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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기업/경영자 스토리 > 국내 기업/경영자
· ISBN : 9791156621324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5-08-1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박정희와 박태준, 왜 위대한 만남인가?
제1장 동행
1968년 만우절에 ‘강철 맹세’가 있었네
박정희가 박태준의 영혼을 건드린 첫 만남
‘진짜 고춧가루 포대’에 담긴 박태준의 ‘매운 청렴’을 박정희가 꿰뚫어보다
박정희가 술로써 박태준을 시험하다
꽃 피는 동백섬에는 봄이 왔건만
태풍의 눈과 같은 편지, <낙화유수>의 그 밤에 지다
박정희와의 동행에 운명을 건 박태준
박정희의 ‘박태준 귀국 환영연’, 그리고 새벽이 오다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털어놓은 속마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면 처자(妻子)를 부탁하려 했어.”
제2장 정치는 싫다니 경제로
박정희, 박태준을 경제 방면으로 보내다
박태준이 속아 박정희도 속다
박정희의 첫 해외 정상회담인 박정희-이케다 회담에는 박태준의 손이 깊었다
30만 톤짜리 울산종합제철 계획을 차관 실패로 무산시킨 박정희의 한
녹색혁명 출발선상에 박정희와 박태준 그리고 이정환이 있었다
포항지역 사방공사와 ‘사방기념공원’에도 박정희와 박태준의 사연이 있다
박정희가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지만 박태준은 “불합리의 종합판 같다”며 거부한다
상공장관을 맡으라는 박정희에게 박태준은 “군정 연장으로 비친다”며 미국 유학을 고집한다
1964년 설날, 박정희는 박태준을 일본 특사로 파견하며 “집 장만하라”는 하사금을 건넨다
일본 정재계의 막후 실세인 양명학 대가 야스오카, 박정희가 보낸 ‘박태준의 비범성’을 알아보다
대한중석을 맡은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맨 먼저 “정부, 여당의 간섭 배제”를 건의한다
박정희는 대한중석을 혁신하는 ‘박태준의 경영’을 주목한다
박정희가 종합제철을 구상할 때 한국에는 ‘대형 고로’ 기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제3장 “나는 고속도로, 임자는 종합제철이야!”
1965년 6월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말한다-“나는 고속도로, 임자는 종합제철이야!”
포항제철 성공에는 분단 비극의 희생자 김철우 박사도 있었네
롯데 신격호, 이후락의 부탁에 종합제철 준비하다 박태준을 만나고는
박정희와 박태준이 합작한 한국 최초의 세계 최고는 챔프 김기수였다
한국정부가 염원한 국제차관단(KISA)을 왜 박태준은 불신했는가?
종합제철은 영일만 어링불로, 박정희와 박태준의 ‘종합제철’ 포항 보내기
박정희는 박태준을 종합제철 책임자로 공표하고, IBRD는 한국에 모욕적인 조건을 내걸고
박정희가 일단 참석하라고 권유해도 박태준은 종합제철 기공식에 불참한다
‘KISA와 기본협정’ 체결 후 박정희가 박태준을 종합제철 책임자로 공식 임명한다
박태준이 박정희와 세 차례 토의해서 ‘주식회사 종합제철’로 출발하다
제4장 절명의 위기를 함께 넘어서다
포항제철이 탄생했으나 KISA는 수상쩍은 계획서를 내놓는다
KISA에 수정안을 제기한 박태준은 영일만에 ‘롬멜하우스’를 짓는다
세계 최대 고아원에 세우는 세계 최고 제철소
은행 빚으로 사원주택 부지를 마련한 박태준, 국회가 시끄러워도 묵묵한 박정희
처음 영일만을 찾아온 박정희가 모래벌판을 바라보며 쓸쓸히 탄식한 까닭은?
