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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411093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8-06-28
책 소개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 피디, 혹시 그 사내 게시판 올라왔다는 글 봤어?”
“네.”
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언은 지혁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그거 누가 쓴 거야? 내용이 뭔데? 기제국 다큐 캔슬된 거 관련이라며?”
“그게요…….”
지혁이 막 대답하려던 참이었다. 회의실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재희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사람이 잠시 머뭇거리다 안으로 들어섰다.
정언은 잠깐만, 하고 지혁의 말을 끊으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젊은 남자였다. 해사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법한 잘생긴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훌쩍 큰 키에 댄디한 스타일은 덤이었다. 아나운서국이라면 모를까, 시보국에서는 어지간하면 보기 힘든 부류였다.
작가들이 즉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무언의 감탄이 오갔다. 그것을 알아챈 정언은 픽 웃으며 다시 남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십 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에는 아직 소년 같은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고 생각한 건 직후였다. 아무리 봐도 초면인데 왜 그런지 모를 노릇이었다. 연예인 누구를 닮아서 그런가 싶었으나, 정언이 아는 연예인은 한 손에 겨우 꼽을 정도였다.
정언이 기억을 더듬는 사이, 재희가 파란색 PP 박스를 품에 꼭 안고 선 남자를 가리켰다.
“이쪽은 오늘부터 우리 팀에서 일하게 될 김윤 피디. 인사해.”
목에 건 사원증의 사진과 이름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사보 표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정갈한 증명사진 아래 선명하게 김윤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긴장했는지, 윤이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부로 교양국에서 시사보도국 3부로 발령받은 김윤 피디입니다.”
교양국에서?
정언은 눈썹을 좁혔다. 부서 이동 시즌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교양국에서 갑자기 여기로 온다는 건 이상했다. 뭔가 싶어 의아한 기분이 되었다.
재희가 정언을 불렀다.
“서 피디.”
퍼뜩 현실로 돌아온 정언은 네, 하고 대답했다. 재희가 손에 들고 있던 펜으로 윤 쪽을 가리켰다.
“서 피디가 김윤 피디 사수 맡아. 김 피디 이제 2년 차고 교양국에만 있어서 우리 쪽 일 낯설 테니까 차근차근 가르쳐 줘. 아, 서 피디 오른쪽 자리 비어 있지? 우 피디가 이따 회의 끝나고 자리 세팅 도와주는 걸로 하고.”
윤의 얼굴에 바짝 얼어붙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봐도 자원해서 온 사람 같지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며 사람들을 둘러보던 윤의 시선이 문득 정언과 마주쳤다. 정언이 그 눈을 빤히 마주보자, 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러기 무섭게 맞은편에 앉은 조혜주 작가와 성희림 작가가 자기들끼리 뭐라고 소곤거렸다. 소리 없이 꺅꺅대는 걸 보니 보나마나 잘생겼다는 얘기일 게 뻔했다.
그러나 정언에게는 그 잘생긴 얼굴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쓸데없이 웃음이 헤픈 남자는 취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언에게는 지금 대체 쟤를 어디서 봤을까가 첫 번째, 여기 어울릴 타입이 아닌데 얼마나 버틸까가 두 번째 의문이었다.
한 사람이 아쉬운 판이었지만, 이제 가르치기 시작해서 폐지하기 전까지 써먹을 날이 오긴 할지도 막막했다. 그나마 2년 차라면 일 돌아가는 건 어느 정도 알지 않을까 하는 데 희망을 걸어야 했다. 선배는 왜 하필 나한테 저걸 붙이고 그래, 하며 정언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
“신참이면 자기소개 좀 해 봅시다.”
“네? 아, 네.”
퍼뜩 놀란 윤이 박스를 더 꼭 안았다. 그게 아주 귀여워 죽을 지경인지, 혜주와 희림의 입이 귀에 걸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언은 턱을 괴었다.
입봉 이후 자신의 서브 자리를 거쳐 간 후배들은 두 손으로 몇 번을 꼽아야 할 정도였다.
정언은 후배들에게 그다지 상냥한 선배는 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드한 팀이었다. 신입들이 곁을 잘 주지 않고 엄격한 선배 밑에서 오래 버티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정언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굳이 후배들을 위해 성격을 바꿀 마음은 없었다.
정언은 윤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얘는 한 달이나 갈까. 아무래도 교양국에나 계속 있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주저하던 윤이 입을 열었다.
“김윤입니다. 입사한 지 2년 차고,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스물아홉이라. 보기보다 동안이네, 하고 정언은 무심코 생각했다. 사원증이 없었다면 대학생 아르바이트라 해도 그러려니 할 것 같았다.
윤을 아래위로 훑어보자, 지나치게 멋 부린 것 같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착장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팔다리가 길어 옷걸이가 좋은 것도 그 괜찮은 스타일에 한몫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곱게 자란 티가 역력했다.
“스물아홉이면 지혁 피디님이 한 살 어리니까 계속 막내겠다. 키 몇이세요? 되게 커 보이시는데.”
“185입니다.”
희림의 물음에 윤이 멋쩍게 대답했다. 현진이 오오, 하고 감탄했다.
“우리 팀 최장신이구만. 촬영할 때 엄청 편하겠네. 결혼은 아직이지?”
“네.”
긴장한 탓인지 대답이 군대식이었다. 정언은 팔짱을 끼며 그런 윤을 주시했다. 현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교양국에서 뭐하다 왔어?”
“교양국 1부《오늘의 요리》팀에 있었습니다.”
다음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윤을 주시했다. 정언은 눈썹을 좁히며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겼다.
《오늘의 요리》
천국 중의 천국으로 이름난 프로그램이었다. 일 적고 야근 없기로는 따를 팀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만약 지금 여기서 한 명을《오늘의 요리》로 보내 준다면, 자신과 재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울 수도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거기로 가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여기로 왔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