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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551336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3-03-28
목차
아버님의 유고집 발간에 부쳐 34
1부 가회중학교는 나의 인생
가회중학교와 함께한 길고 긴 세월 44
가르치는 즐거움 62
광명을 찾아 헤맨 혹독한 역정 68
가회면의 연혁(沿革) 93
2부 고생 뒤에 낙이 온다
스위트 홈 98
漢字敎育을 生活化하자 106
漢江의 자랑 110
指導者의 資質 115
한글 漢字 混用으로 國語를 바로잡자 119
價値의 뜻 127
‘法대로 해라’ 130
演說은 짧게, 內容은 뜻 깊게 133
보릿고개(麥嶺)에서 肥滿症까지 136
‘福 많이 만드세요’ 140
멋진 자연과 멋진 한국인 143
老人의 푸념 147
하드파워와 日本民族 151
돈 타령 155
서울 사람, 시골 사람 160
새해 福 많이 만드세요 164
故鄕 없는 아이들 167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보지 못한 少女 171
도요하라(豊原) 先生의 追憶 173
잘못 使用하는 國語를 바로잡자 181
精誠을 쏟아야 열매를 딸 수 있다 184
樂觀과 悲觀的인 人生觀 187
3부 역사는 길을 밝히는 등불
과거제도(科擧制度)에 대한 역사적 소고(小考) 192
古今을 通해 본 무서운 女性파워 201
우리 歷史上 建元稱帝의 來歷 205
萬里長城을 보고 208
“사돈(査頓)”의 語彙 來歷 212
男尊女卑制의 變化 215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20
産業社會가 되기까지 227
유대인의 우수성 230
朝鮮時代의 黨派 싸움과 오늘날의 政黨 싸움 234
宗系 바로잡은 洪譯官의 積善 238
左派, 右派의 由來 및 思想 243
中國文化 遺蹟의 片鱗을 보고 246
눈에 삼삼한 사이판의 바다 빛 252
文化財를 지켜낸 先賢들 258
悲運의 朝鮮王朝 末路 263
御定 八十里 268
4부 아름답게 나이 들기
건전한 노후생활을 대비하자 274
나는 “감”이 없소 281
漢字의 破字 풀이 285
信用은 成功의 秘訣 289
사람 292
不如敎子一經 296
멋진 우리 自然, 멋진 우리 民族 299
돌은 돌소리 나고, 쇠는 쇳소리 난다 304
感性的인 韓國人 307
겉치레文化의 明暗 311
趣味生活 漫筆 316
放課 後 漢文授業 斷想 319
5부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장녀 김은숙) 324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해요?(장남 김덕출) 328
그리운 나의 부모님(차녀 김은영) 333
포도와 알사탕(큰외손자 변성철) 337
정겨운 나의 외갓집(작은외손자 변성훈) 340
미리 써놓은 자녀들에게 남기는 말 343
慶州金公 松巖 諱 是永之墓 配孺人恩津林氏 雙墳祔左(비문) 344
6부 김삼시 선생님을 기리며
弔辭(김인식) 348
김삼시 선생님 유고집 발간에 부쳐(2회, 허종학) 350
松巖 金三是 恩師任을 追慕함(6회, 이종태) 353
追念, 松巖 先生님을 기리며(6회, 허태영) 357
작은아버지 같은 김삼시 선생님(11회, 허종홍) 361
선생님의 유고집 출간을 기리며(이종해) 364
고 김삼시 은사님 영전에(12회, 김문희) 368
김삼시 선생님과의 퇴고(推敲)에 대한 추억(12회, 김찬섭) 370
삶의 자양분을 담뿍 주신 松巖 金三是 선생님(14회, 임영주) 373
그리운 김삼시 선생님(16회, 허시중) 376
은사님 영전에(17회, 윤명중) 380
그리운 시절(18회, 권영기) 382
김삼시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19회, 김봉현) 384
은사님을 기억하며(23회, 윤병우) 386
은영이 아버지 김삼시 선생님(26회, 김지은) 392
김삼시 선생님 제자들의 인터넷 글에서 394
책속에서
아버님의 유고집 발간에 부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영원히 우리 형제들과 같이 하실 것 알았는데 자연의 섭리 앞에서 영원이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고향집으로 달려가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실 것만 같은 아버지, 어머니! 지금은 가끔 꿈에서 뵐 수 있을 뿐 부모님이 계시던 방에는 싸늘한 냉기만 흘러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어머니까지 아버지를 따라가시니 우리 4형제 자매는 슬픔이 더욱 크고 황망합니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존재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멀리서 그냥 계시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했던 그 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가슴 한 구석의 허전함을 달랠 길 없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보통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은사님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역사, 지리 시간은 모든 친구들이 기다리는 즐거운 수업이었습니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아버지의 수업 때문에 우리 형제자매들은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그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시니 그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천붕의 크기가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께서는 글쓰기를 즐겨하셨기에 수많은 좋은 글들을 남기셨습니다. 그 글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옆에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4권의 수필집 발간으로 제자들과 지인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셨고, 그 긍정적인 생각들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글쓰기를 즐겨하셔서 그 글들을 모아 유고집을 내기로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망라한 해박한 지식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충만한 아버지의 글들을 컴퓨터에 넣어두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유고집에 포함할 제자, 지인들의 원고를 받으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훌륭한 업적과 인품을 더 알게 된 것도 큰 성과입니다.
