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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343127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18-10-30
책 소개
목차
007 구름 위의 남자
027 달무리
069 부메랑
091 문門
141 여정
167 접은 우산
197 하얀 바람
261 한옥
287 해후
307 환상 속의 여자
저자소개
책속에서
무도회관 넓은 홀에는 블루스 음악이 흘렀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진희의 발이 미끄러지듯 홀을 누볐다. 댄스선생 이정우의 발이 진희의 스텝을 잘 리드하였다. 블루스 곡이 끝나자 지르박이 흘렀다. 손을 끌었다 밀었다 하면서 여기저기서 지르박 댄스가 펼쳐졌다. 블루스와 달리 지르박은 경쾌하다. 스텝이 단순해 초보자라도 하루 이틀만 배우면 금세 박자를 타고 돌게 된다. 진희의 온몸이 돌고 돌았다. 어느새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이 선생과 밀고 당기면서 춤을 추었다. 음악이 끝나자 이정
우가 손뼉을 쳤다.
“홍 여사님 정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나셨습니다. 얼마 되지않았는데 이렇게 금방 스텝을 밟으시니. 정말 잘하셨습니다.”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진희는 웃었다. 친구 정희의 손에 끌려 무도장에 처음 왔을 때 진희는 당황하였다. 진희가 문을 들어서자 이 선생이 진희 앞으로 다가왔다. 이 선생은 긴 머리에 흰 상의와 흰 바지 흰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조각처럼 정교하였다. 누가 보아도 보통 남자들과는 풍기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과찬의 말씀을, 오늘 수업 끝났죠.”
“네, 내일 3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이런 진도로 나가면 한 달이면 마스터하겠는데요.”
“감사합니다. 칭찬해 주셔서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백을 들고 나오면서 진희가 인사를 하자 이정우가 서운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춤을 배우기 시작한 지 2주일이 되어 가지만 진희는 필요 이상의 말을 아꼈다. 항간에 제비들의 얘기를 익히 들은 터라 처음부터 춤 만 배우지 절대 그 이상의 친절은 베풀지 않기로 하였다. 정희의 소개로 무도회장을 찾았을 때도 진희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시내 한복판 3층에 위치한 무도회장은 7. 8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었다. 사방이 거울로 장식되었고 질 좋은 마루가 깔려있었다. 누구든 들어만 가면 분위기에 젖어 저절로 홀을 돌고 싶을 분위기였다. 얼마 전부터 자꾸 몸이 안 좋아 보약이라도 지으려고 한의원을 찾았을 때 맥을 짚던 원장은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가 이렇게 몸을 그냥 두었우. 꼭 절인 배추 같아. 이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기가 빠져 쓰나. 운동 부족이야. 열심히 운동 하슈.”
진희는 별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워낙 문밖을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진희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
“무슨 운동이 좋을까요. 제가 별로 운동 신경이 없어서.”
진희가 묻자. 원장이 의아한 듯 말했다.
“왜 요즘 같은 세상에 할 운동이 없겠소. 무리한 게 싫으면 한국 무용도 좋을 것 같은데.
취미 삼아 배워보던가.”
집으로 오면서 친구 정희에게 전화를 하자 정희가 대뜸 권했다.
“얘는 진부하게 한국무용은, 그러지 말고 댄스 좀 배워봐. 나도 얼마 전에 친구 따라 무도회관 구경 갔다가 한 달간 티켓 끊고 배웠어. 얼마나 재미있는데. 운동도 많이 되고. 우리 나이에 춤도 배워 둘만 해. 내가 소개해 줄게.”
티켓을 끊은 지 이제 2주일째다. 매일 교습이 1시간인데 오고 가기가 번거로워, 온 김에 1시간 더 하기로 해 아예 교습비를 두
배로 주었다. 3시부터 5시까지 하고 집에 가면 시간이 남편 퇴근시간보다 조금 일렀다. 그때부터 저녁 준비를 해도 충분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편 조민혁의 신발이 보였다. 이렇게 일찍 들어오긴 드문 일이다.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항상 집에 있는 줄 알던 진희의 외출이 못마땅한 듯 보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는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친구 좀 만났어요. 일찍 오셨네.”
“내일 일본 출장이 있어. 가방 좀 싸 놔.”
“네, 저녁은요.”
“먹고 들어왔어. 당신은?”
“아직 인데 먹어야죠.”
옷을 갈아입고 진희는 부엌으로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딸 정아와 아들 인철인 아직 학원에서 오지 않았다.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샤워를 하고 커피를 타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커피 할래요.”
“아니.”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 ‘문(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