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70830825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4-07-26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히브리어는 어떤 언어인가
1 히브리어에 반영된 하나님 이해
쉐베트( שֵֵׁבֶט )와 미쉬에넷( מִשְְִׁעֶנֶֶת ):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
이르에 랄레바브( יִרְְִאֶֶה לַַלֵֵּבָָב ): 심장으로 보시는 하나님
헨( חֵן ): 은혜의 하나님
니플라오트( נִִפְְלָָאוֹת ): 놀라우신 하나님
카도쉬( קָדוֹשׁ ): 거룩하신 하나님
헤세드( חֶסֶד ): 한결같이 변함없으신 하나님
토라( תּוֹרָָה ):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2 히브리어에 반영된 인간 이해
아담( אָדָָָם ): 붉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
이쉬( אִישׁ )와 잇샤( אִשִָָּׁה ): 남자와 여자, 한 포기 풀과 같은 존재
자켄( זָקֵֵן ):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바브( ו ): “검으나 아름다우니” vs. “검어서 예쁘단다”
나비( נָבִִִיא ):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쯜리아흐( מַצְלִיחַַ ):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게르( גֵֵּר ): 우리는 모두 난민입니다
에쉐트 하일( אֵשֵֶֶׁת חַַיִל ): 고대 이스라엘의 여성상
3 언어 표현에 나타난 히브리적 사고
바라크( ברך ): 복이란 무엇인가
샬롬( שָָׁלוֹם ): 당신의 온전함은 무엇입니까
레브 쇼메아( לֵב שֹׁמֵֵעַ ): 지혜란 무엇인가
마샬( מָשָָָׁל ): 잠언이란 무엇인가
페사흐( פֶּסַח ): 절기는 무엇을 기념하는 것인가
말아크( מַלְאָךְ ): 메시지와 메신저에 대한 히브리적 사고
타마르( תָָּמָר ): 신앙의 구심력과 원심력에 대하여
나가며: 광야의 축복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가르침’, ‘인도’를 뜻하는 토라에 법률적 의미를 덧입혀 이해하게 된 것은 기독교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렌즈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칠십인역 성경(Septuagint)은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토라의 번역어로 ‘νόμος’(노모스)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법을 뜻하는 말로, 글로 쓰인 성문법과 불문율로서의 관습법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의 뒤를 이어 세계를 지배하게 된 로마는 특히나 문화적으로 간결하고 명확한 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규칙을 법률 조항으로 정교하게 정리하고 체계화했습니다. 신약 시대는 이러한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고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적 문화가 충돌하는 배경 속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가르침’과 ‘인도’라는 고대 이스라엘의 포괄적이면서 ‘두루뭉술한’ 개념의 토라가 신약 시대에 와서 ‘법’이나 ‘율법’으로 이해된 것은 이러한 문화적 굴절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1장 ‘히브리어에 반영된 하나님 이해’)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외에도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표현이 또 하나 등장합니다. 너무 흔하고 익숙한 표현이어서 아무런 신비감을 주지 못하는 신명(神名)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15)이라는 표현입니다. 피조세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을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 혹은 “나는 곧 나다”라는 멋진 표현 뒤에 나오기에는 많이 빈약하고 초라해 보입니다. 창세기가 증언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이상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다면 좀 이해가 될 듯도 한데, 이들 ‘믿음의 조상들’은 사실 그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아내를 팔아넘기거나 타인을 속여서 이득을 취했던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야곱은 그야말로 겁쟁이였습니다. 딸의 복수를 하고 돌아온 아들들에게 ‘너희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다’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창 34:30). 그는 말년까지도 자신의 배고픔과 자신의 목숨이 더 우선인 사람이었습니다(창 43:2, 12-14). 그런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이 이렇게도 부족한 사람들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두고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자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라고 덧붙이십니다.
(1장 ‘히브리어에 반영된 하나님 이해’)
붉은색 땅을 일컫는 단어 역시 같은 어근에서 유래한 ‘아다마’입니다. 일반적으로 땅을 가리키는 ‘에레츠’와 달리 아다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땅을 가리킵니다. 고대 가나안에 살던 사람들에게 토양은 크게 두 가지, 곧 희고 옅은 땅과 붉은 땅으로 나뉩니다. 이 두 토양의 가장 큰 차이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지요. 옅은 색 토양은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사막인 데 반해 붉은색 땅은 옥토입니다. 앞의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아래쪽 사진의 토양이 확연하게 붉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진 모두 이스라엘 남부의 팀나 계곡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두 가지 색깔의 토양이 공존하는 곳이지요. 이런 붉은 토양은 사막과는 달리 비옥해서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땅(아다마)이 붉게 물든 이유를 옅은 토양이 ‘피’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 듯싶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에 피를 머금은 땅이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더욱 확장되어 남보다 더 붉은 피부를 가진 이들은 강인하고 뛰어난 사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윗(삼상 16:12, 17:42)과 에서(창 25:25)의 붉은 피부를 묘사할 때 쓰인 단어가 바로 ‘아드모니’입니다.
(1장 ‘히브리어에 반영된 하나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