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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67471833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4-06-25
책 소개
목차
prologue
지니
에네스
호키
댄
뱅
리암
텐
루시
킥
랩
지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순간 나를 에워쌌던 긴장감들이 거짓말처럼 모든 자취를 감췄다. 이에 다시 솟아난 소량의 엔돌핀이 막대한 양의 좌절감으로부터 진창으로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작은 소생의 씨앗을 내밀었다.
[호키, 만약 나한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뒷일을 부탁한다. 원격으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코드칩 이미지를 그대로 보내겠다. 그리고 성공하게 되면... 지금 보내는 메일을 블록챗 안에서 보내주면 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복수의 시작이었다.
[연결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는 지체 없이 퀀시의 아바타에서 뽑아낸 코드칩에 락을 걸어야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코드칩에 삽입된 고유번호를 교란시 켜 퀀시의 정신을 메타 안에 가두는 행위였다.
[YES]
물론 정신 마약에 해당하는 브레인틱에 노출된다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 후유증이 남긴 대미지의 여파는 매우 치명적일 것이다.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놈들을 자극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선 당장 이 방법만이 최선이었다. 특히나 내가 갖고 있는 이 브레인틱은 개중에서도 최상의 하드코어 등급에 속했다.
[NEXT]
일순 댄의 손가락이 허공 위에서 멈칫했다.
[수락을 요청합니다.]
이런 짓까진 하고 싶진 않았는데.... 죄책감에 시달릴 시간 따위도 없다는 걸 분명 잘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이 빠릿하게 따라주질 않았다. 당장 YES 버튼만 눌러주면 끝이었는데 왜인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락을 요청합니다. 1 2 3....]
카운트로 넘어간 화면을 보던 댄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미니바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제 머리칼을 잔뜩 쥐어뜯으며 자책이 담긴 혼잣말을 조용히 뇌까렸다.
Fuxx!! 제발 독하게 좀 살자! 이 머저리 새끼야...
퀀시의 코드칩에 브레인틱을 심어두면 락을 걸어둔 상태에서도 고문은 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락을 걸어두기 이전까지 목숨 또한 살려둘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녀의 코드칩에 심어져 있는 고유번호에 락을 거는 순간 본체 안에 이식된 코드칩과 연동이 끊기게 된다. 즉, 메인 서버의 IP 경로와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경로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녀석의 정신은 영영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수락을 요청합니다.]
“ FUXX!!!!!”
재차 수락을 요청해 오는 시스템 메시지에 댄은 결국 들고 있던 온더락 잔을 힘껏 던져버렸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투명한 별 가루가 되어 공중 위를 흩날렸다. 무엇을 위해 망설이는 건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되물어 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안녕~ 댄~’
심연 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여린 마음이 불현듯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제멋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억장치 속에서 레나가 나타났다.
내 모든 시간 안에 그녀가 있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멍청한 녀석은 그녀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뒤늦게 그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후회 따위는 어리석은 인간들이나 하는 경멸스러운 행동이라고 비난했으면서 정작 스스로는 이 말 도 안 되는 어리석은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반복하고 반복하며, 모순된 결론을 낳는다.
이래서 나는 인간이 싫었다. 내가 완벽한 로봇이 아닌 것이... 스스로가 인간이란 사실이 늘 경멸스러웠다. 그래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 번 다시 그녀를 잃고 싶진 않았다.
죽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목적이었으니까.
- ‘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