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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252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제2장. 라슈발렌 협회
제3장. 동맹
제4장. 시선
제5장. 가짜 성인
제6장. 신을 잊은 대지
제7장. 피조물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레아를 방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아리스는 가벼운 타박 아닌 타박을 들었다.
“너는 네 별명이 흑익이면서 백익 니콜라우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면 어떡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왜 알아야 하는데?”
“같은 데르카이드잖아. 최초의 데르카이드인데 상식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마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 둘의 별명이 서로 대비되는 흑과 백. 재미있잖아?”
“그건 사람들이 제멋대로 붙인 거잖아. 나는 남들에게 흑익이라 불러 달라고 그런 적이 없고, 그건 니콜라우스도 마찬가지거든.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너도 니콜라우스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래?”
니콜라우스에 관한 주제에 심드렁한 아리스에게 미레아는 혀를 쯧쯧 찼다.
“뭘 모르는 소리. 나는 니콜라우스에 대해 좀 아는 편이라고. 누구와는 다르게 호기심이 많아서 관련 기록들을 들춰 봤거든. 그 사람이랑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면 나름 재미있어. 이건 음모론이긴 하지만 그가 100여 년 전 자취를 감춘 이후 아직 살아 있다는 말도 있어.”
“니콜라우스의 행적이 끊긴 게 그가 28살일 무렵인데 그 이후 장수했다면 당연히 살아 있을 수 있지.”
“아냐, 내가 말한 건 하나도 늙지 않은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살아 있다는 뜻이었어.”
“그런 건 대체 어디서 주워들었어?”
“우리 아빠한테.”
돌아가신 미레아의 아버지를 음모론자라며 흉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리스는 그냥 흘려들으려 그랬다. 하지만 미레아는 새초롬한 얼굴로 그를 흘겨보았다.
“지금 내 말 하나도 안 믿지?”
“데르카이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 그런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
“방금 그 말 엄청 거만하게 들리는데.”
“반어법이었어.”
작게 한숨 쉰 아리스는 말을 이었다.
“날 봐라. 하고 싶은 거 다 한 사람처럼 보여? 데르카이드라 해서 뭐든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너, 하고 싶은 거 없잖아.”
갑자기 정곡을 찔린 아리스는 말없이 미레아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이미 미레아의 방문 앞에 도착했지만 맞붙어서 입씨름하기 바빴다.
“그렇게 봐도 하나도 안 무서워.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마이련 시골 촌구석에 박혀 있던 거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세피로스 밑으로 들어온 거잖아.”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아리스는 반발심이 들었다.
“아니지. 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면모를 유지하려면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안 하는 거든!”
“아, 그래? 하고 싶은 게 뭔데?”
“세계 멸망.”
미레아는 얼마든지 농담을 받아 줄 준비가 되었지만, 아리스는 제법 진지한 목소리였다.
“내가 세계를 멸망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억울하지라도 않게 진짜 멸망시키고 말지.”
아무래도 진담인 것 같은 아리스의 말에 미레아는 하하 웃다가 정색했다.
“미친놈아, 그거 아니야.”
억울함에 사로잡혀 있던 아리스도 정색했다.
“그래서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았잖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망해 가고 있는걸. 그런데 나를 잡아 죽일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야? 나 혼자 엿 될 바에, 물귀신처럼 다른 놈들까지 엿 먹이는 쪽을 선택할래.”
“내가 음모론자라면 넌 종말론자야.”
미레아는 관자놀이가 아파 왔다.
“행여라도 실행에 옮길 생각이라면 미리 말해 주길 바라. 나는 라슈발렌의 일원으로 너를 막아야 하는 의무가 있거든.”
“네 손에 죽는다면 영광이지.”
싱글거리며 대답한 아리스 덕에 미레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긴 숨을 토해 내었다.
“얼른 방에 돌아가서 잠이나 자라.”
그 말에 아리스는 손으로 미레아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가 한 대 맞을 뻔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