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판소리 중고제

제1장 판소리의 역사 13
1. 판소리의 원류, 충청지역 13
2. 판소리 이야기의 전승과 지역 공간 16
3. 잃어버린 소리와 지역 기반 27
4. 판소리의 발달과 충청 지역 32
제2장 중고제 판소리란 41
1. 중고제의 뜻과 지역 범위 41
2. 중고제의 전승과 연구 과제 44
제3장 중고제 판소리 명창과 지역성 51
1. 충청 지역 판소리의 지향과 특성 51
2. 충청지역 명창과 지역 문화 63
3. 중고제 소리의 특징 74
4. 중고제 판소리의 지형도와 역사성 81
제4장 중고제 판소리와 지역문화콘텐츠 93
1. 홍성 94
2. 서산 112
3. 서천 119
4. 공주 123
5. 논산 129
6. 충청지역 판소리 문화콘텐츠화를 위한 과제 130
제5장 중고제의 전승과 판소리의 미래 135
참고자료 143

[ 저자서문 ]

옛날 사람들의 삶을 반추해보면 그들이 겪었을 여러 어려움들은 지금의 삶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의료, 과학, 인권, 삶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을 세상에서, 오로지 기대고 의지할 것은 사람이라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날마다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현실의 질곡을 따져 물어보았을 것이다. 판소리는 바로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태어난 18세기의 콘텐츠라 할 만하다. 어떠한 작품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멀지 않고, 어떠한 작품이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문제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탄생에는 세계의 변화상이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오랜 전쟁과 차별을 겪으면서 경험한 ‘삶의 진실’에 점차 눈을 뜨고 모두들 각성했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연구한 지 30여년이 되었다. 처음 감동을 받았던 첫 소리 무대가 박동진 명창의 공연이었다. 수궁가 결말을 불렀던 그 무대 아래서 나는 토끼가 살아났다고 박수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토끼는 또다시 그물에 걸리고, 다시 독수리에게 잡히는 수난을 반복해 나갔던 것이다. 실컷 웃고는 돌아왔지만, 그 뒤는 쓸쓸했다. 우리 삶이 곧 토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동진 명창은 바로 이러한 우리 삶을 너무도 재미있는 한 편의 드라마로 풀어내었다. 스무살적 만났던 대명창의 ‘수궁가’는 그렇게 나를 판소리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멀리 있는 화려한 불빛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처럼 지난 시기 나의 연구는 멀리 전라도나 경상도 지역을 헤매고 있었고, 여러 여성 명창들을 따라 가고 있었다. <조선창극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결성의 최선달은 그저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시작은 어디인가. 왜 그들은 이렇게 위대한 장르를 탄생시켰는가를 따져묻기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흔적도 희미한 중고제는 더더욱 그러했다. 어두운 밤 등불도 없이 길을 걷는 막막함만이 있었다.
어느날 충청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내게 늘 미루어둔 숙제같았던 중고제 연구를 막 시작했을 때 ‘판소리의 역사’가 다시 쓰여질 것을 예감했다. 기존의 이론과는 다른 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명창이 양반출신이라는 점, 중고제는 초기 명창들의 개성있는 역량들이 반영되던 자유분방한 소리라는 점, 무엇보다 우리 충청지역에 살아있는 판소리의 시작이 있고 위대한 명인, 명창들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여러 지역들을 돌아보며, 문헌상의 중고제 흔적들을 발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연구의 길을 떠나보니, 충남지역의 명창 관련 조사는 너무 늦었다는 자책을 할 만큼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새로운 자료도 계속 나왔다. 결성농요보존회에서 판소리 최초의 명창 최선달 최예운을 찾았을 때, 나는 정말 그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내 발 아래 진주조개는 모른 채, 멀리 있는 새만 쫓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진주를 캐기 위한 과정은 여전히 순탄치 않다. 모든 사료를 뒤지고, 현장을 다니며, 깨어진 기왓장을 맞추어야 하는 힘든 과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중고제 연구는 이제 시작이고 몇몇 학자들이 외롭게 연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경기, 충청 지역에서 판소리 명창의 탄생과 활동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우리는 제대로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로, 언젠가는 판소리 생성의 역사가 밝혀질 것이다. 여러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충청지역의 판소리를 연구해 나갈 때 우리 안의 보물들이 하나씩 그 베일을 벗으리라 기대해본다.
이날치밴드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18세기 판소리 역시, 당대에는 매우 힙했던 장르였다. 새로운 발성과 창법, 실감나는 이야기 등이 결합된 오감을 만족시키던 공연예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광대와 청중이 서로를 추어가며 깊이 빠져들어, 밤을 새워가며 소리를 들었던 감동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충청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위대한 판소리의 성지는 바로 충청도인 것이다. 중고제는 판소리의 한 유파로 인식되고 있지만 초기 판소리의 예능은 가무악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판소리 명창이 시조나 가사, 장고, 북, 가야금, 춤 등 재인층의 모든 예능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중고제 명창들의 집안에서 가무악의 명인들이 모두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충청의 소리였던 중고제는 그래서 판소리 뿐만이 아니라 가무악 전체의 스타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중고제의 예술을 밝히는 것은 결국 충청권의 전통예술을 밝히는 것과 같다. 판소리의 원류가 충청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큰 자랑이자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더욱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서 최선달 이후로 근대에 이르는 200여 년의 역사가 선명히 밝혀지도록 해야 하겠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작에 불과하다.

충청지역에서 전승되던 판소리의 유파인 중고제의 역사성과 개념, 명창과 유적, 미래 발전을 위한 전략 등을 살핌으로써 충청지역의 전통예술은 물론 판소리의 생성과 역사를 새롭게 고찰한 의의가 있다.
그간 자료의 부족, 전승의 미약 등으로 연구가 소홀했던 중고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현장조사와 실증을 더함으로써 향후 중고제 관련 연구를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