원고 의뢰를 드리니 모두가 내 일 같이 발 벗고 나서서 아버지와의 인연에 대한 좋은 글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4형제 자매들은 이 유고집 발간을 계기로 다른 사람에게 더 배려하고 주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지도편달 해주시고 글까지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2023년 3월
아버지,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자녀
김은숙, 김덕출, 김은영, 김경환 올림
在職回顧談(초창기 중심)
*가회중학교와 함께한 길고 긴 세월
1.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가회중학교가 어느덧 개교 60주년이라니, 어제 같은 세월인데도 말이다. 고향 떠난 사람에게는 수십 년이 흘러도 꿈은 항상 고향을 맴돌 듯, 나 역시 지금도 가회중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길다면 긴 60년의 세월이라 문득 생각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학교를 창건하신 이사님들은 말할 나위 없고, 고생스레 같이 근무하던 초창기 동료 교사들도 어느 사이 멀리 떠나고 나 혼자 남은 느낌이다.
당시 이사님들의 장례 때마다 조사(弔辭)만은 시원찮은 솜씨나마 번번이 내가 지어 드렸는데, 모두 8건쯤 된다. 그중 허임상, 허언 두 교장선생님께 드리는 조사는 나의 제 1수상집 “敎壇살이”에도 수록되어 있다.
가회중학교라면 고향이나 친정 같은 느낌이라 지금도 지나가는 학생들이 어쩐지 내가 직접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인 양 생각돼 매우 정답다. 그런데도 가회중학교 출신으로 명사가 된 사람 중엔 간혹 가회중 졸업이란 학력(學歷)을 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회중 재직경력을 숨기는 전직 교사까지 있는 것을 볼 때 바로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인구가 천만이라는데, 그 사람들 모두가 본디부터 서울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산간벽지나 외딴섬에서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고향이 자랑스럽지 못하다고 숨긴다고 할 때, 뒤에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도 되면 필경 많은 것을 또 숨길 소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는 가회중학교에 재직했던 것이 무한히 자랑스럽다. 더욱이 나는 여기가 고향이고 학생들은 모두가 잘 아는 분들의 자제이거나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분들의 자녀이기에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의 평판에도 알게 모르게 압력이 되므로 나는 보수나 영달보다 진실로 나 정성껏 봉사하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여 배움에 목말라하는 순진한 시골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할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해마다 개최하는 총동창회에 초청받아 나갈 때는 “내가 교단에 섰을 때 좀 더 잘 가르쳤으면 이 제자들이 더 훌륭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을까”하며 미안해하고 어쩌면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초창기 가회중학교의 교육시설이나 학습 여건 등은 “열악(劣惡)하였다”가 아니고, 모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제대로 된 교실이나 책걸상이 있었나, 글을 잘 쓸 수 있는 칠판 하나 있었나, 겨울인데도 창문도 없는 가교실에서 찬바람을 그냥 쐬며 잘 먹지도 못해 창백한 얼굴에 누더기 같은 무명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당시 교육현장의 실상이었다.
교사들 역시 배부된 교과용 도서 한 권 달랑 들고 아무런 참고서도 없이 그냥 수업을 했으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래도 그런 환경을 잘 극복하고 뒤에 당당한 사회인으로 활동하는 졸업생들을 보니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뿐만 아니다. 그런 여건하에 졸업하여 조직된 총동창회에서 지금 모교의 개교 60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진행하고 있으니, “잘 가르치지는 못했는데도 잘 배웠구나!”하는 이율배반적인 느낌마저 든다. 나는 그동안 별도로 모아놓은 재물은 없으나, 이렇게 잘 배운 훌륭한 제자들이 5천 명이나 되는 거대한 인적 재산가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