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1306056
· 쪽수 : 1488쪽
· 출판일 : 2017-04-28
책 소개
목차
1권
프롤로그
1. 에스틴이 되다
2. 에스텔라가 되다
3. 콘스탄체
4. 약혼날 밤
5. 티소엔, 참전
6. 숙련된 기사는 버터나이프로 모기 다리를 벤다고 한다
7. 황후궁(1)
외전 1. 미소년 기사
2권
7. 황후궁(2)
8. 숲의 팽창
9. 설렘
10. 마녀의 씨앗
11. 에스틴과 에스텔라
12. 전초전
외전 2. 리스칸의 딸
3권
13. 대관식
14. 마녀 전쟁
15. 성목의 숲
16. 에스텔라
17. 성검의 주인
외전 3. 3년 후
외전 4. 코르셋과 가죽 바지
외전 5. 감기
외전 6. 기사
외전 7. Ever after
저자소개
책속에서
1권
“5년 후에 그게 무엇이든 자네 꿈을 이뤄 주겠네.”
“죄송하지만 제 꿈은 치안대 기사로 월급 도둑질을 하면서 20년 근속하다가 퇴직해서 연금을 받으며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는 겁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물 없이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천수를 다하는 거고요.”
“…….”
클레오르가 잠시 말을 잃었다.
출세, 작위, 명성, 보물을 바란다면 얼마든지 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사안일한 월급 도둑질과 장수라면 클레오르가 줄 수 있는 것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자네에게는 향상심이 없나? 가문을 재건하고 싶다든가.”
“없습니다. 안전제일주의라서요.”
“게으름뱅이로군.”
에스텔라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출셋길을 욕망하게 하고 싶으면 진짜 남자로 만들어 주든가.
클레오르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숙식 제공 매월 3백만 골드. 피복비는 빠지겠지만, 드레스와 보석을 되팔면 꽤 다시 건질 수 있을 거야. 어때?”
에스텔라는 조금 혹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거 월급이 아니라 판공비 아닙니까? 어차피 제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요.”
“이월시키지 않고 매달 현금으로 전액 지급하고, 사용처는 전혀 묻지 않겠네.”
“…….”
“5년 계약으로 어떤가? 50만 골드씩만 저축해도 연 6백만이야. 5년이면 3천만이군. 거기에 보석이 고스란히 자네 손에 남겠지. 이혼할 때에 퇴직금 조로 위자료를 지급하지. 모나한 성은 어때?”
모나한 성은 옛 아르투르 후작령에 있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에스텔라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공식적으로 황후의 가문이 될 테니 당연히 작위도 따라갈 거야. 5년 후에 에스텔라를 다시 야반도주한 것으로 하든가, 죽은 것으로 한 후에 자네 인생을 구가해도 좋지. 어때? 5년 후에 모나한 성에서 3천만 골드를 가지고 보내는 여생은?”
평민으로 성장해서 용병을 하다가 황실로 돌아왔다더니, 소시민 꾀는 법을 알았다.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예나 출세를 조건으로 내세웠다면 에스텔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3천만 골드와 작위를 가지고 알펜슈타인에서 가장 이름난 휴양지에서 보내는 여생이라니 진짜 끝내줬다. 5년 후에도 에스텔라는 겨우 스물여덟 살이고, 그 나이에라면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에스틴으로서도, 에스텔라로서도 살아갈 수 있다.
“제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위험수당이 포함된 거지. 내가 5년째 즉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해. 황제가 되는 데 까짓 3천만 골드에 작은 성 하나쯤이야.”
클레오르는 느긋하게 말하면서 다리를 꼬았다.
“게다가 내 약혼녀가 되는 순간부터 알비나 황후의 대적이 되는 건데.”
“사교계에서 황후 폐하를 쫓아내야 합니까?”
에스텔라의 질문이 다분히 긍정 쪽으로 기울었다.
“거기까지는 기대 안 해. 그렇지만 맞서서 버텨 내기는 해야겠지.”
버티기만 하는 거라면 괜찮았다. 에스틴이 되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으나 그녀는 신경줄이 굵은 편이었다. 클레오르가 고민하는 그녀에게 추격타를 날렸다.
“그거 알고 있나?”
“뭘 말입니까?”
“레오폴드는 황태자궁의 보조 요리사였다네.”
에스텔라는 평범한 정도로 똑똑했다. 그 말이 곧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황궁 요리장은 훨씬 솜씨가 훌륭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레오폴드한테 좀 미안하지. 그만큼 솜씨 있는 요리장이 있으니 자네의 전속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야.”
2권
“약혼한 상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보통 데이트라고 하지 않아?”
“전하와 저의 경우 업무상 미팅인 거 아닌가요?”
“명칭이야 아무려면 어때? 오늘 별달리 바쁜 일은 없지?”
“없어요.”
“만찬 약속은?”
“그것도 없어요. 혹시 오늘 만찬에 참석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아니야. 혹시 저녁에 갈 곳이 있으면 나중으로 미루려고.”