KISA가 피츠버그까지 찾아온 박태준에게 “No” 사인을 보낸 밤에
하와이에서 환호한 박태준이 도쿄로 날아가다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에 대한 반박이나 트집은 틀린 것이다
마침내 박정희가 종합제철을 위한 최후 비장의 카드를 빼들다
박정희가 박태준을 위해 중앙정보부장에게 꾸짖은 말, “그 친구 원래 그래. 건드리지 마!”
박태준의 열정이 통산상 오히라의 실눈을 뜨게 만들다
“포철 자금을 합의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박정희가 김학렬에게 엄명했으니
박정희의 종합제철 의지와 ‘일응’을 빼기 위한 박태준의 마라톤
황무지에 내리는 가을비의 섭리가 포철 착공을 앞당겨준다
마침내 박태준이 ‘진정한 착공’ 준비에 돌입하다
제5장 ‘우향우’와 ‘종이마패’의 기적
박태준의 “우향우”를 박정희는 ‘종이마패’로 옹호한다
박태준이 중후판공장부터 짓자 박정희는 정주영에게 조선소를 강권한다
박정희가 “마음대로 써라”며 돌려준 보험 리베이트를 박태준은 교육보국의 밀알로 심는다
정치자금 요구를 거절하면서 “중통령”이라 불러 달라는 박태준
일본과 동등한 조건으로 원료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열연비상을 걸다
“현장의 나는 전쟁터 소대장”이라 외치는 박태준의 철저한 현장제일주의
첫 출선을 준비하며 속을 태우는 박태준과 포철 사내들
애정 어린 음성으로 세 차례나 ‘박태준’을 호명한 박정희
박태준에게 ‘기적’이란 말을 선물하는 박정희
박태준에게 물 먹은 아이젠버그의 첫 음모
박태준에게 내리 세 번 패퇴한 아이젠버그가 다시 꾸민 음모
가택수색을 당한 박태준이 박정희에게 사표를 내는데
제강사고를 극복한 박태준에게 이병철이 찾아오다
부실공사를 폭파한 박태준이 ‘가난뱅이국가’ 딱지도 날려 버리다
정주영의 현대와 박태준의 포철이 벌인 제2제철소 쟁탈전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다
“박태준을 중국으로 수입하면 되겠다”는 덩샤오핑
박태준의 외국손님들을 위해 박정희는 숙소자리까지 피해준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일으킨 이후락에게 재떨이를 날렸다고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털어놓은 밤
박태준의 가슴에 박힌 박정희의 마지막 말, “나는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
홀연 박정희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박태준은 두문불출 후 약속실현을 다짐한다
제6장 화룡점정
박정희와의 약속을 실현한 박태준은 스스로 정계와 포스코 회장직을 떠난다
완전한 신뢰의 아름다운 재회 - 박태준이 박정희의 영전에 올리는 보고
박태준의 국회의원선거 지원 유세에서 ‘침묵의 열변’을 토한 박지만
박태준이 김대중을 박정희 생가로 안내하다
베트남에서 박정희의 빚도 갚고 싶었던 박태준
식민지 배상금, 박정희, 순직 동지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여든네 살의 박태준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못 가게 되는 박태준은…
북한에 제철소를 짓고 싶어 했던 박태준의 소망
박정희와 박태준의 혼령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실 때
부록 박태준이 생의 황혼에 남긴 말들
한일국교정상화 40년과 동북아의 미래
-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
젊은 세대의 시대적 좌표와 엘리트의 길
- 하노이국립대학교 특별강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광복 70년은 분단 70년이다. 분단은 곧 건국의 미완을 뜻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미완의 건국시대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 완성의 대장정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가를 가늠하기 어려운 광복 70년, 그 시련과 영광을 성찰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정치동네, 권력동네의 후진성이다. 민주화 투쟁시대에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했는데, 오늘도 우리는 ‘믿음을 주는 정치동네, 신뢰를 주는 권력동네’에 몹시 목말라한다. 다만, 우리의 갈증을 적셔줄 감로수는 광복 70년의 한 지층에서 솟아나고 있다. 이 책은 마르지 않을 그 감로수를 받아놓은 것이다.
