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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551619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23-06-01
목차
5 시인의 말
I 겨울 지나고 다시 봄 오면
12 시인
14 삶 1
15 바퀴벌레
16 하지에
18 금요일
19 아버지의 유산
20 비가 오면
21 이순(耳順)이 되어
22 소원
24 생각
26 다리에서
27 오후
28 결혼
30 사랑 1
32 꽃
34 추석
36 조기폐차
38 고양이
40 행복
41 봄
42 대천
43 멘토
44 윤회
45 불면
46 하루
Ⅱ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50 오늘
52 시간
53 옛노래
54 어부의 아내
56 추억
57 썰물
58 안면도
60 동해
61 아버지
62 대청호에서
63 점심에
64 어버이날
65 저녁에
66 김치볶음밥
67 오타
68 봄밤
70 회상
71 이별 후
74 그런가요?
76 안 그런가요?
78 제사
80 삶 2
81 사랑 2
82 인연
84 인생
85 어느 이메일
86 고백 1
Ⅲ 그리고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88 겨울에
90 실연
91 1985년 4월 23일
92 가을을 기다리며
94 여름
96 밤
98 비
99 짝사랑
100 노인
102 미스 방
104 한계
106 비 마이 셀프
108 석가탄신일에
110 여름비
112 떠나가는 이에게
114 청년의 삶
116 어머니의 손길
118 관계
120 감정
121 추억
122 고백 2
124 해 비
125 오월
126 깨달음
127 잡념
128 선
129 자식
130 도통골 고사리
134 해설_카이로스(Kairos)의 쉼 없는 날갯짓을 기원하며_정규범(문학광장 이사장)
저자소개
책속에서
*도통골 고사리
대전 가양동 뒤편 더퍼리에는 솔랑산이 있는데
그 산 초입의 우암 사당을 지나 도통골을 따라 오르면
기억 흐릿한 사찰이 하나 있다
그 사찰은 아주 오래전 무허가 절들을 정비하던 시기에
철거되어 없어졌다고 전언으로 들었지만
나는 그 절 법당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인연이 있다
도통골 너머 대전터널을 지나 옥천 방향 옛 경부고속도로
비룡교차로와 마주하고 있는 작은 촌 동네는 아버지가 생활하시던
내 고향 송가 집성촌 비름들이라는 마을이다
어머니는 대전 가양동에 네 명의 자식들을 교육 문제로 모두 옮겨 두고
주말마다 가파른 도통골을 넘나들며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셨는데
단신의 체구에 고단했을 어머니의 삶에 가슴이 아려오곤 한다
어느 날 석양이 질 저녁 무렵 저녁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동네 친구들 하나둘 집으로 가버리는데 혼자가 된 가양동의 나는
갑자기 비름들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도통골을 오르게 된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산길 군데군데 보이는 고사리를
두 손 한가득 꺾어 손에 쥐고는 해져 어두워진 산길이 무서웠는지
도통골 절 법당 안으로 들어가 이내 누워 잠이 든다
어머니와 누나가 밤새 찾아 헤맨 끝에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절에서 잠든 나를 찾았는데 그때 내 나이 7살 무렵이었다
54년 전 국민학생 누나는 지금 할머니가 되었고 어머니는 백수를 바라보시니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더해 사시는 것 같아 고맙기만 하다
어른이 되어 가끔 반찬으로 올라오는 고사리나물은
도통골에서 고사리를 뜯고 있던 기억 저편의 어린 나를 만나는 반가움에
그토록 좋아하는 반찬이 되었지만
근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면 더는 먹지 못할 것 같다
유년 시절 떨어져 늘 보고 싶었던 울 엄마가
한 아이의 손에 잡힌 고사리에 아직도 머물러 계시니
한없는 그리움과 휑한 마음에 목이 메어 많이 울 것 같아서 말이다
어머니는 2023년 2월 20일 오전 7시 35분에 운명(殞命)하셨다
*시인
나는 시가 좋다
그리 잘 쓰지 못하는 데도 자꾸 끼적거린다
내 심장의 울림을 글로 그리려는 풍경
내 마음의 상상을 글로 새겨보는 그림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동네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 피어올랐던
집집마다 밥 짓는 초저녁 굴뚝 연기
마당에서 꼬리치며 반겨주던 메리와 쫑
밥 냄새 가득한 따스했던 부엌이
기억 한켠에 화석으로 남아있지만
유년의 그 느낌
갈피를 못 잡을 그리움
도저히 갈피를 못 잡을 그 그리움을
글로는 담아낼 수가 없어
내 맘속 떠도는 한없는 물방울들이
이 강, 저 바다의 심금을 글발로 휘젓기 전까지
시가 아닐지라도
단지 꿈꾸는 미완의 낙서장일지라도
그냥 나는 시가 좋다
마냥 시인이 되고 싶다
■ 해설 중에서
해설
카이로스(Kairos)의 쉼 없는
날갯짓을 기원하며
정규범(문학광장 이사장)
계묘년 지혜로운 토끼가 한해를 열어젖힌 지가 엊그제 같은데 산야는 연초록의 봄물로 흥건하다, 아침 산책으로 온몸은 물론이고 영혼마저 봄의 색채로 흠뻑 물들게 되는 축복의 계절이다. 잎도 꽃이 되는 시절의 자연을 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쓰는 언어는 시의 전범이라 할 수 있음을 시인이 아녀도 누구나 체감하기 좋은 시절이라 하겠다.
발터 벤야민은 “언어는 그 언어에 상응하는 정신적 본질을 전달한다.”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정신적 본질”을 전달한다는 결과가 중요한데, 여기에는 “언어에 상응하는”이 결정적 전제조건이 된다. 그 언어는 수행자(linguistic performer) 각자의 언어이다. 즉 언어를 구사하는 수준에 맞는 “그 언어에 상응하는” 격(格)의 “정신적 본질”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송상섭 시인이 환갑의 해를 맞아 두 번째 시집을 상재한다. 녹의(綠衣)를 입은 자연의 언어가 짙어지는 시절, 그의 언어는 어떠한 옷을 입고 어떠한 “정신적 본질”을 전달하려 하는지 궁금하다. 그의 시의 집을 이룬 세 개의 얼개에 따라가면 이순(耳順)의 길목에서 순해진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들이 채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I. 언어에 상응하는 정신적 본질을 전달하는 얼개들
송상섭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만큼은 시인 이상인 듯싶다. 시집의 권두시로 「시인」을 올리는 것으로 명징하고 있다. 시집은 시인의 시 쓰기에 대한 열정과 자기비판(「시인」)과 삶의 덧없는 본질과 삶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삶 1」), 작은 미물의 허망한 죽음을 통한 생명 존중 사상(「바퀴벌레」), 어머니와 삶의 의미에 대한 상념(「하지에」), 일상의 고단함을 벗어나게 해주는 휴식의 통로(「금요일」),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날마다 행복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아버지의 유산」) 등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순하고 기교 없는 담백한 언어를 통해 삶과 죽음, 의미와 목적 찾기의 주제를 탐구하여 삶을 반성하고 일상의 덧없는 순간에서도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도록 독자를 초대하고 있다.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다 가져라
볼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을 때
찰나의 모습들 하나둘 기억 속에
차분히 추억해 두어라
이 땅에 살아있는
모두에게 내려주는 자연의 선물
옜다 전부 다 가져라
다시 못 볼 마지막 풍경처럼
잘 간직하거라
죽기 전에 말이다
-「비가 오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