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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꽃이 되었다

향기로운 꽃이 되었다

장선희 (지은이)
한국소설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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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꽃이 되었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향기로운 꽃이 되었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70320906
· 쪽수 : 319쪽
· 출판일 : 2022-02-22

책 소개

장선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선영, 유미, 혜자, 연희, 민희, 수애의 형상을 통해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고달픈 일상을 거대서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미세서사로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꽃피는 시절

딸의 고통

어머니 날 부르신다

올가미

새처럼 날고파

운명

텍사스의 사랑

저자소개

장선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한문학세계 시, 소설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서울지회 정회원 대한시낭송가협회 정회원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 정회원 한국문학 베스트셀러 우수상, 한국문학 우수작품상 한국문학 금상, 향토문학상 등 다수 <저서> 제1시집 [꿈의 바다] 제2시집 [찬란한 하루] 장편소설 [향기로운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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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늘 그 손님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결혼 생활 후 오직 가정을 위해 개인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자들과 즐긴다는 그녀의 세상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나의 결혼 생활은 사실 너무 똑같은 일상으로 답답함도 없지 않았다. 나는 내심 스포츠카를 갖고 싶어 했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가끔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할 정도였다. 내가 출퇴근용으로 끌고 다니는 차도 있지만, 손님들의 차를 직접 주차관리 해주다 보면 여러 차 종류를 잠깐씩은 운전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운전하는 건 만족이 되지 않았다. 스포츠카에 오픈되는 차를 타보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지만, 그냥 상상할 뿐이었다. 내 안에 반전되는 엉뚱한 성격을 누구도 상상하지는 못할 것이다. 외모는 항상 여성스러운 긴 머리와 긴치마 차림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상상하는 건 남자들처럼 오픈카를 운전하며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싶은 야망이 있다. 성격은 그리 여성스럽지 않고 털털한 편이다. 그렇다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번에 또 딸을 낳았다는 죄인이 되었다. 애 낳고 몸조리를 하기는커녕 남편 손에 미역국이라도 얻어먹기는 아예 다 틀린 것이다. 갓난아이 젖을 먹이려면 미역국이라도 끓여야 한다는 정신에 간신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뒤뚱거리며 부엌으로 갔다. 몸뚱이는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똑바로 서지도 못해서 기둥에 매달려있는 미역을 손으로 할퀴듯 잡아 뜯었다. 뙤약볕에 그을린 시커먼 손은 농사일로 거칠어져 손가락 지문이 안 보일 정도로 닳아졌다. 흐느적거리며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쓸쓸한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역국을 한 솥 끓여냈다. 차디찬 양은 솥에 쌀알이 듬성한 다 식어 빠진 시커먼 보리밥이 남아있었다. 밥주발에 한 주걱 퍼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뜨끈한 미역국에 말아서 허겁지겁 마시듯 허기진 배를 채웠다.

선영의 인생은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남들은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하던 그 어렵다는 뇌사자의 기증으로 심장 이식을 받았다. 생사의 고통을 겪고 죽지 못해 살아난 행운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너무나도 위급한 순간에서 새 생명을 받았고 가족과 함께 너무 기뻐서 기쁨의 눈물로 울고 또 울었다. 심장병은 질기고 질기도록 몇 십 년을 끌어안고 살아 온 고통이었다. 건강한 젊은 심장을 기증받기까지는 다섯 번의 죽고 살기를 반복한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후천성의 가족력 심장병에서 의사도 놀랄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로 살아난 기적이었다. 이 세상을 새롭게 살아가는 위대함을 깨우치고 생명의 가치를 알았다. 인생의 소중함과 감사함이 생겼다. 생사의 깨우침으로 반드시 남다른 표징을 남기리라 다짐했다. 고통으로 인생을 산 세월은 너무 열심히 살아온 보상일 거라 믿으며 희망을 가졌다.

갑자기 구두를 벗었다. 그 인간과 연결되어있는 핏줄들에게 복수심이 가득 찼다. 가방을 시멘트 바닥에 집어 던지고 물속으로 발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물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지난날의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끝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점점 물의 깊이가 느껴졌다. 차가운 물속이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해지는 느낌으로 물살이 차분하고 아늑했다. 하늘에는 드물게 떠 있는 별빛들이 너무 슬퍼 보였다. 속도를 내어 손으로 물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발걸음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거센 물결이 그녀의 몸을 휘감는 느낌이었다. 수심을 알 수 없는 깊이까지 다가오자 갑자기 팔다리가 ‘붕’ 뜨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지만, 완전히 더 포근해지는 환상에 빠져들었다. ‘내가 죽으려고 물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연놈을 죽이려고 들어가는 거다….’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순간이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걸 느꼈다.

그녀는 지금껏 배고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른들의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씀이 맞다는 생각을 하며 배에 힘을 주고 걸어갔다. 그동안 고향 집에서는 먹고사는 생활 형편은 충분하고, 동네에서 농사를 몇 천 평이나 짓는 집으로 넉넉한 살림이었다. 고향 집은 밥 세 끼 꼬박꼬박 먹고 산다는 살림이었다. 웬만한 중매 자리도 잘 들어오는 손꼽히는 집이었지만 쓰는 돈만큼은 귀했다. 곡식을 팔아야 돈을 만지니 그녀에겐 먹고 사는 일만 최고라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늘 불만을 가져왔었다.

저녁 밥상에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불고기며 생선조림까지 푸짐한 대접을 받았다. 친구 남편도 퇴근해서 함께 식사를 하며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편안한 잠자리도 내주었다. 어릴 적엔 시골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서울에서 결혼하고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게 덩달아 좋았다. 선영의 친정은 유별나게 남아선호를 중요시하는 집안이다. 딸로 태어나 원망으로 더 악착같이 살아왔다. 결혼해서 남편의 사업도 잘되고 자기 사업을 꿈꾸고 있다. 자수성가로 능력을 만들어낸 본보기의 친구였다. 둘은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새 수다를 떨다가 새벽쯤 잠이 들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잠에서 깨어났다. 친구 남편은 마침 출장으로 새벽 일찍 나가는 바람에 전화로만 인사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여유로운 아침밥상 앞에서 잠시 행복감을 느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오랜만에 맡으며 안정된 가정이 부러웠다. 얼른 큰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선영은 너무 아쉽다며 먼 길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수애는 드디어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서로의 마음을 굳건히 믿어준 한결같은 사랑은 태양처럼 뜨겁게 다가와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완전한 사랑이었다. 신랑, 신부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다가오는 미래에 행복만이 넘쳐날 것이다. 그녀는 진흙탕물에서도 물들지 않고 모진 고통을 감수하며 결국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났다. 그 향기는 오래 갈 것이고 너무나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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