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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8293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0-04-28
목차
작가의 말
새천년 아파트
비브리오 패혈증
국제 사기꾼
후진국
설비보호제
신(神)은 말하지 않는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새천년 아파트
*1
서기 2030년 봄,
부산 영도 청학동의 새천년 아파트에 무서운 소문이 나돌았다.
-우리 아파트에 40년 살면 죽는다.-
새천년 아파트는 지은 지 39년째다.
청학동 옛 버스 종점 위 산비탈에 위치한 새천년 아파트는 세 동이 요철형으로 지어졌다. 가구 수는 270세대가 15층 건물 3동에 나뉘어있다. 한 세대의 평수는 33평으로 똑같다. 창문을 열면 어느 집이든 바다가 바라보인다.
-우리 아파트에 40년 살면 죽는다.-
노인회장은 아내의 귀띔으로 이 소문을 들었다. 아내의 말을 괜한 소리라고 털어버리려 해도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노인회장은 아파트 관리소장과 운영위원장에게 이 사실을 물어봤다. 두 사람도 소문을 들었다고 했지만 진원지는 알지 못했다.
아내는 이 소문을 101동 강 할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강 할멈도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내는 강 할멈과 자주 만난다. 강 할멈은 목소리가 강하고 아파트 일에 모르는 게 없다. 한마디로 아파트 스피커다. 그래도 성격은 올곧은 면이 있다.
노인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다음 월례회 때 강 할멈을 만나면 괴소문에 대해서 물을 것이다. 모른다고 하면 그런 것도 모르냐면서 닦달할 것이다. 노인회장은 돋보기를 쓰고 휴대폰을 들었다.
-40년 된 아파트-
-40년 된 아파트 주민 죽음-
검색 제목을 정한 노인회장은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40년 된 아파트’ 검색창에는 죄다 아파트 리모델링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 글이 헛웃음을 나오게 한다.
‘40년 된 아파트에 투자하세요. 묻어 두시면 돈이 됩니다.’
‘40년 된 아파트 주민 죽음’의 검색창은 더욱 재미없다.
‘죽음에 대한 답변은 역시 죽음이다.’
검색창의 끝은 결국 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돈 이야기이다.
*비브리오 패혈증
*1
괴담 조사반 두 사람은 이 주일 동안 스무 집을 방문 조사하였다.
그 중 네 집은 사람이 없어 조사하지 못하였다. 이국형이 노인회장에게 중간 결과를 설명했다.
“괴담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돗물만 먹는 집에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네 집 중 세 집이 혼자였고 한 집은 할아버지가 아파요.”
이국형의 보고를 들은 노인회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 할멈의 말처럼 수돗물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노인회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한동안 바라봤다.
허태식과 이국형은 조사하지 않은 나머지 열 집을 다음 주에 조사하기로 계획했지만 허태식이 처갓집에 간다는 말에 괴담 조사를 일주일 미루기로 했다. 조사를 연기하는 동안 변수가 있으면 서로 연락하여 일정을 조절하기로 약속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허태식의 처갓집은 경남 남해군 서면이다.
처갓집 마을에서 바라보면 한려수도의 끝자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호수 같은 바다에는 커다란 유조선이 걸어가듯 지나간다. 바다로 이어진 길 아래 비탈진 밭에는 고구마 넝쿨이 유조선보다 더 길게 뻗어 있다. 석양이 하루의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지면 여수 오동도의 등대불이 오늘도 잊지 않고 반짝인다.
결혼 초, 허태식이 저녁에 바라 본 여수 앞바다의 등대불은 이제 옛날처럼 빛나고 반짝이지 않는다. 여수 시가지 야경과 광양만 공업단지의 불빛이 산을 넘어 섬진강까지 닿아 불야성을 이룬 탓이다. 그래도 유리알 같은 불빛을 달고, 어슬렁거리듯 밤바다를 지나가는 커다란 유조선이 항구를 향하여 울리는 뱃고동의 메아리는 언제나 가슴을 벅차게 흔든다.
*후진국
*1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다.’
박 노인의 말을 읊조리며 이국형이 허태식의 팔을 잡아끈다. 두 사람은 상가 발코니에 마주 앉았다. 이국형이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말에 흥분하여 젊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이국형이 이곳에 오기 전 아파트 운영위원장을 하면서 경험한 잊히지 않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때는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아파트 운영위원장에 선출된 이국형은 그날 밤에 임원들을 지명해야 했다. 운영위원회의의 통상적 절차였다. 그러나 동 대표 개개인의 능력을 알 수 없었다. 동 대표 회의라는 게 한 달에 한 번 두어 시간 만나서 안건 토의하고 헤어진다. 불참하는 동 대표도 있다. 특히 여자 동 대표들은 더욱 모른다. 이국형은 동 대표 활동을 겨우 이 년 반 했다.
이국형은 운영위원장 선거 기간 목소리가 크고 의견이 분명한 동 대표를 총무이사로 지명했다. 나이는 오십 초반으로 이국형보다 많았으며 인상도 괜찮았다. 이국형이 개인적으로 만난 일은 없다. 직장에서 노동조합 일을 한다고 들었다.
이국형이 위원장 임무를 육 개월 쯤 수행한 날이다.
퇴근 무렵 총무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따르릉-
전화기를 귀에 대기도 전에 총무이사의 목소리가 달려들었다.
“위원장님, 바쁘십니까? 오늘 제가 귀한 분과 함께 있습니다. 위원장님, 꼭 오셔야겠습니다.”
이국형은 달갑지 않았지만 승낙을 표했다. 총무이사는 다음 운영위원장 자리를 탐하는 예비 위원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