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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9412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1-04-20
목차
작가의 말
1. 매립지
2. 보리밭
3. 기도의 끝
4. 영원한 선물
5. 원두막
6. 죽음의 순서
7. 무심천
8. 피할 수 없는 선택
9. 기도하는 여인
10. 고향의 달빛
저자소개
책속에서
1. 매립지
설날 아침이다.
차례를 지낸 후 강주수는 매립지 해안도로 끝에 섰다. 돝섬에서 파도가 밀려온다. 밀려 온 파도가 방파제에 부닥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물보라를 맞으며 강주수는 긴 숨을 몰아쉬었다. 돝섬이 다가올 듯 파도에 흔들린다. 어젯밤 일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강사장, 나다. 서대길이다. 니 돈은 꼭 갚을게, 정말이다. 니 돈은 내가 꼭 갚을 끼다.”
(1)
서대길은 강주수와 동업자다.
엄밀하게 말하면 직원에서 억지로 동업자가 되었다.
육 년 전, 강주수는 댓거리 매립지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화공약품상을 차렸다. 상호는 강청화공이다. 자식 둘을 돌보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서툰 장사 실력에도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강주수는 기대만큼 수익을 남기지 못했다. 장부상으로 흑자인데도 월말이 되면 집으로 가져갈 돈이 없다. 근처 화공업계에서는 장사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나 강주수는 어음이나 미수금의 생리도 잘 몰랐다.
매립지에는 해안도로가 완성되기도 전에 빌딩들이 들어섰다. 3년이 못 되어 강청화공 건물 옆 빈터도 건물로 채워졌다. 강청화공 사무실도 식당과 여관 등으로 둘러싸인 번화가가 되었다. 화공약품 상점 위치로는 어색했다. 강주수는 사무실 자리를 바닷가 쪽으로 옮겼다. 건물이 살짝 기운 일 층짜리 복덕방이다. 커다란 ‘복덕방’ 간판은 두 개나 붙어있다. 복덕방 주위에는 무허가 자동차 수리점 두 곳과 빈터가 아직 남아있다.
2. 보리밭
18년 만에 추위가 온다는 11월 중순의 밤이다.
“논산 훈련소 가는 길은 알고 있나?”
준명이 찬바람을 피하듯 얼굴을 돌리며 묻는다. 주수가 취기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대전 시외버스 주차장에 가면 논산 훈련소 가는 사람, 머리 빡빡 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단다.”
준명이 걱정되는 듯 주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날씨가 많이 춥다!”
두 사람과 반 팔 간격으로 떨어져 있던 서옥과 선분도 주수의 얼굴을 바라본다. 주수는 대답이 없다. 주수는 전투경찰에 지원 입대한다. 마을에서 같이 가는 또래가 없다. 네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길을 따라 마주치는 바람이 매섭다.
(1)
준명, 주수, 서옥, 선분은 남해초등학교 동창생이다.
네 사람은 오늘 주수의 입대 환송연을 위하여 모였다. 모두 심천리에 산다.
심천리는 남해대교에서 읍으로 가는 마지막 마을이다.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에서 읍까지는 사십 리 길이다. 읍에서 심천리까지는 채 오 리도 안 된다. 심천리는 세대수가 이백호가 넘는다. 일 년 내내 동네에 이바지 없는 날이 없다. 마을은 심천내를 따라 망운산 아래에서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바다 건너에는 창선도가 손에 잡힐 듯 자리했다. 읍으로 가는 큰길에는 심천교가 있고 바닷가 옆 마을로 이어지는 작은 길가에는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네 사람은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천집’을 뒤돌아봤다. ‘사천집’의 간판 위로 닭백숙을 찌는 가마솥의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른다. ‘사천집’은 읍 입구 유림동 고갯마루의 닭백숙집이다. 네 사람이 초등학교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