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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7783250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8-07-13
책 소개
목차
머리말_웃음꽃빛 변명 5
제1장 솔바람 소리
솔바람 소리 10 / 오후 19 / 게으름뱅이 농부 27 / 낙엽과 운치 32 / 말의 값어치 38 / 생명 44 / 인간미의 외출 51 / 단상 57 / 천사와 악마 63 / 때로는 부러운 개 팔자 69 / 무력증 76 / 아침 밥상 84
제2장 생각의 바다
생각의 바다 92 / 이웃과 가까이 사는 미학 100 / 전정 106 / 글을 쓰는 재미 114 / 무작정 좋아서 121 / 가을 햇볕 126 / 꽃그늘 133 / 짧은 수필 3가지 140
제3장 행복한 눈물
기대불안 148 / 말씀 두 마디의 여운 154 / 명창 안숙선 160 / 백지 166 / 행복한 눈물 174 / 잊다와 잃다 181 / 울타리 187 / 참 고약한 과태료 195
제4장 웃음꽃빛
샘물 204 / 웃음소리 210 / 청석문화론 217 / 명시 두 편 224 / 거울 229 / 꽃병 236 / 도둑이 사는 세상 242 / 생활방식 250 / 웃음꽃빛 258 / 누가 꺾어서 버린 웃음꽃 268 / 그는 왜 그리 급히 하늘나라로 갔을까? 271 / 이상한 일 273 / 슬픔 더 슬픔 275 / 무섭게 짓밟힌 생각 278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내는 신세를 지면 보답해야 마음이 편안하단다. 집에서 호박죽을 끓이는 노하우가 있다. 늙은 호박과 삶은 팥과 찹쌀 옹심이를 빚어서 넣고 끓이면 멋쟁이 호박죽이 된다. 할머니 스타일의 호의는 승용차를 얻어 탄 이웃은 물론 다른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데 한결같이 맛있다고 했다. 하찮은 음식도 나누면 인정이 따라서 오가는 법이다. 인정의 무게는 전자계산기를 두들겨 봐야 산출할 수 없다. 현대사회라는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생활 속에서 인심은 설 땅을 찾기 힘든 게 고전(古典)일망정 우리 겨레의 체질이면서 긍지였는데 너무 망가져 버려서 아쉽다. 지금은 서구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보다도 더 많이, 더 잘 간직하고 있는 걸 본다. -이웃과 가까이 사는 미학 중에서
나는 더러 집필을 하면 한밤이 지나더라도 초고(草稿)는 얼기설기 엮어 놓고 보려고 매달린다. 아내는 힘들다고 만류하지만 재미있어서 하는 일은 힘든 줄 모른다. 자정을 넘기더라도 붙잡고 씨름을 한다. 부담이 없고 차분히 내 글을 쓰는 시간은 즐기는 기회가 된다. 그건 언어표출(言語表出)이라는 카타르시스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는지도 모른다. 눈도 쉬어야 하고, 팔 운동도 필요한데 죄다 잊어버리고 만다.
워드를 만지면서는 간간이 눈을 쉬어야 한다는 말도 깜박 잊어버린다. 글이 잘 풀리면 재미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지만 잘 안 써지는 때에도 할 일을 숙제처럼 여기고 그냥 매달리는데 그걸 어거지로 대체(對替)한다. 밤이 깊어 가는데 책상 앞에서 일어서면 무릎도 아프고 목덜미가 뻣뻣하다. 두들겨 풀어주는 척하면 그만이다. 고통 따위는 별로 상관하지 않고 살았다. -글을 쓰는 재미 중에서
농작물은 아니지만 가을이 오면 가장 기대하는 수확이 있었다. 지난해, 늦가을, 아내는 북한산 노적사에 가더니 들국화 한 줌을 따왔다. 향기가 집안에 가득 번졌다. 들국화를 처음 본 것은 아닌데 매력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산속 텃밭 주변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들국화가 한 포기도 없었다.
“들국화가 없는 산은 가을 향기가 없는 산인데, 참 딱하구나.”
우리 부부는 들국화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원래 산을 깎고 밀어서 집 지을 땅을 만든 동네여서 또 집을 지을 터 한쪽 구석에 비척거리는 들국화가 숨어 있었다. 그걸 눈여겨봐 두었다. 거기서는 잘 살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듬해 봄, 우리는 들국화를 옮겨 심었다. 아내가 2포기, 그리고 내가 여기저기서 쓰레기 줍듯 8포기를 캐다가 밭 가에 심었다. 다년생 숙근초(宿根草)이므로 뿌리가 강해서 잘 자랐다. 꽃이 핀 시기를 맞추어 가 봤더니 들국화 향기가 산을 차지한 듯 번졌다. 귀신처럼 민감한 벌떼와 나비가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는 꽃 수확을 목적으로 심었으니 할 수 없이 꽃을 땄다. 그러면서도 벌과 나비가 미안해서 마치 감나무 꼭대기에 남기는 까치밥처럼 상당한 꽃을 남겨놓았다. -가을 햇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