“어디 멀리 가요?”
“응.”
“어디 가는데요?”
“그건 비밀.”
클레오르의 시선이 살짝 에스텔라의 옷차림새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에스텔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에게 성적인 의도가 있든 없든 스캔당하는 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음.”
클레오르가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생각해? 상대를 즐겁게 해 주는 것과 좋은 일로 놀래 주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좋을까?”
“그거, 제가 상대인데 저한테 상담하시는 거예요?”
“똑같은 모양의 선물 상자 두 개를 놓고 어느 쪽을 골라 가질 거냐고 묻는 질문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해. 그대는 안전지향주의이니까 전자일까?”
“전하를 만난 뒤로 도박에 취미가 생긴 것 같으니 후자로 할게요.”
에스텔라는 평이하게 대답했다. 별로 기대 없이 하는 말인데 클레오르가 조금 실망했다.
“뭐어, 놀래 주는 것도 좋으니까.”
“고르라고 하시고서 왜 실망을 하세요?”
에스텔라가 하녀에게 숄을 가져오라고 하고 로비에서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마차가 준비되었다. 그녀는 클레오르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오르면서 물었다.
“멀리 가요?”
“그렇게 멀진 않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시외까지 가나 봐요? 선물 주는 퍼포먼스를 하기에는 좀 시간 낭비 아니에요?”
“그대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건데 왜 그게 시간 낭비야? 그리고 퍼포먼스 아니야. 퍼포먼스로 준 건 스윗 다이아몬드밖에 없는데.”
“아니에요? 전하께서 보석을 제게 주실 때마다 보석상을 통해서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 같던데요.”
쓰지도 못하고 쌓여 가는 보석들을 생각하며 에스텔라는 대답했다. 클레오르가 토라진 얼굴이 되었다.
“그건 내가 의도한 건 아니야. 진짜로 소문을 퍼뜨리는 게 목적이면 그대가 어디 티파티에라도 참석해 있을 때에 보냈겠지. 사람 스무 명쯤 파묻을 만큼의 장미랑 같이.”
“체면도 서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팔면 돈도 되고?”
“돈이 많으면 굳이 팔 필요도 없죠. 예쁘니까 잘 간직할게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클레오르는 얼굴을 펴지 않았다. 결국 마음에 든다거나 소중하게 생각해 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후자까지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왜 삐쳐요?”
“안 삐쳤어.”
“그러면 그 보석을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건데요?”
“딱히 뭘 바란다는 건 아니야. 직접 고른 게 반 넘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클레오르가 서운함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투덜거렸다.
3권
긴장을 억누르고 에스텔라는 프리스든 남작이 내미는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티소엔이 앞장서며 문을 열고 하녀들이 긴 드레스 자락을 챙겼다. 들러리인 영애들이 방울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뒤따랐다. 저택 앞에 준비된 것은 백색의 커다란 마차였다.
에스텔라는 그 앞에 선 채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배우던 어린 나이에는 이런 마차를 타는 것을 꿈으로 가졌던 때도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호박마차를 타고 왕자님과 결혼하기 위해 성으로 가는 꿈 말이다.
그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에스텔라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마도 평생에 한 번일 이 행사에 부디 아무 일도 없길. 그녀는 여태 제대로 믿어 본 적도 없는 세베르이나의 축복을 빌어 보았다.
“아가씨, 저어.”
그때 낯이 익지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 본 적이 없는 하녀 하나가 멀찍이에서 말을 걸었다.
에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니?”
“제가, 제가 다음 달에 결혼을 하는데, 아가씨의 축복을 나눠 주실 수 없을까요?”
아하, 그런 거라면 좋다. 얼핏 날카롭게 대응하려던 직속하녀들의 태도도, 그 무례함에 놀란 영애들의 태도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결혼은 모든 여자들을 공감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녀들의 인생에서 전부였으므로 그 불안감도, 무게도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텔라는 알리시아에게 말했다.
“리샤, 네 꽃을 한 송이 받을 수 있을까?”
“네, 언니.”
알리시아가 들고 있던 작은 흰 장미 다발에서 꽃 한 송이를 뽑아 에스텔라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하녀에게 꽃을 내밀었다.
“부케는 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안 되니까 이걸로 만족해 줘.”
하녀가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에스텔라는 그 손이 떨리는 것을 먼저 보았다. 다음 순간 하녀의 소맷자락에서 짧은 칼이 튀어나왔다.
티소엔과 에스텔라는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에스텔라가 몸을 빼면서 하녀의 손목을 틀어잡고 티소엔의 검집이 그녀의 턱을 가로막아 뒤로 끌어냈다.
“헉!”
“꺄아악!”
“아가씨!”
“피! 피가! 세상에!”
비명이 메아리쳤다. 에스텔라는 손을 내저어 괜찮다고 신호했다.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러나 순백색 웨딩드레스의 옆구리가 싯붉게 물들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