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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67271129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24-12-19
책 소개
목차
제 1 과 솔로몬의 노래는 어떤 책인가? / 5
제 2 과 신랑에게 사랑받는 신부(1장) / 17
제 3 과 샤론의 장미(2:1-7) / 29
제 4 과 어여쁜 자야, 일어나 떠나자!(2:8-17) / 39
제 5 과 신랑을 찾아 나선 신부(3:1-5) / 51
제 6 과 연기 기둥처럼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3:6-11) / 61
제 7 과 나의 신부야, 나와 함께 가자(4:1-8) / 73
제 8 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어여쁜가!(4:9-16) / 85
저자소개
책속에서
혹자는 욥기에서는 “불행한” 사람이 발견되고, 시편에서는 “행복한” 사람을 볼 수 있고,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으며, 전도서에서는 “세속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솔로몬의 노래에서는 “천상의” 사람(그리스도)이 보인다고 했다. 솔로몬의 노래는 다른 성경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며,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는 성문서(聖文書; the Writings)라 불리는 “케투빔” 안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4:44에서 케투빔 전체를 “시편”이라고 부르셨을 때, 그 안에 룻기, 욥기, 시편, 잠언, 솔로몬의 노래, 전도서, 에스더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것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말했던 바 모세의 율법[토라]과 선지서들[네비임]과 시편[케투빔]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던 그 말이니라』(눅 24:44). 이 말씀에서 보듯이 솔로몬의 노래는 분명 “예수님에 관한 기록”이다. 솔로몬의 노래는 에스더서와 더불어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이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주”라는 말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200년도 더 지난 후에 기록된 칠십인역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에스더서에 의도적으로 추가되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 드렸다 해도 없는 것을 첨가하면 그것은 분명 저주받을 변개이다!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이 너를 책망하실까 함이며, 네가거짓말쟁이가 될까 함이라』(잠 30:6).
솔로몬의 노래의 저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솔로몬”이다. 『노래들 중의 노래니, 이는 솔로몬의 노래라』(1:1). “솔로몬”은 이 책에서 일곱 번 등장한다(1:1,5; 3:7,9,11; 8:11,12). 기록연대는 B.C. 1014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솔로몬의 노래는 8장, 117절,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2,661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솔로몬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길이가 다양한 서정적인 사랑의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어떤 유대인 젊은이도 그가 30세가 되기까지는 솔로몬의 노래를 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유는 물론 이 책의 관능적인 본질 때문이었다. 그것은 참된 정신적 사랑뿐 아니라 참된 성적 사랑도 묘사한다. “비록 그 책의 서정적인 이미지와 숨김없는 표현들이 정신적으로 관능적이고 암시적이라 할지라도, 그 시적인 문장은 결코 외설적이거나 비속하지 않다.”(The Jewish Encyclopedia)」(피터 럭크만)
그리스도인은 “바른 양떼,” “바른 성경,” “바른 목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주님의 성도들과 말씀으로 교제하며 쉬어야 한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주님의 “푸른 초장”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쉬어야 할 곳이다. 주님의 양무리가 풀을 먹는 초장은 그분의 “말씀”이다. 주님의 양인 우리는 “말씀의 초장”에서 쉬며 먹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초장”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는 곳이며,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찾아가서 그 약속들 안에서 위로와 위안을 찾는 곳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나의 위로가 되었으니 이는 주의 말씀이 나를 소생시키셨음이니이다』(시 119:50). 『오 주여, 내가 주의 옛 명령들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위로하였나이다』(시 119:52). 『내가 주께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주신 말씀대로 주의 자애가 나의 위로가 되게 하소서』(시 119:76).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영적 교제와 영적 교감에 관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주님께서는, 성경을 펼쳐 읽으며 그 말씀들을 감사함으로 진지하게 듣고 겸손하게 받고 있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신다(cf. 고후 3:18). 또한 겸손하게 간절하고 끈질기게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의 달콤한 음성”을 듣기 원하신다. 여러분은 “오늘” 주님께 말씀을 읽으며 “여러분의 용모”를 보여 드렸는가? 여러분은 “오늘” 주님께 기도를 드리며 “여러분의 음성”을 들려 드렸는가? 무엇보다도 주님께서는 그분의 성도를, 그가 죽을 때든, 휴거가 될 때든, “속히” 하늘의 본향으로 부르시고 싶으실 만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하신다. 『지금은 우리가 유리를 통해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내가 알려진 것처럼 알게 되리라』(고전 13:12). 지금은 우리가 “유리”를 통해 희미하게 본다. “단단하고 부어 만든 거울 같은 하늘,” 곧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를 통해 희미하게 보기도 하지만, “성경”이라고 하는 “말씀의 거울”을 통해서도 희미하게 본다. 우리는 “거울”과 같은 성경 말씀을 볼 때 주님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고 “주님의 형상,” 곧 “주님의 반사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더 많이 노출시키면 노출시킬수록, 다시 말해 성경의 거울에 반사된 주님의 형상을 우리의 얼굴에 더 많이 반사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더 많이 변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