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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550278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2-04-30
목차
작가의 말 4
제1부 - 교도소 9
제2부 - 출항 119
제3부 - 타라와 185
저자소개
책속에서
감방에는 햇볕이 적었다. 방의 북쪽 벽에 키 높이로 길고 좁은 쇠창살격자문이 있는데 그걸 통해 아침나절 잠깐 드는 햇빛이 햇살로서는 전부였다. 남쪽 벽에 붙어있는 정문의 상반신에도 쇠창살이 달린 투명 유리창이 있는데 그걸 통해서 들어오는 것은 바깥의 밝음이지 햇빛은 아니었다. 방의 나머지는 전부 벽인데 오래되어 벽지가 누랬다. 그렇게 누르스름하고 침침한 방에 누워있는 잿빛 몸뚱이들을 깊은 침묵이 덮어주었다. 침묵은 스산한 수의였다. 수의 때문에 숨이 막혀 괴로웠는지 죄수 한 명이 그걸 찢고 나섰다.
권태는 시간에서도 온다. 시간을 만드는 것은 사건의 생멸 변화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아도 하나님은 빛이라는 에너지 즉, 사건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낮과 밤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원리로 땅과 생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감방에서는 하고많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얼굴들이, 같은 내용의 이야기로 입씨름하고, 같은 후유증을 되풀이한다. 그러니 감방의 시간은 할 일이 없어 무력증에 빠져든다. 무력증에 빠져든 시간은 흐르지 않고 감방에 고인다. 감방은 맥이 빠진 시간이 고이는 늪이다. 그 늪에 빠져든 죄수들은 움직일 힘도 의욕도 잃는다.
꽃나무는 홀로 피는 예가 드물다. 군락을 이루어 자연의 화원을 만든다. 꽃나무 하나하나는 자기만의 개성적인 꽃을 가지고 자연의 화원을 꾸미는 일에 참여한다. 그런 울력을 하기 위해서 꽃들은 틀림없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것이다. 정자도 한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꽃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을까? 지렁이를 부르는 동산에 가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바다는 하늘이고, 하늘은 바다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의 거대한 궁륭(穹窿)을 이루고 있다. 그 궁륭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있다. 수평선이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하늘과 바다, 별, 천체가 돌고 있으면서 만물을 생성하고 있다.
나는 나의 소명을 받들어 그 사탄이 하나님을 죽이라고 준 칼을 빼앗아 그 악마를 없애겠네. 나는 나의 소명을 다함으로써 내 본래의 나를 찾을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탄생할 것이네.
야자수 나무에 자꾸 마음이 끌렸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였다. 한국의 나무와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은 만사와 만물을 만드는 선험적 틀이다. 따라서 그 기본 틀이 달라지면 만들어지는 결과도 달라진다. 그런 이유로 야자수는 그 자신을 한국에 있을 때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빚을까? 궁금하기도 불안하기도 했다.
이런 불행한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렁이가 가고자 하는 세상에 가면 그런 자가당착적인 불행한 현상은 없을 것이라고 오신우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