품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 속 듬성듬성 자리한 흰 뭉치들은 느릿한 속도로 한 방향으로 떠가고 있고, 그 아래로 낮게 솟은 풀들은 메마른 몸짓으로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타는 듯한 한낮의 사막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궤적도 없이 세상을 자유로이 떠도는 바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은 그 사이를 홀로 걷는 이가 있었다. 그이는 사막의 모래 빛깔을 닮은 엷은 상아색 모자와 날렵한 유선형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그 턱 아래로 넓게 퍼진 수염과 몸집만 한 배낭을 다부지게 멘 넓은 어깨로부터 그가 건장한 남성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매섭도록 몸에 부닥치고 있었지만, 그는 잠깐잠깐 몸을 들썩일지언정 꾸준한 속도로 아무런 지표도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뜨거운 뙤약볕에 시달리는 땅 위로 진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던 그의 움직임이 차츰 느려지나 싶더니 이윽고 완전히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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