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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693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10-09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허공의 깊이
나는 없다 · 13
시 · 14
사랑의 무게 · 15
지는 꽃 주우며 · 16
상사화 지기 전에 · 17
전어구이 · 18
허공의 깊이 · 20
짬뽕밥 · 22
파밭 연가 · 24
영원 · 26
사랑은 뜨거운 게 아니더군 · 27
나팔꽃 · 28
장대비 · 29
일주문 앞에서 · 30
엽서 한 장 · 32
2부 수평적 폭력
전등사 가는 길 · 35
서민이 서민을 죽인다는군요 · 36
솔밭에서 · 38
수평적 폭력 · 40
저녁놀 · 41
복수에 대하여 · 42
라디오 노인 · 44
바빌론 강가에서 · 45
새벽 전화 · 46
서민적 사랑 · 47
그녀는 웃고 나는 울고 · 48
공장 · 49
싸움 · 50
봄은 그 자리다 · 51
진통제 · 52
3부 죽은 혁명의 사회
안면도에서 · 57
완패 · 58
나의 강강술래 · 60
어느 가을날의 편지 · 62
섞어찌개 · 65
죽은 혁명의 사회 · 66
막춤 · 68
민들레 꽃씨 · 70
박하사탕 · 72
임금님은 악귀 · 74
궁평항에서 · 77
사다리 · 78
김순복 씨네 채소는 묵직해 · 80
전집에서 · 81
공갈빵 · 82
4부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유년의 접시꽃 · 87
죽음의 축제 · 88
거짓말을 함박눈처럼 포근하게 · 90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92
내 친구 원효 · 93
물만두 · 94
비처럼 내리는 과거라는 돌 · 96
복권 · 98
유모차 탄 강아지 바라보며 · 99
고등어구이 · 100
우리들의 금주 누나 · 102
코스모스 · 103
고목나무 아래에서 · 104
심청의 독백 · 105
황화 · 106
해설 후진하는 열차에 올라탄 혁명적 낭만주의자 / 김정수 · 108
저자소개
책속에서
[표제시]
상사화 지기 전에
--
백로 지나 술집에서 만난 친구가 머잖아 중앙공원 상사화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당의 상사화 서식지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지만 이미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뒤였습니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던진 말이 이렇게 깊이 파고들 줄 몰랐습니다 슬프다는 말이 슬프게 와닿지 않은 적은 많았지만 밋밋한 말이 슬프게 와닿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친구와 상사화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잎이 진 다음 꽃이 피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없던 것이 피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상사화 지기 전에 보러 가야겠습니다 피고 지는 꽃의 무심한 일상에서 혹시 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내게서 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
[대표시]
사랑의 무게
--
사랑에도 무게가 있을까
스물한 살 초겨울
학내시위 사건으로 쫓기던 나는
무작정 서울에서 공주로 향했다
멀리서 공주사대 정문을 바라보며
온종일 누군가를 찾았다
실루엣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 졸였지만
그녀는 흔적조차 없었다
시내 여인숙에서
강소주를 마시며 밤새 흐느꼈고
그것은 작별의식이 되었다
교사 지망생인 가난한 그녀에게
나는 위험인물이어서
무조건 떠나주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녀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이렇게 시시한 사랑을
저울에 달면 저울추가 움직일까
정말 사랑에 무게가 있을까
--
박하사탕
--
내 글에 댓글을 달던
반백의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앞뒤 맞지 않는 주장을 늘어놓거나
욕을 내뱉기 일쑤였던 그가
막상 안 보이니 궁금해진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 타령을 해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그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그렇듯
그와 나는 죽음처럼 절연되었지만
사실 그의 엉터리 글들을
어떤 미끈한 글보다 더 기다렸다.
거친 그 암호문은
새의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이따금씩 생각했었다.
내가 어렸을 적 마을 고샅에서
혹부리영감이 자주 내질렀던
울음 섞인 소리처럼.
그 영감이 내게 박하사탕 하나
불쑥 손에 쥐여주고 사라졌을 때
새가 토해낸 것이라고 믿었었다.
박하사탕을 찾는다.
혹부리영감처럼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분명 내게
박하사탕 하나 건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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