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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1575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19-03-15
책 소개
목차
10. 상실된 기억 199
10.5 아모르(amor) 401
11. 건국제 Ⅱ (1) 432
저자소개
책속에서
헤르난의 그분이 누구일지 짐작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내가 아닌가? 눈을 감았다.
“본래 미끼로 쓰려 해 놓고 누군지 모를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로…… 나를 살렸다고 하는 건가요?”
“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다쳤겠지요.”
그가 말하는 저들이란 조금 전 괴상한 젤라틴을 이끌던 회색 법의 남자들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이 상황에…… 묻는 것도 우습지만 물어도 될까요?”
“네.”
그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더는 어두운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분을 사랑하시나요?”
“아니요.”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을 가진 그가, 망설임 없이 모든 걸 드러내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꽃같이 웃었다.
“그분은 나의 성지聖地입니다.”
나는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일 것이 분명했다.
“내 세상에 달과 같은 그분을 경애합니다.”
기울어진 석양 속 누군가에 대해 말을 하는 얼굴은 행복을 담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전부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미소한 헤르난의 낯을 보았다.
“경애……?”
“네.”
그는 대꾸를 바란 게 아니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나는 본래 사람을 싫어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모두 같아요. 그런데 당신은.”
가슴이 울렁거렸고 속이 아픈 것처럼 더부룩했다.
“이렇게 손을 잡아도 가까이 있어도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분과 비슷해서 끌렸습니다.”
그의 눈동자가 미지근한 온기를 띠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꼭 그냥 지나쳤던 진열장의 신발과 비슷한 대체품을 찾은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까.
“모든 것이 다른데도 닮았습니다.”
소름이 돋았다.
“미안하지만 도망은 포기해요.”
보랏빛 아지랑이를 품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느릿하게 깜빡이면서 홰홰 돌았다. 야생에서 마주친 짐승의 안광 같았다. 나는 얼른 뒤로 돌았다. 내딛는 것보다 잡히는 것이 빨랐다.
“놓치지 않을 거니까.”
그가 대수롭지 않게 손으로 나를 당긴다. 그의 얼굴을 앞둔 순간 그가 부드럽게 미소했다. 지는 해가 만들어 낸 그림자가 하나로 겹쳤다.
“그분 외의 사람에게 호의를 느껴 본 적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싫진 않습니다.”
난 그의 가슴을 꾹꾹 밀어내며 소리쳤다.
“다, 닮은 것 따위에 혹하지 말아요! 그분을 경애한다며!”
“아니요. 내겐 중요합니다. 처음으로 그분이 아닌 사람에게 심장이 뛰고 있어요.”
방만한 차림의 사내가 날것을 드러내며 고개를 기울인다.
“놓치기 싫습니다.”
그가 내 턱을 들어 올렸다.
“당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우아한 빛이 감도는 하늘색 눈동자가 가늘게 접힌다. 어둠 속에서 짐승을 마주한 듯 새파란 안광은 푸른얼음 같다. 홍채로 언뜻 보라색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더 높였다.
“우, 웃기는 소리 하지 말아요. 그 사람을 사랑하잖아!”
“사랑? 사랑 따위일 리 없지 않습니까.”
그의 얼굴이 내려앉은 곳은 입술이 아닌 더 위. 부드러운 머리칼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얼마나 하찮고 순간뿐인 감정인데.”
서늘하고 낯선 감각에 놀라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고개를 든 헤르난이 날 가둔 채 속삭였다.
“하지만 당신을 갖고 싶은 욕심은 사랑이 아닙니까? 사랑은 욕망하는 것이니까.”
그가 내 손목에 입을 맞췄다.
“그러니 오히려, ‘사랑’은 이쪽이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