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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91156752400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19-05-31
책 소개
목차
잘 알지도 못하면서 _ 해진 이야기
덜 마른 수건 같은 아침 10 / 허언증이라고 - 13 / 뿅, 하고 사라지고 싶은 순간 22 / 발자국을 따라가다 29 / 감자 빵처럼 폭신하고 따뜻한 37 / 손등 위의 나뭇잎 무늬 43 / 젖은 날개를 펴고 48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 _ 동권 이야기
심술 꽃이 피었습니다 54 / 뜻밖의 사고 62 / 세상 밖으로 밀려난 기분 69 / 환상의 짝꿍 75 / 생애 첫 피자를 먹던 날 81 / 일급비밀을 들키다 87
마음속 새 한 마리 _ 선유 이야기
동권이는 좋겠다 96 / 도어록 너머로 104 / 우주가 춤추는 집 110 / 무대 공포증이 생긴 날 115 / 달빛 칵테일 121 / 아빠가 그랬잖아 128 / 날마다 조금씩 135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_ 그리고 나라 이야기
천사표 욕쟁이 142 / 주인공이 되면 행복할까 146 / 세상에 하나뿐인 레시피 152
작가의 말 - 158
리뷰
책속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 사업이 망하면서 해진이는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집은 좁고 눅눅한 반지하 방으로 이사했다. 학교에서는 유일한 친구였던 소윤이가 전학을 간 뒤, 말을 걸어 주는 친구가 없다. 아니, 말을 걸기는커녕 속사정도 모르면서 겉만 보고 비난을 쏟아 놓는 아이들뿐이다. 누구 하나 해진이의 속마음이 어떤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꾹 내리누를 수 있었던 아이들의 말이 유난히 큰 상처로 느껴지던 날, 해진이는 속에 있던 말들을 이제 그만 내뱉고 싶어진다.
소문은 들불처럼 참 빠르게도 퍼졌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5학년 전체에 ‘2반 이해진이 윤나라랑 같이 오디션을 봤다는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내가 아역 배우를 했으며, 나라랑 같은 연예 기획사에 다녔다는 거짓말까지 한 걸로 부풀려졌다. 내가 헬리시움에 사는 척하며 연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윤나라가 거기 살고 있었다는 얘기까지 곁들여졌다.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아이들이 나를 일부러 보러 오기도 했다. 그 아이들 중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허언증에 관심 종자로 몰아붙였다.
누구든 붙들고 그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점점 속이 답답해졌다. 꿀꺽꿀꺽 삼킨 말들이 딱딱한 돌로 변해 목구멍을 꽉 틀어막았다.
〔……〕
“야, 굼벵이 이해진! 이 나물 좀 먹어 주겠니?”
누군가 개그맨 흉내를 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를 굼벵이라고 부르는 아이는 보나 마나 나동권이다. 전에는 동권이가 그렇게 불러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동권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워낙 장난을 잘 치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확 뒤틀렸다. 내가 정말 땅속의 굼벵이가 되어 버린 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굼벵이가 아니야. 너희가 함부로 갖고 놀아도 되는 벌레가 아니라고!’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
동권이는 반 대항 야구 시합에서 지고 난 뒤 심기가 불편하다. 모든 게 다 갑작스럽게 불참을 선언한 선유 때문이다. 불만으로 가득 차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그때, 그만 야구 방망이를 잘못 휘둘러 선유의 팔을 부러뜨리고 만다. 다음 날, 노발대발한 선유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한바탕 난리가 나고, 친구들은 모든 잘못을 동권이 탓으로만 돌리며 모른 척하기에 급급하다. 꼼짝없이 학교 폭력 위원회의 가해자가 된 동권이, 두려움과 배신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선생님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니까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던 게 누구야? 선유 팔을 다치게 한 사람 말이야.”
재서와 만호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동권이요!”
귓불에서부터 서서히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난로 위에 올라앉은 것처럼 온몸이 홧홧해졌다.
“때린 거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럼 바지를 벗겨 보자고 한 건 누구야?”
선생님이 또 물었다. 만호가 내 눈치를 보며 웅얼거렸다.
“도, 동권이가요……. 선유더러 아무래도 여자가 되려다 만 것 같다고 하면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할 말이 너무나 많은데…….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할 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바지를 벗기려고 한 건 내가 아니었어. 여자가 되려다 만 놈이라고 농담한 건 맞지만. 너희도 웃으면서 맞장구쳤잖아. 야구 방망이에 선유가 맞은 것도 순전히 실수였고. 너희는……, 너희는 다 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