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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69814287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6-03-12
책 소개
“청소년문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궁극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 주는 것이다.”
1984년 새벗문학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는 올해로 42년째 작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동안 동시대 어린이, 청소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직접 취재해 문학으로 조명하는 일을 이어 온 작가에게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은 필연과도 같은 작업이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사계절출판사, 2016)를 시작으로 『알로하, 나의 엄마들』(창비, 2020)에 이어 『슬픔의 틈새』를 마지막으로 완결된 이 3부작은 ‘낯선 타국으로 밀려난 여성들의 삶을 통해 기억과 역사, 정체성의 문제를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데르센 상 후보 선정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 작업으로 거론되어 왔다. 2018년 IBBY 아너리스트 선정 이후, 작가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글 부문에 두 번 연속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오고 있다.
그 3부작의 완결인 『슬픔의 틈새』는 강제징용으로 탄광 노동자가 된 아버지를 찾아 사할린으로 떠난 열세 살 주단옥의 일생을 담는다. 지배 국가가 여러 번 바뀌어 온 사할린은 그 자체로 디아스포라적 역사성을 지닌다. 흩어진 사람들, 경계인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는 어른과 아이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우리 사회 속 청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를 이유로 많은 것을 유예당하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인간과 삶에 대한 믿음을 느끼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 사계절1318문고로 『슬픔의 틈새』가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왔다.
“1945년 8월 15일은 조국이 해방을 맞은 날이지만,
사할린 한인들에게는 고향과 가족을 잃은 날이었다.”
작품은 1943년 3월, 단옥네가 고향 다래울을 떠나 남사할린(화태)으로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본이 조선에 시행한 ‘국가총동원법’의 일환인 줄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화태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난 가족들 그리고 고향에 남은 또 다른 식구들까지. 그 누구도 돌아오기 위해 떠난 이날의 여정이 영원한 헤어짐이 될 줄은 몰랐다. 간신히 도착한 화태에서 아버지와 재회한 것도 잠시, 1944년 본토로의 ‘전환배치’라는 명령 하에 일본은 노무자들을 이중징용하면서 또다시 가족들과 갈라놓는다. 속수무책으로 가족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던 건 비단 소설 속 단옥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당시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이 겪은 실제 역사다.
한인들이 강제징용으로 떠나온 남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 남쪽의 통치권을 넘겨받아 40년간 지배했다. 당시 일본은 선주민이 부르던 이름에서 따와 남사할린을 가라후토라 명명했고, 조선인들은 한자 음대로 화태라 불렀다. 하지만 1945년 소련-일본 전쟁으로 남사할린은 다시 소련의 통치를 받았다. 몇 번이나 지배 체제가 바뀌는 동안 사할린의 한인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당연히 조선인도 아니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구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던 조선인들을 찾아온 건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소련군의 명령 그리고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과 핍박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될까 싶어 무국적자로 살아온 한인들에게 8월 15일은 또다시 조국에게 배신당한 날이 되었다. 그 뼈아픈 시간 속에서 한인들은 갈 수 없는 조국과 그곳의 가족들을 가슴에 묻고, 사할린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웃하고 연대하며 살아가기 시작한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 앞에서도 매일 먹여야 하는 식구들의 끼니와 자라나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라는 현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기에, 1세대 한인들은 슬픔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역사와 사회가 만들어 낸 차별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보통의 사람들이 전하는 울림
앞 세대가 그래 왔듯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 역시 조국으로부터 받은 배신과 비관을 안고, 또다시 기약되지 않은 미래로 삶을 이어 간다. 소설은 그 길에 선 덕춘과 딸 단옥, 일본인 치요와 딸 유키에를 주요 인물로, 그들의 일대기를 1940년에서 2025년까지의 시간으로 펼쳐 보인다. 타국에서 부모 세대가 오직 살아남는 일에 매진해야 했다면, 자식 세대는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생존 외에 자신의 삶을 살펴보며 살아간다. 사할린에서 살기 시작한 초반에 덕춘은 딸을 보면서 여정 중에 사라진 장남을 떠올린다. 딸이 학교에 다니고, 밥을 먹는 일조차 마땅히 아들이 누려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덕춘은 사할린에서 아이를 낳을 때도, 곁에 있는 남편과 조선에 있는 시부모에게 사라진 장남을 대신할 아들을 안겨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이가 찬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공부를 시키면 주변에서 흉을 보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산 덕춘에게 공부를 재밌어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꿈을 꾸고, 결혼해서도 직장에 다니는 딸은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조선인으로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언어를 할 줄 알고, 스스로를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덕춘은 그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단옥은 엄마가 먼저 사할린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라고 권하자 놀란다. 입덧하는 엄마를 타박하는 할머니에게 대들었다가 도리어 엄마에게 혼나고, 집안의 일들이 오빠 위주로 돌아갔던 생활에 익숙했던 단옥에게 덕춘의 제안은 큰 변화였다.
그 외에도 조선인, 한국인, 소련인, 고려인이 얽혀 사는 사할린에서는 누구도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땅에서 단옥과 유키에는 서로에게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할린에서 산 세월이 각자 조선과 일본에서 지낸 시간을 넘어서고, 그들에게 사할린은 떠나야 하는 타국이 아닌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터전이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내고, 부모나 형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고, 결혼을 해 아이를 키우면서 울고 웃는 삶의 순간을 나눈다. 민족과 국적을 떠나 새로운 공동체로 살아간 두 가족은 사회적 소수자로서 함께 아끼고 보듬으며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단단하고 경이로운지를 보여 준다.