그때(4.19 직후) 상황을 통찰하고 통탄한 장준하가 박정희처럼 5.16을 ‘혁명’이라 불렀다 해도 5.16 그 자체는 쿠데타였다. 그러나 5.16의 장도는 그 귀결이 혁명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굵직하게 형성돼 있다. 5.16은 쿠데타로 출범하여 혁명에 귀결했다고 평가할 경우, ‘귀결이 혁명’이라는 그 속에 박정희의 공(명)이 시대적 실체로 존재한다. 그 공(명)의 뒷면이 과(암)다. 그 과(암)는 ‘독재’라 불린다. 여기서 나는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찍힌 엄중한 질문을 다시 받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독재 없는 혁명이 있을까? 혁명 없는 독재는 있지만, 독재 없는 혁명이 있을 수 있을까? 노동해방의 공산주의혁명에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있어야 한다지 않는가? 이 역사의 한계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맨 처음 돌파할 것인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현재 ‘혁명’이라는 평가가 굵직하게 형성된 박정희의 그 공(명)은 산업, 의식, 안보(국방), 녹색 등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산업혁명은 오천 년 절대빈곤의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확실히 탈바꿈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했다. 그 기적의 저변에는 ‘공돌이’ ‘공순이’라 불린, 광복 70년엔 어느덧 예순 살을 넘어 머리칼이 허옇게 센 노령세대의 피땀이 쌓여 있었다.
의식혁명은 산업화의 정신적 동력이었다. 노예제도와 사농공상과 소중화(小中華) 맹신, 그리고 식민지, 전쟁, 절대빈곤, 부정부패 등이 대대로 조장해온 패배주의, 사대주의, 파벌주의, 그것들이 민족적 정조(情調)처럼 세뇌하고 조장한 체념과 한탄……. 그 어두운 의식구조에다 “우리도 하면 된다” “세계로 나아가자”라는 도전의식과 진취기상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안보혁명은 최초로 자주국방을 기획하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후 류성룡이 피눈물로 쓴 『징비록』에서 그토록 강조한 ‘자강(自彊)의 국가’ 가 그로부터 350년이나 더 지난 뒤에야 국가의 진정한 비전으로 추진되었다. 자주국방, 부국강병 없는 근대 독립국가는 없다.
녹색혁명은 헐벗은 강토를 푸르게 가꾸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여주는 푸른 산들은 박정희 통치시대가 물려준 ‘푸른 혁명’의 푸른 증거이다.
박태준의 공적은 박정희의 혁명이라 불리는 그 공(명) 속에 소중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업혁명에는 종합제철의 대성공이 있다. 의식혁명에는 철저히 추구한 세계일류주의가 있다. 안보혁명에는 세계 최고 제철소뿐 아니라 포항공과대학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방사광 가속기연구소의 바탕에 흐르는 “철강과 과학기술은 국부(國富)와 국방의 원천”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실천이 있다. 1962년 1월 ‘무연탄을 쓰면 자원도 되고 산림녹화도 된다’는 이정환 국립광물지질연구소 소장의 캐치프레이즈는 녹색혁명의 나침반과 같았다. 석탄개발과 십구공탄 보급으로 이어지는 그 앞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안내해간 이가 상공담당 최고위원 박태준이었다. 박정희와 박태준은 그것을 국토녹화의 전략적 정책으로 지목했다.
탄도학 첫 시간. 강의실에 들어서는 박정희 교관을 쳐다본 순간, 박태준은 싸늘한 새벽 공기가 앞문으로 불어 닥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신선한 긴장감으로 돋아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빳빳이 고쳐 앉았다. 깐깐하게 생긴 교관의 작은 체구는 온통 강한 의지로 똘똘 뭉쳐진 것 같았다. 강의실 공기가 삽시간에 팽팽해졌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