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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611795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3-10-19
책 소개
목차
그림이 없는 밤
수영과 담배
검은 얼굴
못생겼지만 맛있는
안개의 말
햇살이 내려와
해설: 한 차례 아팠던 그 사랑은 이제_강도희(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기연을 위한 변명
저자소개
책속에서
기연이 치수를 처음 만난 곳은 이불 가게였다.
엄마는 사랑해본 적도 없잖아. 사위를 처음 본 날이었을 거다. 나이도 많고 인물도 없고 인상도 좋지 않은 터라, 기연은 딸아이에게 싫은 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런 기연에게 딸아이는 말했다. 그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자꾸 튀어 올랐다. 그 말은 질문이 되어서 기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사랑을 해보았나. 사랑이 뭔가. 남편을 사랑하는가. 남편은 나를 사랑하는가.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된 답이 떠오르지 않아 기연은 답답했다. 벚꽃이 피면 예쁘다 하고, 딸아이를 키우며 예쁘다 사랑한다, 확신한 적은 있으나 사내를 보고 예쁘다, 어여쁘다, 귀하다, 안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녀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눈이 벌게지도록 잠들지 못한 밤에. 재연아, 사랑이 뭐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가 돌멩이처럼 몸속을 떠다니며 그녀를 아프게 했다.
이 모든 게 삼십 년이 다 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이 그저 지겨울 뿐이었다. 이제, 유일한 자식인 딸도 결혼하는 마당에 대충 묶어둔 매듭 같은 가족이라는 연결 고리가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에어컨을 켜긴 했지만 반팔 티셔츠와 긴 치마 안은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표면은 축축한데, 속은 바짝 말라 쩍쩍 갈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몹쓸 허기가 깊숙이 자신을 갈라놓았다. 그건 단순한 공복감이 아니었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볼 때마다 뿌리 깊게 파고드는 텅 빈 결락감이었다.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며 제 남편 될 사람을 챙기는 재연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년아, 너는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