약 80여 년 전, 한국에서 1,700km가 떨어진 사할린에서 살아간 단옥네 이야기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맞닿는 지점들이 많다. 작가는 작품에 주로 평범하고 불완전한 인물들을 내세운다. 『슬픔의 틈새』 속 인물들에 대해 작가는 “평범하지만 치열하고 성실하게 산 여성들, 그 힘든 삶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이 저에게는 근대 지식인, 활동가 여성의 삶과 같은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일본, 소련, 조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어떻게든 그 틈새 속 행복의 조각을 찾아낸 인물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은 사회가 구분 지어 놓은 수많은 일상 속 경계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렇기에 함께 나아가자고, 흔들릴지언정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학의 의미
“우리가 함께 연루된 이야기로써의 역사”라는 공동의 책임 의식
소설에서 인물들은 그저 역사 속에 놓인 개인이 아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 낸 존재로 오롯이 서 있다. 작품은 두 가족의 일대기를 다루며 스무 명이 넘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 준다. 그들이 사할린으로 오게 된 이유는 비슷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린 시절 사할린으로 온 단옥은 조국에서의 기억을 안고 있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지 않아 한다. 반면 사할린에서 태어난 동생 광복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 유키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이 뿌리내린 곳에서 살길 원하며 사할린에 남았다.
이처럼 『슬픔의 틈새』 속 인물들은 삶에 대한 자기만의 고민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저마다 생명력 있는 모습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작가는 혹여라도 인물들을 쉽게 판단해 버릴까 매 순간 경계하며, 직접 사할린으로 가 한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작품의 배경이 된 지역을 발로 찾아다녔다. 그 결과 “이금이 작가는 이번에도 그 입구를 찾아냈다”는 강화길 소설가의 말처럼 작가는 또다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길을 냈다.
문학으로 과거를 경험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타인과 연결된 장소라는 감각을 상기시킨다. 그 감각은 어떤 과거로부터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임을 지운다. 이 공동의 책임 의식은 조형근 사회학자의 말처럼 “흥미로운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함께 연루된 이야기로써의 역사”로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를 대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빚으로도, 빛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슬픔의 틈새』는 국가와 사회가 외면해 온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조명하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학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보여 준다.
“이들이 사할린에서 살게 된 건 슬픈 역사 때문이지만, 이들은 그 슬픔에 머물지 않고 ‘슬픔의 틈새’를 찾아 뜨겁게 사랑하고 당당히 살았다. 한국의 민족사도, 일본의 민족사도, 소련-러시아의 거대한 역사도 이들의 삶을 온전히 포괄할 수 없다. 이들은 작은 틈새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지만, 그 틈새야말로 얼마나 찬란하고 당당한 것인지.” _조형근(사회학자)
*등장인물
덕춘: 단옥의 어머니. 1943년 성복, 단옥, 영복 세 자녀들과 함께 남편을 만나러 사할린으로 간다.
만석: 단옥의 아버지. 1940년 강제징용으로 사할린 탄광에 갔다가, 1944년 이중징용으로 또다시 가족들과 헤어진다.
단옥: 1931년생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간 사할린에서 일생을 산다. 단옥, 타마코, 올가 송으로 이름이 바뀌어 왔다.
치요: 유키에의 어머니. 전남편 히데오를 탄광 사고 후유증으로 떠나보내고, 정만과 재혼한다.
정만: 만석의 의형제 중 한 명. 유키에의 의붓아버지. 조선에 아내와 딸을 두고, 홀로 사할린 탄광으로 강제징용을 왔다.
유키에: 단옥과 둘도 없는 친구 관계. 1932년생으로 일본인 어머니와 재혼한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살아간다.
태술: 만석과 정만의 의형제.
진수: 단옥의 남편. 제주도 출신으로, 사할린 제주도 마을에서 산다.
성복: 단옥의 큰오빠. 1943년 사할린으로 가는 도중 연락이 끊긴다.
영옥: 단옥의 여동생. 조부모와 고향 다래울에 남아 있다 연락이 끊긴다.
영복: 단옥의 남동생. 생후 22개월 당시, 엄마 품에 안겨 사할린에 온다.
해옥: 단옥의 여동생. 1943년에 사할린에서 태어나 우미코, 해자, 해옥으로 이름이 바뀌어 왔다.
광복: 단옥의 막냇동생. 1945년에 사할린에서 태어났다.
용재, 성재: 유키에의 남동생.
목차
1부
세 개의 바다를 건너
1943년
흰 밤, 검은 낮
1943년
따뜻한 겨울
1943년
서늘한 여름
1944년
남겨진 사람들
1944년
뜨거운 여름
1945년
행렬
1945년
우글레고르스크
1946년
2부
귀환선
1946~1949년
다시, 시작
1949년
혼담
1950년
결혼
1951년
무국적자
1957년
3부
선택
1958년
갈림길 1
1960년
갈림길 2
1961년
얼어붙은 땅
1963년
마지막 잔치
1964년
슬픔의 틈새
1966년
4부
단옥, 타마코, 올가
1988년
무너지는 둑
1992년
뿌리 1
1995년
뿌리 2
1996년
1945년 8월 15일
1999년
심장의 반쪽
2000년
유언
2025년
작가의 말
참고 자료
저자소개
책속에서

단옥 눈에는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듯한 섬의 모양새가 더 먼 곳으로 헤엄치려는 물고기 같았다. 그 물고기 모양의 섬은 남북으로 나뉘어 남쪽에만 붉은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곳이 화태였다. 화태는 아버지가 계신 곳, 밥 세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곳, 마음껏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커다랗고 신비한 물고기가 자신을 등에 태워 더 넓고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사할린은 원래 러시아 땅이었다. 1905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사할린의 남쪽을 넘겨받아 통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선주민인 아이누족이 부르던 이름에서 따와 남사할린을 가라후토라고 명명했고, 조선 사람들은 한자의 음대로 화태라고 불렀다. 자작나무가 많은 섬이라는 뜻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