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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2247553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5-07-30
책 소개
목차
제1장 서독을 알면서 유학을 꿈꾸다(1964~1968년)
서독을 알아가다
종교개혁의 나라
신앙생활에서의 의구심
서독의 정치와 경제
나의 결심과 도전
한독실업학교(Koreanisch Deutsch Facharbeiter Schule)
학교를 방문한 뤼브케 서독 대통령
힘겨운 학교생활과 자퇴 결심
외부 장학금에 힘입어
제2장 직장에서도 유학의 꿈을 키우다(1964~1968년)
첫 번째 직장, 부산 대한화섬
두 번째 직장, 서울 동진산업
세 번째 직장, 인천 한독실업학교
실기교사로 승진
방위군 훈련소 입소와 경찰서 근무
어쩌다 이론 수업까지?
찾아온 마지막 기회
드디어 선택되다
제3장 서독 유학의 꿈이 이루어지다(1975~1978년)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리던 목적지에 도착
개발도상국 지원청과 괴테 어학원
아랍인 동료들과 이슬람교
주말에는 문화 체험과 탐방
독일 내의 고성과 역사
포도주 축제에서 본 서독인
로렐라이 언덕과 라인강
거대한 노천 탄광과 화력발전소
서 베를린에서 교육학
실업학교(Fachschule) 교생실습
기술학교(Technikerschule) 연수
한국의 밤(Koreanischer Abend) 09
제4장 정규대학교를 향하여(1977~1978년)
나의 과감한 결단
서부 독일의 교육제도
대학 진학 예정자 선별과 교민들의 교육 열정
상반된 교육 방식
나의 든든한 후원자
고학생의 자취생활
정규대학 예비 과정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
추방 명령서를 받다
체류 허가를 위한 노력
Langenbach의 비상계획과 체류 연장
제5장 독일에서의 신앙생활(1978~1992년)
일요일은 교회에 나가다
나 같은 죄인을 선택하신 하나님
독일인들의 신앙생활과 종교세
예배와 침수세례
교민교회와 독일인 교회
출석 첫날부터 예배처소를 찾아 나서다
서울에서 파송된 담임 목사님
에쎈 한인교회 창립과 예배처소
목사님의 부재시 주일예배 설교를
“돌축하” 자리에서의 말다툼
제6장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다(1980~1992년)
처음으로 받아 본 소개팅
얼마간의 교제 끝에 결혼을
아내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새 보금자리와 첫 아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별세소식
당당한 둘째 딸
셋째 딸의 애처로움
아이들의 보람된 독일 생활
제7장 만만치 않은 대학생활(1978~1992년)
학부 전공은 기계공학부로
멋모르고 덤벼든 기말고사
처음으로 경험한 실망스러운 F학점
학교에서의 일상
학사논문(Studien Arbeit)
석사(Diplom Ingenieur) 과정과 논문
박사학위 지도교수 선정
폐기물화력발전소 견학
연구원으로 임용되다
유동층 연소로 개발
중소형 열병합발전시스템 설계
공학박사(Dr.-Ing.) 학위 논문
제8장 교민들과 유학생들의 도우미(1982~1992년)
나의 삶 속에서 유학은?
교민들의 토요 조기 축구장
에쎈 한인회 창립
어느 교민의 향수병
유학생들을 도와야 한다
고졸 후 유학할 경우
대졸 후 유학할 경우
석사로 유학할 경우
박사학위만 빨리 받기 위한 경우
제9장 유학 중의 이모저모(1978~1992년)
네덜란드 튤립전시장 나들이
파리에서의 부활절 연휴를
장모님과 유럽 여행을
다섯 번의 아르바이트(Arbeit) 경험
처음으로 받은 운전면허와 자동차
내 차는 내가 수리한다
재구과학기술자연합회와 과학의 날
요로결석으로 수술을 받다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감사의 말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
드디어 귀국 이사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바쁘게나마 안정된 교사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내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내 앞에 남아 있었다.
서독 유학을 가려면 국방의 의무를 다해 병역 필자가 되어야 했다.
나는 군대 갈 시기를 여러 번 놓쳤으며 아직도 병역 미필자였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마침 학부형 중에 인천 직할시 병사계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분이 계셨음을 알고 나의 병역문제에 대한 조언을 진지하게 구해 보았다. 그분도 나에게 속히 병역문제를 해결해야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는 나를 대신해 직접 수원에 있는 경기도 병무청에 가셨고, 갓 시행한 방위군 입영통지서를 만들어 오셨다.
입학하자마자 찾아온 요로결석에 의해 최초로 독일 병원에 입원도 해야 했다. 체류 허가를 받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야 했던 경험은 남달랐으며, 이것들은 나에게 육체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인 시련을 안겨 주었고, 나는 더욱 단련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내하는 법도 배운 것 같다. 참으로 다행였다고 여겨지는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제는 나의 두 번째 꿈이던 독일에서 정규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최종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보였고, 이를 위해 나를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으며, 더욱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다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아르바이트 3일째 되던 날 아침, 교수님이 허리가 아파 도저히 출근할 수 없으니 회사에 잘 전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예능인이시고 나는 공돌이 출신이다. 그는 나이 많은 애 아버지고 나는 젊은 청년이다. 나는 절박했으나 그는 나의 처지와는 많이 달랐다.
우리 일은 동일한 동작으로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 하는 프레스 작업이었다. 그것도 능률제 시급이라 쉬지 않고 죽어라 해야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시간당 급여 10.-DM을 14.-DM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이런 나의 악착같은 작업 모습을 보고는 주위의 다른 정규직들이 모였다.



















